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주체가 되는 학생의 날 행사

우리 학교 학생의 날 표정

등록 2004.11.03 15:06수정 2004.11.0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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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비에 떨어진 잎새를 밟으며 등교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 표정도 잎새처럼 곱다.
가을 비에 떨어진 잎새를 밟으며 등교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 표정도 잎새처럼 곱다.신병철


“야, 선생님이다.”

아이들이 수군대더니 몇몇이 슬슬 꽁무니를 뺀다.

“어서 들어와. 미적 거리지 말고.”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손짓을 하자, 아이들 몇이 그래도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느릿느릿 걸어 들어온다.

“어, 오늘은 교문지도 안 하나보네.”

그제야 환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얼굴이 단풍잎보다 더 곱다.


어제 내린 비로 교문 안쪽 나무들은 제 잎을 툭툭 등굣길로 떨어트린다. 그 노랗고 붉은 나뭇잎을 밟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가을 하늘처럼 싱그럽다.

“자, 어서 오세요. 여기 학생의 날 유인물과 과자 받아가세요. 퀴즈에도 응모하세요. 상품권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학생회 친구들은 신이 나서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과자와 유인물을 나누어 준다.

“허허, 늦었다고 벌을 주기보다 앞으로는 이렇게 상을 주면 좋겠네.”

교감 선생님의 표정도 환하다.

오늘은 ‘학생의 날’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해마다 이렇게 열고 있다.

학생의 날, 가을이 깊다. 그 가을 속으로 등교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미래가 우리의 역사가 된다.
학생의 날, 가을이 깊다. 그 가을 속으로 등교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미래가 우리의 역사가 된다.신병철


나는 모처럼 환한 얼굴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교직 초기의 기억을 떠올린다.

학생의 날은 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던 그 시절, 어쩌다 수업 시간에 학생의 날의 유래인 광주 학생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이 더 낯설어 했다. 기껏 반응이, “그럼 학생의 날이니까 하루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하는 정도였다.

이름만 학생의 날로 걸어놓지 말고, 학생의 날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학생의 날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올리거나, 아이들에게 기념품이라도 하나씩 주는 교사는 학교측으로부터 문제교사로 찍히기 일쑤였다. 그저 학생은 교육을 받는 피교육자일 뿐, 교육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고, 학생의 날을 입에 올리는 교사는 의식화 교육의 주범이라는 논리가 팽배해 있던 침묵의 시절이었다.

이제 그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교육계에서는 학생의 날에 대한 올곧은 자리매김은 요원하다. 그저 선생님들이 계기교육의 일환으로 아이들에게 학생의 날을 이야기하고, 기념품을 나누어주는 정도로 마무리될 뿐이다. 학교 차원에서 행사를 하는 학교는 손을 꼽아야 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학교의 학생의 날 잔치는, 비록 아침 시간을 할애해 잠시 이루어졌지만,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어제 오후, 수업이 끝난 후 학생회 친구들이 모두 모여 학생의 날의 유래와 의미를 되새기는 유인물을 제작했다. 학생회 친구들은 그 유인물과 퀴즈 문제지와 과자를 일일이 한 군데 철해 나누어 줄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오늘 아침 등굣길에 전교생에게 그것들을 나누어주고, 퀴즈 응모를 받았다. 물론 퀴즈는 학생의 날과 관련된 문제, 우리 학교와 관련된 문제들이었다. 등굣길에 뜻하지 않게 과자를 받아든 전교생은 모두들 기쁜 표정이었다. 특히 곧 수능 시험을 앞둔 고3 학생들에게는 모처럼 마음을 풀어놓고 웃어보는 아침 시간이 되었다.

학생의 날 기념 퀴즈에 응모하는 아이들의 모습
학생의 날 기념 퀴즈에 응모하는 아이들의 모습신병철

그리고 수업 시작 전에 약간의 시간을 내 학생의 날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교에 방송으로 전해진 이 행사의 정점은 퀴즈 정답 추첨이었다.

학생회장과 교장, 교감 선생님이 추첨을 해서 당첨된 스무 명의 친구들에게는 문화 상품권이 지급되었다. 당첨이 되어 문화 상품권을 받은 아이들도, 당첨이 되지 못한 아이들도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 역력했다.

이 행사의 모든 준비는 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학교의 한 주체로서의 학생들의 자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도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행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그 역사를 과거의 사실로만 남겨두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우리 역사의 주체가 될 아이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통해 자신들이 써 갈 역사의 방향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학생의 날에 대한 계기 교육이야말로 아이들의 미래의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가장 좋은 교육 자료 중의 하나다.

학생의 날은 광주 학생 사건을 기념해 만들어진 날이다. 식민지 시대 광주로부터 시작해서 온 나라에 울려 퍼진 조국 독립에 대한 거센 함성은 그저 과거의 울림만은 아니다. 우리 학생들의 선배들인,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당시의 학생들의 역사적 경험을 배움으로써, 교육의 주체 중의 하나인 학생의 자리와 자신들이 써나갈 역사의 길을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광주 학생 사건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는 현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로 북적대는 행사장. 입시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하루만이라도 즐거워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눈물겹다.
아이들로 북적대는 행사장. 입시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하루만이라도 즐거워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눈물겹다.최성수

그런 점에서 학생의 날 기념행사는 역사 교육, 민족 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교육 활동의 하나다.

요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제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민족의 삶을 지켜내는 바탕이 된다. 역사 교육은 국사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날과 같은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이 배경이 된 날을 학생들이 직접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도 민족사를 바로 보게 하는 중요한 교육이 될 것이다.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각 학교 나름대로 학생이 주축이 되어 특색 있는 학생의 날 행사를 기획하고 실시해 보는 날로 학생의 날이 자리 잡기를, 나는 우리 학교 학생의 날 행사를 지켜보며, 새삼 기대해 본다.

학생의 날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도 살아있는 진행의 역사다. 아이들의 삶 속에 학생의 날이 살아있다.
학생의 날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도 살아있는 진행의 역사다. 아이들의 삶 속에 학생의 날이 살아있다.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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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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