이래서 봐주고, 저래서 봐주고...
법원은 '선처 사유' 제조기인가

[분석] 참여연대, 불법정치자금 사건 관련 재판 23건 검토

등록 2004.11.01 16:53수정 2004.11.0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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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작년 가을 불법대선자금 수수혐의로 구속된 사람들. 왼쪽부터 김영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서정우 변호사, 이상수 전 민주당 대선 총무위원장

작년 가을 불법대선자금 수수혐의로 구속된 사람들. 왼쪽부터 김영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서정우 변호사, 이상수 전 민주당 대선 총무위원장

[눈에 띄는 잘못된 불법대선자금 사건 선처사유 3대 유형]

용두사미형 양형사유 제시 : 이는 양형사유를 제시하면서 범죄행위의 심각성을 고려해 아주 중하게 처벌해야한다는 점을 세세히 강조해놓는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서는 여러 개의 선처사유를 제시하며 꼬리를 내리는 유형. 그 예는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이호원 부장판사)의 김영일씨 사건.

황당무계형 양형사유 제시 :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국가를 위한 길이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불법대선자금을 수수했다는 것을 선처사유로 제시한 경우로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김병운 부장판사)의 서정우씨 사건. 또 충분한 설명 없이 그저 '남다른 가정환경'이라는 것을 정상참작사유로 제시한 경우로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이대경 부장판사)의 김영일 사건 등이 있음.

인생역전형 양형사유 제시 : 이는 양형사유를 제시할 때 1심 재판부는 정상참작요소를 충분히 감안해야하지만 죄질 등의 면에서 엄중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해 실형을 선고.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완전히 이를 뒤집어 '엄중처벌할 이유가 있지만 정상참작 요소를 감안해 1심의 선고형량을 파기하고 집행유예형을 선고'하는 사례. 이렇게 1심 재판부의 양형사유 제시를 180도 바꾼 재판부는 박명환씨 사건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전수안 부장판사)와 이상수씨 사건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신영철 부장판사) 등.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조국 서울대 교수)가 분석한 재판부의 자의적 양형 판단의 대표적 사례이다. 참여연대는 1일 지난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23명의 정치인에 대한 법원의 1, 2심 재판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이와 같이 '용두사미형-인생역전형-황당무계형' 등 3가지 유형의 '황당한 선처사유'를 양형사유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참여연대는 "(법원이) 정치인들에 대해 일관성 없이 재판부의 성향과 자의적인 판단 등에 따라 감형이나 집행유예선고 등 설득력 없는 양형을 내렸다"며 "이로 인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이와 같은 분석결과를 '불법정치자금 재판에서 본 "화이트칼라 범죄" 선고형량 및 양형사유 비판'이라는 제목으로 <사법감시>(제22호)에 내용을 기재하고, "(기소된) 정치인 (23명의) 재판에서 법원이 선처사유를 남발하거나 특별한 이유도 없이 1심판결의 선고형량을 깎아주는 정도가 심하고, 1심과 2심의 양형사유 제시태도가 180도 바뀌는 등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항소하면 형량이 줄어든다'는 속설을 재확인"

a 조사대상 23건의 담당재판부와 선고형량

조사대상 23건의 담당재판부와 선고형량 ⓒ 참여연대

참여연대가 이번에 조사한 재판은 ▲정치자금법 위반 17건 ▲특가법(뇌물) 및 업무상횡령 등 6건이며, 이중 12건은 2심 판결까지 선고된 상태다. 또 2심 판결이 선고된 12건의 재판 중 10건은 1심 선고형량이 줄은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는 "2심판결 사건 중 1건을 제외한 9건은 선고형량을 줄여야 할 분명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서 "항소하면 형량이 줄어든다'는 속설을 재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김영일, 박명환, 여택수, 최돈웅씨 등의 4건은 1심에서 선고형량이 높다는 피고인측의 주장을 2심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여 감형해 줬으며, 정대철씨 사건은 1심에 비해 범죄사실과 위반법률조항이 추가됐음에도 불구하고 형량이 줄어드는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고 감형됐다.

나머지 5건의 경우 1심에서 범죄사실로 인정한 불법자금 취득금액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감형된 것이지만, 안희정씨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4건은 취득한 불법자금의 전체규모에서 아주 일부만이 배제됐을 뿐인데도 선고형량은 상당히 많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참여연대는 "형량이 무거운 특가법 등이 적용된 사례를 제외한 17건의 정치자금법위반 재판 중 10건은 집행유예, 3건은 벌금형만이 선고돼 전반적으로 선고결과가 온정적"이라며 "이는 법원과 검찰이 정치자금법에 처벌조항이 신설되기 이전에는 포괄적 뇌물죄로 특가법 등을 적용했으나 이제는 형량이 낮은 정치자금법 적용을 선호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비판을 제기했다.

하태훈 교수 "감경적 양형사유인지, 아니면 집행유예 사유인지 분간도 없다"

이에 대해 하태훈 고려대 법학교수(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는 '실형선고받을 걱정없는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이란 글을 통해 "항소심에서의 깎아주기가 무조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이번 사건의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그냥 깎아주고 싶은 마음에 어디 사유가 없나를 눈씻고 찾아봐 준 친절함이 배어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하 교수는 "문제는 집행유예의 사유가 충분하지 않았거나 언급조차 없다는 점으로 형량을 낮추는데 끌어들였던 사유로만 집행유예를 선고해서는 안된다"며 "판결문을 보면 감경적 양형사유인지, 아니면 집행유예 사유인지 분간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참여연대는 법원이 선처사유로 제시한 이유들을 다음과 같이 예로 들었다.

