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지배구조개선, 어디까지 왔나

소버린 "지배구조개선 미흡" 포문 열며 경영권 다툼 재돌입

등록 2004.11.02 10:47수정 2004.11.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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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워커일 호텔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던 SK(주)의 42차 정기 주주총회 모습. 이날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뒤 SK(주)는 강력한 지배구조개선 약속을 내놓았다.
지난 3월 12일 워커일 호텔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던 SK(주)의 42차 정기 주주총회 모습. 이날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뒤 SK(주)는 강력한 지배구조개선 약속을 내놓았다.오마이뉴스 이승훈

"이번 주주총회에서의 승리는 국내외 주주들이 SK가 내놓은 지배구조 개선안의 내용과 실천의지를 높이 평가한 결과다. 향후 전문성을 갖춘 새 이사진을 중심으로 투명경영위원회 설치 등 지배구조 개선을 차질 없이 추진해나가겠다"

지난 3월 12일 소버린자산운용과의 경영권 다툼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제42차 SK(주) 정기주주총회가 끝난 뒤 황두열 전 SK(주) 부회장은 지배구조 개선 약속으로 숨가빴던 경영권 다툼에서 승리한 소감을 대신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7개월 후, 정기주총에서 패한 후 침묵을 지켜왔던 SK의 2대 주주 소버린은 SK의 지배구조 개선 의지에 의문을 표하며 다시 포문을 열었다.

소버린은 SK의 지배구조가 외양만 변화했을 뿐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본질적인 변화는 없었다는 이유로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지난해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를 통한 부당이득 취득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태원 회장의 퇴진을 사실상 요구하면서 '경영권 쟁탈전 2라운드'를 시작한 것이다.

소버린 "지배구조 외양만 변했을 뿐 본질적 개선 없다"

이번 소버린의 행보에 대해 단기적인 주가부양을 위한 것이라는 따가운 시선도 있지만, 소버린은 싸움의 대의명분으로 지배구조개선을 내걸었다. 소버린 측은 지난 7개월 동안 계속 지켜본 결과 SK 이사회가 분식회계, 주주자산 불법 사용 등 과거와 단절하고 자신들이 약속했던 '뉴SK'로의 도약을 위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SK는 주총에서 진땀승을 거둔 뒤 약속했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여러가지 제도를 도입했다. 대표적으로 사외이사 비중을 70%로 확대했고 이사회 내에 투명경영위원회, 제도개선위원회 등 4개 전문위원회를 설치해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이중 투명경영위원회는 한국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범인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사전에 심의하거나 공정거래 자율준수 기능을 담당하는 등 투명경영 실천을 감독하고, 제도개선위원회는 정관 개정 사항 검토, 이사회 운영 규칙 개선 등 실질적인 지배구조개선을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특히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소버린과의 치열한 표대결 끝에 뽑히는 등 이들의 활동 하나하나가 주주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어 과거의 이사회와는 달리 독립적이고 투명한 이사회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높았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단순히 보고를 받고 도장만 찍어주는 이사회가 아니라 일하는 이사회를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었다.

SK(주) 관계자는 "지난 7개월 동안 SK가 추진한 지배구조 개선안은 지난 주총에서 소버린의 반대로 무산됐던 안보다 더욱 강화된 것"이라며 "대한민국 최고의 지배구조를 갖추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했다.

엇갈리는 7개월 평가

이러한 제도적 개선에 대한 외부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박영석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외이사를 70%까지 늘리고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김택권 연세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도 "SK의 제도적 개선 노력을 보면 과거의 허물에 대해 반성을 많이 한 것 같다"며 "새로 도입된 제도 하에서는 사외이사들이 계열사간 내부거래나 부당지원행위를 감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버린의 평가는 다르다. 소버린의 제임스 피터 대표는 지난 달 25일 "SK의 지배구조 변화는 순전히 일반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외양만의 변화일 뿐"이라며 "현재 SK는 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한 핵심 이슈보다는 경영진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홍보활동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소버린은 그 근거로 과거 SK의 분식회계, 주주자산의 불법 사용 등 추문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기업 손실보전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이 이사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일례로 계열사인 SK해운이 경영진의 불법자금 유출과 계열사 부당지원으로 1조원의 손실을 입은 사건과 관련해 이 회사의 대주주인 SK(주) 이사회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소버린 측은 "유사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당시 경영진의 책임소재를 가려 유출된 자금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요구했지만 이사회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며 "이는 지배구조의 핵심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개선 의지가 없음을 잘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5월 참여연대도 손 전 회장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면서 "검찰 수사 결과 손 전 회장의 불법행위로 인한 회사의 손실이 분명히 밝혀졌는데도 SK(주)이사회가 합리적인 이유없이 손해배상소송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이는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유죄 판결을 받은 경영진의 퇴진을 포함, 이들의 불법행위로부터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기업정관 개정에도 SK(주)이사회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버린의 홍보를 대행하고 있는 액세스커뮤니케이션의 이승세 이사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인사의 이사직무 수행 금지 규정은 계열사인 SK텔레콤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SK(주)가 유죄 판결을 받은 최태원 회장을 의식해 사내이사의 자격 요건에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버린은 이런 문제들에 발목 잡혀 SK(주)가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정유회사임에도 아직 동종업계 기업들과 비교해 바닥권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SK의 제도적 개선 노력은 긍적적으로 평가하면서도 "SK해운 문제에 대해서 참여연대가 SK 이사회에 손해배상 청구를 요구했지만 이사회가 이를 미루고 있다"며 "여전히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전 회장 등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K(주)관계자는 "과거에 있었던 문제들로 인해 당시 경영진이 처벌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고 지금은 회계적인 문제도 다 털었다"며 "과거의 일에 대해서 현 이사회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문제들의 재발을 막기 위해 사외이사 중심의 경영 시스템을 만든 것 아니냐"며 "현재의 시스템 하에서는 과거의 불법행위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순 사외이사 등 SK(주) 사외이사 7명도 2일, 소버린에 보낸 질의서를 통해 "최근 SK의 실적 및 주가 등이 현저하게 개선된 상황을 볼 때 소버린이 주장하는 이슈들은 SK의 기업가치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며 소버린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들은 또 "SK 이사회는 지금까지 기자재 매각 안건 부결, 사외이사가 발의한 우선주 매입안건 가결, 회계법인 선정 방식 변경 등 안건에 대한 면밀한 사전검토와 공개적이고 활발한 토론을 통해 진정한 이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덧붙였다.

SK 이사회, 본격적인 시험 아직 치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같은 논란에 대해 SK의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새로 구성된 SK(주) 이사회는 지금까지 그들의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본격적인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

김선웅 소장은 "과거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SK 이사회가 향후 불거질 수 있는 최고 경영자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계열사의 지원 문제를 어떻게 차단할 수 있느냐가 독립적인 이사회 운영과 투명경영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석 교수도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계열사 주식의 취득을 막거나 현재 가지고 있는 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주주들 입장에서는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이사회의 의지를 볼 수 있는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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