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그렇게도 정신 못 차리고 있냐?

등록 2004.11.09 10:44수정 2004.11.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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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아서는 건강하고 강인하게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겉 모습만 괜찮게 보였지 그리 강하지도 않고 점점 쇠약해져 가는 나무였습니다. 겨울이 다가와 바람이 강해지자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나무들이 그런 자신을 얕보는 것같이 느낀 나무는 새로운 나뭇가지를 자라나게 하여 훨씬 더 강하고 멋있게 보이도록 만들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태풍이 몰아쳤고, 그 나무는 뿌리 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었을 때 옆의 나무가 자신의 몸에 기댈 수 있도록 도와준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태풍이 그치고 바람도 잠잠해지자 그제야 그 나무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무는 자신을 도와 준 옆의 나무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박철
"고맙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이런 세찬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을 수가 있나? 모진 태풍 속에서도 나를 도와 줄 힘까지 지닌 비결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 없겠나?"

도와 준 나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야. 자네가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에 온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는 동안 나는 뿌리를 땅 속으로 깊숙이 내렸다네."




어젯밤 꿈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나타나더니 나를 꾸짖듯이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신학교 동문회에 참석하여 일행과 함께 경기도 용문에 있는 용문사에 간 적이 있지요. 산행 길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또 경사도 완만했습니다. 또 우거진 숲 속에는 엊그제 내린 눈이 아직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찰 건물이 보일 즈음에 갑자기 내 눈앞에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가 나타났습니다. 나무가 어찌나 크고 우람한지 나는 그 나무쪽으로 걸어가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나무의 이력을 설명하는 현판에는 그 나무가 1100살이나 된 은행나무라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너무 늙은 탓에 가지들이 자꾸만 땅으로 향하기도 하고 벌어지기도 해서 가지들끼리 쇠사슬로 묶인 채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 나무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내려왔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자연의 위대함을 만나서 그런지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고,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었지요. 그때는 그저 좋은 구경을 했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나무의 모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눈으로 나무를 본 것은 채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그 나무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습니다. 더욱 더 이상한 것은 내 맘 속에 그려진 그 나무가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넌 왜 그렇게도 정신 못 차리고 있냐? 내가 너라면…."

아무 생각 없이 실실 웃고 다니다가도 조용히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들려옵니다. 우연히 만난 노목(老木) 한 그루가 이토록 절실히 와닿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깨어 살아가지 못하는 내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한밤중에 가로등이 꺼져 있으면 더 이상 가로등이 아니듯이, 나 자신에 대해서 깨어 있지 않으면 더 이상 참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내 자신은 뛰고 있는지, 아니면 걷거나 기어가고 있는지…. 깨어 있지 않으면 나는 그저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예수라는 사나이는 그 나무처럼 계속 말씀하십니다.

"늘 깨어 있어라.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또한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무와는 달리 한 가지 잊기 쉬운 부연 설명을 붙여 놓으셨습니다. 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뇌물의 유혹을 늘 가지고 살아가는 이에게,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는 우리에게, 혼자 힘으로는 살기 힘든 우리에게, 적당히 타협하면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끈질기게 말씀하십니다.

"넌 왜 그렇게도 정신 못 차리고 있냐? 내가 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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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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