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주민 임대아파트 들어간다

서초구청, 내년 봄까지 공급 예정... 주거 이전비 문제로 지주와 갈등

등록 2004.11.17 16:18수정 2004.11.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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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로 추정되는 불길이 잇따라 마을을 덮치면서 그동안 살인적인 공포에 시달려온 서울 서초구 내곡동 198번지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에게 새 보금자리가 주어질 예정이다.

a 내곡동 비닐하우스촌에는 지난해까지는 10가구 30여명이 모여 살았으나 연쇄화재 사건이 발생한 이후 7가구 27명으로 줄었다

내곡동 비닐하우스촌에는 지난해까지는 10가구 30여명이 모여 살았으나 연쇄화재 사건이 발생한 이후 7가구 27명으로 줄었다 ⓒ 내곡동철대위

서초구청 관계자는 17일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아파트 공급 계획과 관련하여 최근 내곡동 주민들로부터 신청서를 접수했다"면서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자격 요건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늦어도 내년 봄까지는 입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서울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서울시가 전액 출자하여 설립한 공기업인 에스에이치(SH) 공사가 주민들의 재산조회 등 소정의 절차를 거친 뒤 임대아파트를 내줄지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주민들이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주대책 없이 임대아파트 나와도 주민들에겐 '그림의 떡'

하지만 주민들은 임대아파트가 나와도 걱정이다. 지난해 2월 첫 화재 이후 주간 순찰과 야간 불침번을 서면서 생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매달 30만 원에 가까운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당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a 지난해 2월 첫 화재가 발생한 이후 주민들은 마을 들머리에 방범초소를 설치하고 주야 순찰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2월 첫 화재가 발생한 이후 주민들은 마을 들머리에 방범초소를 설치하고 주야 순찰활동을 벌이고 있다 ⓒ 석희열

더욱이 8차례의 잇따른 화재로 불타버린 비닐하우스동을 새로 세우고 가재도구와 세간을 다시 장만하느라 가구당 평균 3000~5000만원씩 빚을 안고 있기까지 하다. 수입이 없는 이들에게 생활비와 각종 질병에 따른 병원비까지 보태져 빚만 늘린 것.

주민들은 일련의 화재에 대해 부동산 임대 관리업을 하고 있는 땅주인 임아무개씨의 사주에 의한 '방화'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임씨를 상대로 방화와 그에 따른 실직으로 발생한 재산상의 피해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피해 보상액은 가구당 8000만원 선이다. 이들은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임대아파트가 나와도 이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88년 당시 땅주인이 토지를 팔면서 주민대책비로 남겨놓은 3000만원(주민들은 집값을 기준으로 산정할 때 지금의 5억 원에 해당한다고 주장)을 현재의 땅주인 임씨가 내놓으면 보상비는 별 어려움 없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a 주민들은 살인 방화범을 잡아 의혹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은 살인 방화범을 잡아 의혹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석희열

주민들은 또 △살인 방화범을 잡아 의혹을 밝힐 것 △가족 수와 생활터전을 고려하여 임대아파트를 공급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땅주인 "이사비를 주고 안주고는 지주의 재량사항"

이에 대해 임씨 측은 "주민들은 마을 화재와 관련하여 지주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지 않느냐 하는 의심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결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며 관련설을 부인했다. 임씨 측은 "지금까지 경찰에서 다각도로 수사를 하고 있지만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또 주민들의 피해 보상 요구에 대해서도 "주민들을 몇 번 만나 이사 비용으로 가구당 4000만원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주민들의 이사비에 대해 지주가 얼마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법에 나와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주고 안 주고는 어디까지나 지주의 처분사항이고 재량사항"이라고 말했다.

a 빈철연은 16일 오후 사무실을 내곡동 비닐하우스촌에 마련하고 빈민과 철거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조직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빈철연은 16일 오후 사무실을 내곡동 비닐하우스촌에 마련하고 빈민과 철거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조직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 석희열

한편 빈민해방철거민연합은 지난 16일 오후 내곡동 비닐하우스촌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회원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소식을 가졌다. 빈철연은 이날 "모든 민주단체와 연대하여 도시빈민의 주거 안정 및 생존권 사수를 위해 조직 역량을 총집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내곡동 비닐하우스 촌에 무슨 일이 있었나

▲ 지난해 3월 19일 새벽 2시께 발생한 화재로 마을 전체가 잿더미가 됐다
ⓒ석희열

안골마을로 불리는 이곳에는 7가구 2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2003년 2월 20일 첫 화재가 발생한 이후 지난 1년 동안 원인 모를 불길이 8차례나 마을을 덮쳤다. 특히 2003년 3월 19일 새벽에 발생한 5차 방화(?)로 주민 1명이 사망하고 마을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다.

주민들은 "화재가 발생하자 10여 분만에 소방차 70여 대와 함께 출동한 소방관들은 정작 사람이 살고 있는 하우스촌의 불길을 잡기 보다는 주변 화훼단지와 산으로 불이 옮겨 붙는 것을 막는데만 급급했다"면서 "마침 주민이 보초를 서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30여 주민이 떼죽음을 당할 뻔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1년 사이 8차례 살인 방화(?)... 주민들 극도의 신경 쇠약 증세

방화(?)로 인한 살인 위협과 시도 때도 없이 마을을 덮치는 시뻘건 불길에 놀란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심장병을 호소하고 있다.

박향옥(57)씨는 "살인 방화에 대한 극도의 공포로 주민들 대부분이 심장병을 앓고 있다. 언제 화마가 덮칠지 몰라 옷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잠을 자고 있는 실정"이라며 "다들 없는 형편에 심장병과 노이로제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윤영이(48)씨는 "주민들은 경찰이 내곡동 방화를 의도적으로 방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면서 "한 곳에 8번이나 연달아 불이 났으면 잠복근무라도 해서 범인을 잡아야 하는데 오히려 주민들에게 자작극이 아니냐고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꽃농사를 지으며 지난 20여년간 별다른 분쟁없이 살고 있던 마을에 평화가 깨지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월 땅주인으로부터 강제철거 통지서가 갑자기 날아들면서 부터다. 이후 땅주인과 주민들은 이주대책을 놓고 서로 갈등해왔다.

주민들은 지난해 2월 1차 화재가 발생한 이후 당번을 정해 하루 2시간씩 야간(밤 9시~다음 날 오전 7시) 불침번을 서고 있다. 또 지난 4월부터는 폐쇄회로 티브이(CC TV)를 마을 주변 4곳에 설치하여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 석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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