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물살을 거슬러 가을을 좇다

고즈넉한 장항·서천·한산·강경의 추색

등록 2004.11.05 16:20수정 2004.11.0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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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낙동강, 영산강과 함께 우리 나라 4대 강의 하나인 금강에 아직 철새는 날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 금강의 볼거리가 철새만 있더냐. 물길 따라 흘러가면 보이는 것이 모두 볼거리요, 시장기를 채우는 것이 모두 토속 먹을거리인 것을.

오후 늦게 서울을 떠나 금강 하구언의 끝인 충청남도 장항에 도착할 무렵 해는 완전히 져서 사방이 어둡다. 약속한 지인과 어렵사리 만나 안내 받은 곳은 한 횟집. 바다에 인접한 도시라 횟감이 풍부하고 밑반찬이 거개가 해물이다. 오징어, 산낙지, 꽃게, 털게, 장어, 가리비, 키조개, 피조개, 석화, 새우, 전복 등 셀 수 없는 해물이 상다리를 위협(?)한다.


a 장항 한 횟집의 상차림. 온갖 해물이 그득하다.

장항 한 횟집의 상차림. 온갖 해물이 그득하다. ⓒ 유성호

넓은 하구언을 채우고 있는 바닷물은 조명에 번들거리고 건너 전라북도 군산항의 불빛이 어둠을 사르고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도계(道界)를 이루면서 마주보고 있는 도시는 장항과 군산이 유일하다. 지정학적 위치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장항은 군산보다 발전 속도가 더디고 인구도 늘지 않는다. 그래서 군산에 대한 이곳 주민들의 피해의식은 남다르다는 지인의 설명에 술잔이 빠르게 비워진다.

서천 한 모텔에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나와서 보니 고만고만한 건물 사이에 휑하니 서 있는 7층 서양식 모텔 건물이 오히려 볼썽사납다. 황태해장국과 된장찌개로 속을 달래고 간밤에 주인을 잘못 만나 고장이 난 안경을 고치려 안경점을 찾았다. 서천에 하나밖에 없다는 안경점 주인은 아픈 다리에 쑥 뜸을 뜨다말고 나와 정성스레 고쳐주고는 그냥 가란다. 이런 저런 따뜻한 인심이 한껏 느껴지는 곳이다.

a 가을걷이가 끝난 들녁.

가을걷이가 끝난 들녁. ⓒ 유성호

아쉽지만 서천에 있어 또 하나의 볼거리인 마량포구와 후덕한 인심을 뒤로 하고 금강을 거슬러 길을 잡는다. 인적 없는 도로는 농촌의 한갓진 정취보다는 을씨년스러움으로 차창을 스친다.

도로 양쪽으로는 가을걷이가 끝난 논이 펼쳐지고 논 위로는 잘 묶여진 볏단이 듬성듬성 흩어져 있다. 모시의 고장 한산에 접어들자 차는 신성리 갈대밭으로 향했다. 함께 간 지인이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촬영지였다고 귀띔했다. 그곳에서 극중 북한군 송강호와 남한병사 이병헌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a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촬영지인 한산 신성리 갈대밭.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촬영지인 한산 신성리 갈대밭. ⓒ 유성호

금강 하구둑 공사로 인해 잡초가 늘고 있다는 마을 부녀회원의 푸념이 있지만 갈대밭은 넓고 그윽했다. 바람결에 따라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기면서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한껏 받고 있는 자태가 아름다웠다. 갈대밭 사이사이에 비집고 자리를 잡은 억새의 뽀얀 모습과 형형색색의 코스모스도 가을의 정취를 더했다.


a 빽빽히 들어서 있는 갈대밭 안쪽은 새들의 천국이다.

빽빽히 들어서 있는 갈대밭 안쪽은 새들의 천국이다. ⓒ 유성호

갈대밭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끊임없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날카로운 울음이 새어나오는 갈대밭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름 모를 새들의 천국이다. 참새보다 작은 잿빛을 가진 작은 새는 이방인의 모습이 궁금했던지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는 이내 갈대를 파고 들어간다.

a 갈대밭 옆을 끼고 흐르는 금강. 겨울이면 철새들로 장관을 이룬다.

