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미역국입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 어제보다 더 쫄아서 많이 짰습니다.강충민
장모님께서는 첫째가 태어나면 산후조리를 꼭 해 주시겠다고 출산 전부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태어나기 두달 전 갑자기 중풍이 와서 거동하는 게 많이 불편해지셨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장인 어른이 도와 주지 않으면 행동하시는 게 많이 힘드십니다.
아내는 둘째를 낳았는데 장모님이 없는 게 못내 서럽고 장모님이 무척 보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첫째를 낳고는 저희 부모님이 계신 서귀포집에서 산후 조리를 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산후조리원에 들어가겠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시어머니가 신경 써 준다고 해도 친정 엄마에 비하면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자기를 쏙 빼닮은 딸을 낳고 보니 거동이 불편한 장모님 생각이 더 났을 겁니다. 병실로 온 아내는 말이 없었습니다. 약간은 침울해 보이기도 했구요. 저는 짐짓 모른 척하며 태연하게 있었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산후조리원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지난 주 목요일에 우리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니도 두차례 왔다 가시고 누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러 오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일 없이 순조롭게 산후 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구요.
그런데 어제였습니다. 퇴근하고 아내에게 먹이기 위해 미역국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에 갔습니다. 그리고 쌀, 자른 미역과 쇠고기, 버섯, 깻잎 등을 샀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길게 줄이 늘어선 계산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불현듯 장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처음 결혼 승낙 받으러 갔을 때 "우리 애는 아무것도 못하니까 자네가 밥 짓고 반찬해야 한다"고 여장부처럼 또랑또랑하게 말씀하시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아내는 딸 셋인 집에 막내딸입니다. 빈말이 아니라 저는 정말 횡재를 했던 거지요.
계산대 위에 미역을 올려 놓고 국거리용 한우 쇠고기를 다시 집어서 올려 놓는데 울컥하는 게 솟구쳐 오르더군요. 그냥 서러웠습니다. 첫째인 아들 녀석을 낳고 인사 갔을 때 당신이 산후조리를 해 줬어야 했다고 울면서 어눌하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씀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장모님을 보며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던 아내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이제 마흔줄을 바라보는 늙은 놈이 계산대에 위에 물건을 올리다 말고 눈물을 참고 있었으니, 얼마나 웃겼을까요.
집에 돌아와서 깻잎 묶음을 하나씩 하나씩 잘라 흐르는 물에 씻었습니다. 양파 다져 넣은 것을 간장과 고춧가루, 참깨 등등을 넣어 깻잎절임을 할 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아내는 제가 만드는 반찬 중에서 깻잎절임을 가장 좋아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