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드라마 남자 주인공은 어떤 사람?

<왕꽃 선녀님> <오필승 봉순영> <저푸른 초원위에> <두번째 프로포즈> 속 '인간미 있는 남자'

등록 2004.11.13 04:26수정 2004.11.1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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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장기화 될 것이라는 경제 연구소의 전망과 사상 최대의 불황이라는 기록적인 수치 통계 속에서, 드라마는 이전에 추구했던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를 바꾸고 있다. 최근 나오는 인기 드라마 속의 남자 주인공의 공통점을 살펴본다.

a 왕꽃선녀님의 무빈(좌)과 초원(우)

왕꽃선녀님의 무빈(좌)과 초원(우) ⓒ 문화방송

다양한 논쟁 속에서 일일 드라마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왕꽃 선녀님>. 가끔은 공포 영화 모드였다가, 또 가끔은 코믹 영화 모드, 때로는 눈물 폭탄 멜로로서 장르 구분이 애매한 드라마지만, 기존 무속 신앙에 대한 통념과 편견을 깨는 줄거리가 황당하면서도 재밌고, 시각도 독특하다.


이 드라마는 무속을 미신이라 보면서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타종교에서 보는 신비스러운 현상과 비교해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통념을 깨고 있다. 인물 구도만 보자면 제목의 주인공인 <왕꽃 선녀님>의 딸인 '초원'과 다른 사람의 영혼이 몸에 들어오는 체험을 겪고 있는 그녀를 변치않은 사랑으로 열렬히 응원하는 '김무빈'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눈다.

그는 남자의 영혼이 들어와서 남자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어린애의 영혼이 들어와서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여주인공 '초원'에게 한결 같은 사랑을 보낸다.

얼마 전 행복한 결말로 종영한 <오필승 봉순영>의 '오필승'은 이름과는 다르게 배운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빽'도 없는 남자이만, 그저 인간미 하나로 한 그룹의 총수 자리를 얻게 되고, 또 그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와 소박한 삶을 택하기도 한다.

그와 대조되는 2인자는 학벌, 능력, 부모 배경까지 모든 것을 갖춘 남자. 늘 최고를 향해 달려가는 목표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인물이지만, 번번히 인간미와 특유의 소탈함을 앞세운 오필승에게 지고 만다.

유학 다녀온 MBA라는 간판이, 머리와 전략으로 짜낸 아이템이, 대량 실직을 눈앞에 둔 직원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회사의 주요 인사를 인간적인 관계망으로 짜낸 오필승의 경영 아닌 경영에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친손주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인간 경영 마인드 덕분에 그룹 총수인 할머니의 마음을 얻어 투표로 그룹 후계자가 된 오필승은 그야말로 '필승'한다.


<저 푸른 초원위에>는 미모와 젊음, 능력, 집안이라는 모든 조건을 갖춘 여주인공이 그에 준하는 다른 남자를 차고, 집안이며 능력 나이며 모든 것이 변변치 않지만 성실성 하나와 인간됨 하나만은 끝내주는 남자 주인공 '차태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렸다.

어머니가 의사인 여주인공은 부잣집 외동딸에 소아과 의사를 하고 있는데, 남자는 자동차 영업사원에 홀어머니와 동생을 여럿 둔 부담스러운 상대다. 둘의 시련은 집안의 반대뿐만은 아니지만, 차차 차태웅이 성실성과 정직으로 회사나 여자쪽 집안에서도 신뢰와 인정을 얻어가고 있다. 아마도 허영만 만화의 주인공 '차세일'에게서 인물 성격을 따온 듯한데 누구에게나 웃고 성심 성의껏 대함으로써 스치는 인연마저도 단골 고객으로 만드는 탁월한 인간미, 원칙주의적인 정직함이 차태웅에게 있다.


그는 우연히 만난 이에게도 차량 정비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거쳐 신뢰로 고객을 소개받아 거래를 성사시킨다. 늘 여유롭게 웃으며 낙천적으로 지낸다.

a '두번째 프로포즈'의 미영(좌)과 경수(우)

'두번째 프로포즈'의 미영(좌)과 경수(우) ⓒ 한국방송

잘 생긴 총각이 애 딸린 이혼녀를 사랑한다는 내용의 <두번째 프로포즈>의 경우, 총각 남경수(오지호 분)는 경제 능력이나 유능함이 돋보이는 인재는 아니지만 아줌마인 장미영(오연수 분) 곁에서 고락을 함께 하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지켜가는 순수한 사람이다.

그는 불운하고 가난한 이혼녀에서 서서히 성공한 식품 벤처기업 사장으로 모습을 바꿔가고 있는 아줌마(오연수 분)의 든든한 보좌역이 되어준다.

불황인 지금 이처럼 '인간미 있는 남자'가 드라마 주인공으로 선정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활황일 때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들은 도전적이고 적극적이면서도 승부에는 다소 비정하고 냉정한 면을 보여주었다. 성공을 위해 사랑을 버리기도 하고, 화려한 삶을 꿈꾸며 부나방처럼 일에 미치고, 사랑도 마치 사냥을 하듯 공격적으로 돌진해가는 유형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잘 생기고 능력 있고 모든 것을 다해주는 '만능형 꽃미남' 혹은 신데렐라의 환상을 충족시켜줄 '백마탄 왕자님'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리의 연인>을 보며 여자를 절망스럽고 빈곤한 상황에서 탈출시켜 줄 만능 해결사 왕자님이 인기를 얻었으나, 이제는 능력과 돈 많은 남자 대신 믿음 가는 인간미 있는 남자 주인공이 인기를 얻고 있다.

세 남자 주인공 모두 어떤 상황이 되었건 사랑에 순수하고, 일에 정직하며, 배려가 있는 사람으로, 간절한 마음과 따스한 인간미로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며 자신의 위기를 헤쳐 나간다.

이같은 변화는 경제 상황과도 관련 있다. 화려한 경제 성장의 환상을 심어주던 80년대 중반 백화점이 주인공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던 <사랑을 그대 품안에>와 2000년대 중반 불황기 유통업의 강자로 떠오른 대형 할인점을 무대로 한 <오필승 봉순영>은 묘하게도 구도와 내용면에서 비슷하지만 시각에서는 차이가 있다.

남자 주인공이 그룹의 간부격이고 여주인공은 평범한 백화점이나 할인점의 직원이라는 점 외에는, 전자의 경우는 능력으로 성공한 터프 가이가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을 차지하는 반면, 후자는 인간미로 성공하지만 성공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사랑하는 여자를 선택하는 소박한 결말을 이끌어낸다는 면에서 다르다.

결국 불황이 원하는 인물상이 있다는 것인데, 장기 불황의 여파로 퍽퍽해진 인심은 신분 상승, 허황된 꿈이라는 비현실적이고 기형적인 구도를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차라리 능력은 부족할지언정 서민적이고 정직한 인물에게 대중의 바람을 투사하게 된다. 겉멋이나 포장이 화려한 남자보다는 "사람 하나는 진국이야"하고 평가받는 인간형이 연애나 일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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