갈대밭 옆을 끼고 흐르는 금강. 겨울이면 철새들로 장관을 이룬다. ⓒ 유성호

갈대밭 옆을 유유히 흐르는 금강에는 군데군데 새 무리가 떠간다. 지금은 한가한 모습이지만 초겨울이 되면 이곳은 철새의 낙원이 된다. 날갯짓 소리, 새울음 소리로 시끌벅적해지는 것은 12월 초. 올해도 세계적인 철새축제가 12월1일부터 5일까지 금강 하구언에서 열릴 예정이다.


a 경관과 부조화스럽지만 마을 주민들의 정성이 엿보이는 현판이 사잇길 곳곳에 걸려 있다.

경관과 부조화스럽지만 마을 주민들의 정성이 엿보이는 현판이 사잇길 곳곳에 걸려 있다. ⓒ 유성호

갈대밭 사잇길로 걷노라면 중간중간 내걸린 시며 시조, 한시가 적힌 현판을 만날 수 있다. 주변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정성을 들인 주민들의 성의가 엿보인다. 폭 200미터, 길이 1Km, 6만여 평의 땅위에 늘어 선 갈대밭. 3미터나 되는 높은 키 때문에 웬만큼 위에서 내려다봐도 길과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a 갈대밭 길을 걷고 있는 다정한 모자.

갈대밭 길을 걷고 있는 다정한 모자. ⓒ 유성호

다정한 연인, 행복한 모자, 우정어린 친구들이 끊임없이 들고나는 갈대밭에서 그들은 무슨 추억을 만들까. 사색하기 좋은 길들이 여기 저기 갈래로 나 있고 마지막 나오는 길은 음악이 흐르고 있다. 갈대밭 사이사이에 스피커를 묻어두고 잔잔한 가요를 흘려 보내고 있다.

a 음악이 흐르는 길. 스피커가 설치돼 있어 음악을 감상하며 거닐 수 있다.

음악이 흐르는 길. 스피커가 설치돼 있어 음악을 감상하며 거닐 수 있다. ⓒ 유성호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그것을 말없이 서서 바라보는 갈대의 모습이 주는 고즈넉함 속에 짧아진 가을 햇살이 물결에 부서진다. 갈대밭만 구경하고자 멀리 서울 등지에서 온다면 조금은 실망하리라. 말 그대로 갈대밭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장철이 가까워 오고 있는 지금이라면 한 가지 덤을 옆 동네 강경에서 얻을 수 있다.

a 바람에 맞서지 않고 태양의 온기를 한껏 받고 자라는 갈대.

바람에 맞서지 않고 태양의 온기를 한껏 받고 자라는 갈대. ⓒ 유성호

차를 몰아 한산에서 논산방향으로 나올라치면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젓갈촌이 반긴다. 차를 세우기가 무섭게 달려 나와서 반갑게 맞이하는 젓갈촌 상인들. 김장 생각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필요한 젓갈을 묻는다. 멸치액젓과 황석어젓을 사오라신다. 5kg 멸치액젓이 1만 3000원, 황석어젓은 2만 원을 달라고 한다.

a 6만여평 대지에서 자라나는 갈대가 장관을 이룬다.

6만여평 대지에서 자라나는 갈대가 장관을 이룬다. ⓒ 유성호

이들과 함께 반찬으로 먹을 어리굴젓 한 통을 사자 무짠지와 군고구마를 덤으로 넣어 준다. 젓갈 통을 차에다 모두 실어주고 차가 떠날 때까지 배웅하는 그들의 인심은 참 거짓없어 보기 좋았다. 이 곳의 젓갈 축제는 매년 10월에 열리고 올해는 지난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열렸다고 한다. 축제 기간에는 20% 할인된 가격으로 젓갈을 구입할 수 있다.

서둘러 내려갔던 충남의 끝 장항에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들른 서천, 한산, 강경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가을은 아직 포근하고 깊을 뿐이었다. 이 곳에 겨울이 쉬 오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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