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살, 성년식을 치르기엔 어리다구요?

[동영상] 대안학교 마리학교의 성년식을 소개합니다

등록 2004.11.04 15:41수정 2004.11.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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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이 된다는 것을 권리와 의무 관계로 이해하는 건 어른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당사자인 아이들은 법적인 권리가 어떻고 의무가 뭔지보다는 성년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설레고 벅찹니다. 어린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적기 때문입니다.

전희식
강화도에 위치한 대안중학교인 '마리학교'에서는 지난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제5회 가을생명축제를 치르면서 성년식 순서를 마련했습니다. 27일부터 29일까지 3일에 걸쳐 실시된 이 성년식은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서 성년식을 치를 사람을 뽑았는데 이나리 학생과 전새들 학생이 선정됐습니다. 특이하게도 학부모님 한 분도 생물학적인 나이로는 성년을 훨씬 넘겼지만 자신을 돌아 보는 계기를 갖고 싶다며 성년식에 참여하셨습니다.


열네살밖에 먹지 않은 아이가 성년 의식을 치른다는 게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너무 오랫동안 사람을 애 취급합니다. 어릴 때는 오냐오냐 키우고 대학 가면 학비 대 주고, 심지어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래저래 부모가 돌봐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먹고 자는 일을 스스로 해결하는 데 가장 긴 세월이 걸리는 동물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처럼 만 20살이 되어야 비로소 투표권을 주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곳뿐이라고 합니다. 어떤 나라는 15살이나 16살에도 투표권을 줍니다.

성년식을 기획한 마리학교 측에 따르면 초경을 한 여학생과 변성기를 맞은 남학생들에게는 모두 성년식에 참가할 자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행사 진행을 맡은 북미인디언 연구자 서정록 선생과 마리학교 교장 황선진 선생은 한결 같이 열네살이면 절대 이른 나이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긴 신라 시대 화랑들은 열두세살부터 수련을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고 갑오동학혁명 때 사발통문에 서명한 동학의 지도부 스무사람 중 두사람은 14살과 16살이었다고 합니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이들을 '동몽접장'이라 불렀는데 항상 맞절로 공대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대접 받는 만큼 그 역할을 합니다.

전희식
성년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엄숙하고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성년식의 절정은 만 24시간 동안 정화 움막에 들어가 침묵과 명상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음식은 물론 물도 한 모금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며 자기 인생을 돌아봅니다.

명상을 하다가 졸리면 억지로 잠을 쫒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평소처럼 밤이라고 해서 잠자는 것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이 정화 움막에는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고 요강 하나가 유일한 생존 수단이었습니다.


이 정화 움막 얘기를 듣자 저는 '아바타 프로그램'의 창시자 해리 팔머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창조학>이라는 저서에서 '한계 없는 의식(awareness without limit)'을 경험하고 창조 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 없는 의식을 체험한 곳이 바로 이 정화 움막과도 같은 '감각차단탱크(Sensory deprivation tank)'였습니다. 해리 팔머가 얘기하는 '창조의 세계'는 곧 '내 뜻대로 살기'로 '뜻한 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십여년 전 두 차례에 걸쳐 아바타 수련을 하면서 제 뜻을 세웠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정보로부터 스스로를 차단시킨 채 그들이 집중했던 주제는 세가지였다고 합니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
둘째, 나는 어디서 왔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정화 움막에서 나온 이들을 맞이하는 '꽃의 축복'과 '차 공양'도 참 감동스러웠습니다. 특히 여학생에 대한 '꽃의 축복'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의 모든 이들의 축복을 받았고 또 모든 이들을 축복했습니다. 인류의 어머니로서 여성을 받드는 의식이 오랫동안 진행됐습니다.

교장과 학부모, 친구들이 차례로 올리는 성년 축복의 말씀은 거룩하기까지 했습니다.

축복의 노래

옛날, 아주 먼 옛날
대지 위에 동물들과 식물들과 나무들과 바위들만 있을 때
하늘은 여인의 가슴을 가진 신령을 보내 주시었다.
여인의 가슴을 가진 신령은 산과 들을 헤매며
삶의 지혜와 예지를 찾았고
동물들의 맛을 일일이 모아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구별하였으니
그때부터 심고 기르고 가꾸는 것이 시작되었다.

......... (중략) .......

여인의 가슴을 가진 신령의 이름은
사랑과 평화였다.
.......... 이윽고 여인의 가슴을 가진 신령이 이 세상에 온 뒤에야
세상은 균형과 평화가 가득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서로 공경하였다.


해돋이 맞이
해돋이 맞이전희식
성년이 된 남학생은 스승과 부모님에게 차 공양을 하는 것으로 성년의 첫 순간을 맞았습니다.

성년식을 치른 이나리 학생과 전새들 학생은 정화움막에 들어가는 날 새벽 3시에 신령한 산인 강화도 마리산에 올라 해돋이를 맞았습니다. 하루 전날에는 강화도 도장리의 논바다와 오상리의 고인돌에 가서 명상과 쑥불 의식을 치렀습니다. 이러한 준비 의식과 정화움막에 들어가 명상하는 동안에는 부모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준비 의식 하루, 정화움막 명상 하루, 축복의 성년제 하루 이렇게 3일간 진행된 성년식을 서툰 솜씨지만 캠코더에 담아 편집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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