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는 문제아만 오는 학교가 아닙니다

등록 2004.11.16 11:04수정 2004.11.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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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경고등학교 신입생 전형일에 학교 현관에 내건 펼침막. 행복한 만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원경고등학교 신입생 전형일에 학교 현관에 내건 펼침막. 행복한 만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정일관

토요일인 지난 13일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는 2005학년도 신입생 전형을 하였습니다. 마침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올 가을 들어 제일 추운 날씨라고 하여 잔뜩 움츠리게 하였는데, 대안학교 입학 전형이 거의 끝나 가는 이 때, 하필 원경고등학교 전형일에 이렇게 추워지다니, 이 무슨 조화인가 했죠.

그런데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17일로 다가왔음을 알고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 아니나 다를까 올해 대학 입시 때도 추워진 게지. 전국에 있는 수험생들과 그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의 고도로 긴장된 기운들이 하늘에 사무쳐 시험 때만 되면 어김없이 추워지는 것이라고 하면 틀린 말일까요?

어쨌든 쌀쌀한 날씨 속에 학교는 새로운 인연들을 위해 기숙사와 학교 청소를 깨끗이 하고, 선생님들은 옷을 말쑥하게 차려 입었으며, 도우미 학생들도 토요일을 반납하고 군데군데 배치되어 안내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예쁜 펼침막도 만들어 학교 현관과 대기실인 도서관 대형 거울에 걸어놓고, 따뜻한 생강차와 커피, 과자와 사탕을 준비하였고, 도서관에도 온풍을 넣어 훈훈하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지원자와 학부모가 오기 시작하였고, 멀리 서울 경기와 강원도 지역 학생들은 오후 3시가 넘어서 도착하여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면접과 전형을 다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마산, 창원, 대구, 부산 등에서부터 멀리 서울, 경기, 강릉, 심지어 제주도에서까지 전국에서 모여든 원경고등학교 지원자들과 그 부모들은 새로운 시작을 향한 희망과 대안교육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안고 다가온 듯하였습니다.

입시 교육의 바탕이 되는 획일적인 교육에 매이지 않고 다양성 교육을 하고 싶은 마음들, 인성적인 변화를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들, 인문계 학교의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 부족하고 나태했던 지난 시절을 반성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들이 면접을 통해 하나씩 둘씩 씨를 뿌려 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간에는 대안학교를 문제아들만 가는 학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은 매우 좁은 시각일 뿐입니다. 현재 전국 대안학교는 각자 나름대로 이념과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모집해서 일반 학교에서 수행하지 못하는 다양한 교육 활동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입시만을 최고의 목표로 삼으면서 성적으로 줄 세우는 교육의 부산물로 생겨난 소위 부적응(부적응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지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아이들을 끌어안는 교육을 했던 학교가 유독 언론의 조명을 집중해서 받음으로써 대안학교는 문제아학교라는 인식이 사람들 속에 자리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안학교는 그 탄생 과정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의미 있게 시작하여 뜻 있는 이들의 지지와 성원을 많이 입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대안학교라고 하는 문화적 충격을 우리 사회가 흡수하기 쉽지 않았고, 전통 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대안학교 학생들의 자유분방함과 진보적인 교육 활동들이 문제로 비치거나 문제아들을 교육하기 위한 방편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안학교는 문제아만 오는 학교가 아닙니다. 문제아 학교는 다양한 대안교육 속의 한 작은 분야이지, 대안학교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아이든 아니든 간에 누구나 대안교육에 참여하고 대안학교를 다닐 권리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또한 다시 생각해보면 청소년 중에 문제아 아닌 아이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청소년들은 누구나 다 어떤 형태로든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어른들도 다 청소년 시기를 겪으면서 문제적 상황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양상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대안교육을 말할 때, 그 대안학교에 어떤 아이들이 오는가를 보기 전에 그 대안학교가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안'이라고 할 때 과연 무엇에 대한 대안인가? 어떤 대안을 학교 교육에서 실현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그 대안학교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며, 어떤 철학을 안고 살아가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대안학교 내부의 치열한 노력도 계속되어야겠지요. 지난 11월 9일, 도산아카데미연구원에서 수여하는 '도산특별상 교육상'을 받은 간디학교 양희규 교장은 우리의 대안교육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 걸음 한 걸음 떼며 나아가는 대안학교 구성원들의 성숙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대안교육을 하겠다고 하면서 부정적인 구시대적 적폐를 해소하지 못하고, 도리어 대안교육이라는 외피 속에 숨어 안주하려는 학교가 있다면 처절한 자기 반성을 통해 변화해 나가야 합니다. 대안교육이라는 이름을 달고, 교육의 물길을 새롭게 잡아가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그 '대안'의 의미를 끝없이 물어가며 실천하는 자세를 갖추는데 몸을 잊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추운 날씨 속에서 원경고등학교와 인연을 맺은 학생들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그리고 따뜻하게 성장하기를 기원하며, 대안학교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열망들이 학교 현장에서 살아나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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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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