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89

숨겨진 비밀 (7)

등록 2004.11.03 15:05수정 2004.11.0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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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호영은 자신들의 목숨이 달린 일인지라 애가 탔다. 그런데 북의는 대충 살펴보고는 가망이 없다며 물러섰다. 그리고는 한눈에 봐도 별 볼일 없는 하인 같은 놈을 치료하려들자 그만 분노가 폭발하였다. 그렇기에 천의장 참화가 빚어진 것이다.

어쨌거나 구호광이 맥없이 죽어버리자 십팔호영은 머리를 맞댔다. 무림천자성이 천하를 장악한 이상 도주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주하는 동안 온갖 고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하여 머리를 맞대고 숙의를 거듭하던 중 누군가의 입에서 그야말로 기막힌 묘안(妙案)이 나왔다. 장백산으로 향하던 중 일행은 태극목장 인근을 지난 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보았던 목동(牧童)이 구호광과 흡사하였으니 그를 납치한 뒤 그를 대신케 하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무공 연마를 마치려면 수년은 더 있어야 하니 얼굴이 약간 다른 것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대안(代案)이 있을 리 없는 상황이었다. 하여 곽인열이 납치되었던 것이고, 오년 동안이나 장백산의 이인으로부터 무공을 전수받은 뒤 무림천자성으로 보내졌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구호광과 곽인열을 전혀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성장하면서 종종 얼굴이 바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시 워낙 닮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소리였다. 구호광은 약간은 쉰 듯한 독특한 음색의 소유자이고, 곽인열은 낮은 저음이지만 맑은 음색의 소유자이다.

사내들은 누구나 성장하면서 변성기(變聲期)를 거친다. 이때 음성이 변하기도 하는데 본시 맑은 음색이었던 이가 쉰 듯한 음색으로 바뀌기는 하지만 원래 쉰 음색이 맑아지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구호광의 음색을 기억해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아혈을 제압해두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성장하는 동안 곽인열은 무언공자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자신을 호위하였던 십팔호영의 협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왜 원치 않는 곳에 끌려와 원치 않는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잊은 것은 아니었다.


묵묵히 무공연마에 힘쓰는 한편 기회를 노리던 그는 얼마 전 십팔호영 전원을 다른 인물로 대체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늘 엄중한 감시를 당하면서도 복수할 기회를 노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곽인열의 지난 십 년은 눈물겨운 세월이었다. 매일 밤, 십팔호영의 감시를 따돌리고 무림천자성 밖에 나가 쓸만한 인재들을 물색하는 한편 무공 전수에 힘쓰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해 늘 피곤했으며, 혹시라도 발각될까 하루종일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십팔호영 가운데 마지막 인물을 대체하던 날 곽인열은 이회옥과 처음 조우하였다. 철기린이 애마인 비룡을 자랑하기 위해 불렀던 날이다. 이날 그는 가짜 십필호영에게 이회옥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였다. 왠지 낯이 익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참 뒤, 그러니까 이회옥이 철기린으로부터 봉신(棒神)이라는 외호를 얻어 마선봉신(馬仙棒神)이 된 날, 무언공자는 산해관까지 갔다 온 수하로부터 놀라운 보고를 받았다.

이날 이후 더욱 세심히 살핀 결과 이회옥이 태극목장 출신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태극목장만의 독특한 말 다루는 기술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이즈음 곽인열은 태극목장을 몰살시킨 장본인이 철마당주와 철검당주, 그리고 철기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여 어떻게 하면 그들을 제거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려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쳐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잘못되면 원수를 갚기는커녕 목숨만 잃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배루난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이회옥이 규환동에 하옥되었다. 그리고 상처에 발라진 마늘즙에 갠 고춧가루 범벅 때문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다 혼절하였다.

그것을 발랐던 뇌군명이라는 옥졸이 빙화에 의해 목숨을 잃은 뒤 흑의복면을 한 의문의 인물이 나타나 이회옥에게 영단 하나를 복용시킨 일이 있었다. 덕분에 아주 빨리 상처가 아물었고, 의문의 내공이 생겼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잠이 들 때마다 나타나 추궁과혈을 한 복면을 쓴 의문의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무언공자 노릇을 하던 곽인열이었다.

환세음양단은 분명 희대의 영단이다.

범부(凡夫)를 졸지에 내가고수로 바뀌게 할 효능을 지녔기에 무림인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취하고 싶은 귀물(貴物)이다. 하지만 앞이 있으며 뒤가 있고, 겉이 있으면 속이 있듯 제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무언공자나 철기린, 그리고 철룡화존에게는 그리 대단한 물건이 못 되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재물과 천하 최강의 권력을 움켜쥐었기에 태양금구의 내단이나, 만년하수오, 인형설삼이나 만년학정홍 같은 것들을 많이 복용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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