[법원이 제시한 선처사유의 대표적 사례]
①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직책 때문에 한 것이 선처
② 조직을 위해 나서다 벌인 일이니 선처
③ 그동안 국가에 기여한 것이 있다고 하니 선처
④ 친구가 주는 돈을 거절하기 힘들었을 테니 선처
⑤ 정치적 신념에 열중한 순수한 행위여서 선처
⑥ 죄는 미워해도 노약자이니 선처
⑦ 구속재판 받느나 그동안 힘들었을 테니 선처
⑧ 가져다 바치는 돈을 받았을 뿐이니 선처 등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법원이 선처사유를 남발하다보니 5∼6가지씩 적용받지 않은 정치인이 없을 정도로 선처사유로 제시하기에는 부적절한 경우가 많았다"며 "특히 당직자로서 공식업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거나 국회의원 등의 신분이기 때문에 법질서 준수의무를 더 엄하게 물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러한 지위를 선처사유로 적시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조국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법원이 '화이트칼라 범죄'가 초래하는 사회적 유해성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고민할 것을 희망한다"며 "현상적으로 보이는 양형차이에 대하여 법원은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 소장은 "법원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유무죄에 대한 판단만이 아니라 양형과 그 근거에 의해서도 좌우됨을 법원은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선처사유 제조기?
참여연대가 밝힌 선처사유 천태만상(千態萬象)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조국 서울대 교수)는 1일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23명의 정치인에 대한 법원의 1, 2심 재판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정치인들에 대한 법원의 선처사유를 분석했다. 그중 다음과 같이 한가지씩 사례만을 소개한다.

[천태만상(千態萬象) 선처사유 '에서 까지' (주요사례)]

"▣ 법원은 세상 모든 것을 선처사유로 만드는 '마이다스의 손'
▣어떤 것이든 선처의 사유가 될 정도로 갖가지 이유로 선처를 해주고 있는데, 재판부가 선처사유를 남발함으로써 선처사유를 5∼6가지씩 갖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

가)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직책 때문에 한 것이니 선처…
- "거대 야당의 사무총장 및 선거대책본부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 사건 범행에 가담하게…"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 이대경(재판장), 임은하, 장성훈 : 김영일 1심)

나) 조직을 위해 나서다 벌인 일이니 선처…
- "불법정치자금을 자신의 개인적 용도나 이익을 위하여는 전혀 사용한 바 없이 전부 그대로 한나라당에 전달하여 한나라당이 이를 대선자금 등의 용도로 사용하게 한 것인 점…" (서울고법 형사6부 김용균(재판장), 오준근, 김하늘 : 서정우 2심)

다) 그동안 국가에 기여한 것이 있다고 하니 선처…
- "국회의원, 중소기협협동조합중앙회장으로서 국가에 헌신해 왔다고 보이는 점…"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 김문석(재판장), 박연주, 조기열 : 박상규 1심)

라) 친구가 주는 돈을 거절하기 힘들었을테니 선처…
- "피고인과 신동인은 약 20년전부터 종친회 등에서 만나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이였던 점…"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 김병운(재판장), 이명철, 이진석 : 신경식 1심)

마) 정치적 신념에 열중한 순수한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 선처…
- "한나라당에서 대선자금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을 듣고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기업들로부터 대선자금을 받기에 이른 점…"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 김병운(재판장), 이명철, 이진석 : 서정우 1심)

바) 죄는 미워해도 노약자나 선처…
- "피고인은 56세로서 당뇨, 지방간 등의 질병을 앓고 있는 점…"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황찬현(재판장), 조용기, 성언주 : 송진영 1심)

사) 남은 돈이 남들보다 적으니 선처…
- "피고인이 받은 정치자금의 액수가 같은 대통령 선거기간중에 저질러진 다른 정치인들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례에 비추어 그다지 많은 금액은 아닌 점…"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 김문석(재판장), 정연택, 조기열 : 박병윤 1심)

아) 몰수추징할 것도 있으니 선처…
- "불법 수수한 정치자금 등을 전액 추징하게 되는 점 등을 참작…"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 김문석(재판장), 박연주, 조기열 : 박상규 1심)

자) 구속재판받느라 그동안 힘들었을테니 선처…
- "6개월 동안 구금생활을 했고…"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 이현승(재판장), 서보민, 김창권 : 서청원 1심)

차) 돈만 받았지 다른 범행은 없으니 선처…
-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 대가로 부정한 행위를 하지는 아니한 점…"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 박병운(재판장), 이명철, 이진석 : 이광재 1심)

카) 반성한다고 하니 선처…
- "피고인 잘못된 정치관행에 젖어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에 대해 깊이 뉘우치면서…" (서울주앙지법 형사25부 이현승(재판장), 서보민, 김창권 : 최돈웅 1심)

타) 가져다 바치는 돈을 받았을 뿐이니 선처…
- "정치자금을 직접 요구하지 않은 점…"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최완주(재판장), 김갑석, 박연주 : 김종필 1심)

파) 다른 사람들도 선처해주었으니 당신도 선처…
- "다른 불법자금 수수 사건 양형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 이현승(재판장), 서보민, 김창권 : 서청원 1심)

하) 전과 경력이 없으니 선처…
- "벌금형 외에 별다른 전과가 없는 점…" (서울고법 형사1부 이주흥(재판장), 배호근, 임동규 : 여택수 2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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