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분만실서 은행으로 달려간 사연

어리버리 남편과 잘난 아내의 파란만장 출산기

등록 2004.11.10 18:47수정 2005.08.0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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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수요일 새벽이었습니다. 아내가 잠든 저를 살며시 깨웠습니다. 저는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배가 아프다"며 주섬주섬 며칠 전부터 준비한 출산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아내와 같이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 진통이 심하지 않다고 하여 아내의 동태를 살피면서 압력밥솥에 밥을 하고 무우를 넣은 시원한 북어국을 끓였습니다. 와이프는 규칙적으로 진통의 시간을 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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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숙

첫째 아이는 아들이었는데, 달 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8개월만에 태어나 한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 탓에 혹시나 둘째도 예정일 보다 세상을 일찍 보게 될까 마음을 졸였던 거죠. 아내가 보름 정도 일찍 태어나는 것은 괜찮다며 달력을 보여줘서 위안을 삼았습니다.

아내가 조금씩 진통주기가 빨라진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저는 그 사이 큰 아이 세수를 시킨 뒤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낼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힘쓸 아내에게 밥 한 술 뜨라고 권했구요.

그리고는 콜택시를 불러 다니던 병원에 가서 분만대기실에 입원을 했습니다. 회사에도 미리 전화해서 아내의 출산으로 어쩌면 출근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고, 서귀포에 있는 어머니에게도 연락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귤 따러 가려다가 전화를 받고는 금방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잘 짜여진 각본처럼 아내의 출산 과정은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적어도 아내의 회사에서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초조하게 출산을 앞두고 있을 즈음, 아내의 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의 내용인 바, "금고의 문을 열려면 아내의 지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새마을금고에 10년 넘게 다니고 있었는데, 요즘 은행은 지문인식으로 문이 열리는 금고를 갖추고 있는 터라, 그것을 관리하는 '아내의 지문'이 있어야 업무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저희도 예정보다 보름 정도 일찍 진통이 와서 미처 그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에 "그냥 알아서 해라"라고 했는데, 워낙에 최첨단 시설로 중무장한 금고문이라, 아내의 지문 없이는 열 수 없다는 답변이었습니다. 다, 잘난 아내를 둔 탓입니다.


이제 진통은 시작됐는데, 은행 금고문은 열 수 없고…. 분만실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사정을 알렸습니다. 당연히 안 된다고 펄쩍 뛰었지요. 그 와중에도 아내의 회사에서는 계속 전화가 걸려오고…. 그래서 말씀을 드렸더니 원장 선생님과 상의를 한 뒤 알려주겠다고 하더군요.

병원에서 내린 결론은 간호사를 대동하고 콜택시를 불러 아내가 회사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옆에서 링거병을 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아내의 진통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자칫 택시 안에서 출산을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지만 제가 사는 이곳 제주도는 택시 안에서 출산을 하면 경사로운 일이라고 여기는 터라 기사 아저씨는 내심 아기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택시 안에서 애기를 낳으면 입원비랑 아기 옷까지 선물로 준다는 말을 저도 어딘가에서 들은 듯합니다. 그래도 그런 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냥 건강하게 순조롭게 아기가 나오길 원했지, 이렇게 소란을 피우며 낳는 일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아내의 회사 앞까지 택시가 도착했습니다. 아, 지금 생각해보건데 왜 앰뷸런스를 타고 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정말이지 앰뷸런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리보기한 남편 때문에 아내와 아가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다행히 아내의 회사 앞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곧 출산을 앞둔 임산부와 그의 어리버리 남편 그리고 간호사까지 대동해서 금고 앞으로 갔습니다. '아내의 지문'으로 철옹성 같은 금고문이 열렸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도 뱃속의 아가에게 바랐습니다.

'아가야 제발 조금만 참아줘라…. 부디…."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지문인식까지 마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병원에 도착함과 동시에 분만실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병원에 도착해 계셨구요. 병원에 도착해서 아내가 금고 때문에 회사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을 많이 하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이 일은 절대 아버지가 알아서는 안 된다고 서로 다짐을 주고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알게 되는 날, 저와 어머니는 무사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남편으로서 직무유기를 했다는 죄로, 어머니는 철없는 아들과 며느리가 그런 일을 하도록 방치했다는 '죄목'을 들어서 말입니다.

아내가 분만실로 들어간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머니와 함께 초조하게 태어날 아가를 기다렸습니다. 제발 무사히 아내와 아기나 고통을 이겨낼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아! 요즘은 가족 분만실이 있어서 출산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도 있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분만 대기실로 들어가기 전에 간호사가 가족 분만실로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을 하다 7만 원이 더 추가된다는 안내표를 보고는 그냥 일반실로 하겠다고 했었지요. 그것이 뒤늦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a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우리 둘째아이입니다. 왼쪽은 동생 언제 나오냐고 하던 오빠인 우리 아들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실감나는 그런 이쁜 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우리 둘째아이입니다. 왼쪽은 동생 언제 나오냐고 하던 오빠인 우리 아들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실감나는 그런 이쁜 딸입니다. ⓒ 강충민

둘째라 첫째보다는 분만 시간이 훨씬 짧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시간은 더디게 흘렀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기의 탯줄이 목에 감겨서 정말 큰일날 뻔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또 얼마나 놀랐던지….

그렇게 일년, 십년 같은 우여곡절을 겪고 무사히 우리 딸은 태어났습니다. 오후 3시 18분에 3.05kg의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거죠. 제발 택시 안에서 태어나지 말라는, 이 어리버리한 아빠의 간절한 바람대로 말입니다.

이제 그 딸을 정말 잘 키우고 싶습니다. 출산 전, 파란만장한 일들은 곧 우리 예쁜 아기가 헤쳐나갈 험한 세상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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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대학원에서 제주설문대설화를 공부했습니다. 호텔리어, 입시학원 강사, 여행사 팀장, 제주향토음식점대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 등 하고 싶은일, 재미있는 일을 다양하게 했으며 지금은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문화관광해설사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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