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지금부터 두발검사를 실시한다!"

11월 3일 '학생의 날'에 학생 인권을 생각한다

등록 2004.11.02 22:43수정 2005.08.0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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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은 75주년 '학생의 날'입니다. 학생의 날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들이 통학열차 안에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희롱한 사건이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11월 3일부터 조국의 독립을 외치는 함성으로 울려 퍼져 전국 방방곡곡에서 시위가 벌어지게 된 것을 기념해서 만든 날입니다.

이 시위는 3·1운동 이후 일제 치하에서 벌어진 최대 독립운동으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당시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독립은 더욱 더 늦춰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당시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배우기만을 강요당했던 대상이 아니라 당당하게 우리나라의 운명을 개척한 사회의 일원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75년이 지난 현재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학생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학생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당당하게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학창시절을 경험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10년도 넘었지만 그때 제 자신이 경험했던 수많은 일들은 현재도 버젓이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사회의 수많은 현장에서 서서히 인권이 개선되고 있지만 학교만은 예외인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이 경험한 몇 가지 사건으로 현재 학생의 인권은 얼마나 개선되고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잠 안 재우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사기관에서 철야조사는 관행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피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잠도 재우지 않은 채 철야조사를 하는 관행은 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수사기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잠 안 재우기 고문'을 당한 것 같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들의 등교시간은 오전 7시였습니다. 방송으로 하는 '0교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교시간은 수업과 야간자율학습까지 마치는 오후 11시였습니다. 더군다나 상당수 학생들은 학원 한두 곳을 다니다 보니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새벽 1-2시가 되어야 가능했습니다.

다음날 학교를 다시 등교하기 위해서는 오전 6시에 기상해야 하니 많이 잔다고 해도 4~5시간입니다. 아침밥도 먹지 못한 채 도시락 2~3개를 챙기며 학교로 헐레벌떡 뛰어가던 생각이 새롭습니다.

더군다나 1분이라도 늦게 등교하면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엎드려 뻗쳐 자세로 1시간은 견뎌야 합니다. 가끔은 너무 잠이 와 그 자세로 몇 번 잔 적도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수면권을 제약 당하는 곳이 어디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유독 고등학교 3학년만 되면 수면권을 제약 당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요?

더욱 슬픈 것은 이런 현실은 조금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머리카락 가위질 당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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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숙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 학생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두발 자율화'였습니다. 학급회의만 열리면 두발 자유화를 요구했고 학교에서는 언제나 단정한 모습을 강조하며 머리를 짧게 자르길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머리를 마음껏 기르고 멋 내고 싶어하는 것은 본능과 같은 욕망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눈을 요리조리 피해 학교 규정인 3cm를 넘기기가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공포의 두발검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시간이었습니다. 학생 주임 선생님이 바리캉을 들고 교실로 들어오셨습니다.

"자… 모두 눈감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부터 두발검사를 실시하도록 한다."

이 말은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자칫하면 머리가 다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학생주임 선생님이 지나갈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납니다.

"이놈들 머리가 길구나. 내가 단정하게 깎아 주마."(쓱싹 쓱싹)

눈을 떠보면 저를 포함해 학생들의 머리는 쥐가 먹은 듯 움푹 패여 있습니다. 교실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떨어진 채 말입니다.

그때의 공포스런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머리가 긴 것과 공부하는 것이 무슨 관련성이 있기에 이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매 견디기'

학창 시절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사랑의 매'입니다. 반에서 하위권을 늘 유지했던 저에게 매를 맞지 않는 날은 너무나 운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한두 대 맞는 것은 그냥 웃으면서 맞을 수 있을 만큼 훈련이 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가끔 재수 없는 날은 과목 선생님들마다 돌아가며 때리기도 했습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학교는 하루종일 맞는 소리가 멈추질 않습니다.

떨어진 점수 숫자만큼 맞거나 반 평균에서 밑도는 수치만큼 사랑의 매를 대는 것은 전통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중간고사를 마치고 점수를 매겨 보니 모든 과목에서 점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취향에 맞는 막대기를 들고 들어와 신체 각 부위를 골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수학, 국어, 역사 등 과목 수업이 진행될 때마다 한번은 종아리, 한번은 손바닥, 엉덩이에다 심지어 뺨까지 선생님의 취향에 따라 다 맞았던 날이 있었습니다.

10년 훌쩍 지나고 있지만 그 날의 설움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온몸이 퉁퉁 부은 채 다리를 절룩거리며 집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자다 너무 아파 잠을 깨 보면 어머니가 근심스러운 눈으로 다리에 약을 발라주곤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이루어지는 부모님 재산 조사,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체력훈련(기합), 수시로 이루어지는 소지품 검사 등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 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을 '그때 그 시절'로 치부하며 웃으며 얘기하기에는 지금의 학생 인권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수많은 일들이 지금도 학교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학생들을 단순히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권을 가지고 있는 사회의 주체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75년 전 암울한 우리나라의 운명을 고민하며 일제에 맞서 온몸으로 싸웠던 학생들이 더는 사회적 약자로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요즘 고교등급제와 대입 개선안 문제로 사회가 떠들썩합니다. 하지만 이런 떠들썩함 속에 학생들의 의견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너무나 씁쓸합니다. 교육 문제에 학생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는 그런 사회가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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