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진실을 찾는 목소리 '격동 50년'

[방송비평] MBC 라디오 다큐 드라마 '격동 50년'을 돌아보다

등록 2004.11.19 06:04수정 2004.11.1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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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라디오 <격동 50년>
MBC 라디오 <격동 50년>iMBC
라디오라는 미디어는 텔레비전의 등장 이후 방송의 한 구석으로 밀려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0년 전만 해도 텔레비전이 지금처럼 가정마다 보급되지 않았고, 대신 라디오가 사람들의 여가 시간을 책임지곤 했다. 현재 중년층이라면 한번쯤은 라디오에 자신의 사연을 보내고 혹시라도 채택이 되지 않을까 하여 라디오 앞을 떠나지 못한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과거 라디오의 위상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MBC 표준FM (95.9MHz) 다큐멘터리 드라마 '격동 50년'이 그것이다. 매일 이 주파수에서는 점심시간 때마다 실존인물에 대한 성우들의 맛깔스런 연기가 날카로운 비평과 어우러진다.

'격동 50년'은 1988년 4월 1일 '격동 30년'으로 첫 방송을 시작해 1년을 제외하면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MBC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1960년 4·19혁명 이후 현대 정치사를 줄곧 다뤄 정치 드라마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2003년 9월 '대우 침몰을 막아라'를 시작으로 현재는 정치에서 경제 쪽으로 방향을 틀어 방송하고 있다. IMF 이후 경제의 어려움이 말버릇처럼 되풀이되는 지금 확실히 대중들의 관심은 정치보다는 경제 쪽에 집중되고 있다. 대통령에게 바라는 최고 기대 순위가 '경제 회복'인 시대 분위기에 맞춰 비교적 내막을 알기가 어려웠던 경제 문제를 청취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진실에 대한 또 다른 목소리, 경제사

<격동 50년> 제작진
<격동 50년> 제작진iMBC
경제 다큐로 노선을 변경한 이 프로그램은, 불과 20년만에 국내 5대 그룹으로 성장하였다가 33년만에 침몰한 대우 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대우 그룹의 창업가 '김우중'의 발자취와 경영철학을 다루며 또한 대우 사태의 원인과, 현재 조선, 기계, 건설 분야에서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대우 부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망한 기업주는 무조건 부도덕하다고 손가락질하는 풍토 속에서 다시금 사실관계를 밝혀 기업인의 자세에 대한 교훈을 얻어내려 했다.


또한 부족한 자원 속에서 세계 10위권 무역 대국이 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던 한국의 현재 불안한 경제에 대해서 짚어보기도 한다. 바로 한국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을 돌아보는데, 여기에는 한 지도자의 강하고 일방적인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껏 우리는 과거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박정희 대통령의 독보적인 업적으로 여겨왔다. 지난 'IMF'에서는 독재자였던 박 전 대통령을 경제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는 서적도 나왔다. 그러나 그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개발정신은 우리나라의 여러 건설 현장에서 부실 공사가 '관습 헌법'이 되게 한다.


현재 한나라당의 총수로 박 전 대통령의 친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제 정책과 당시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는 출범 40년을 넘은 '전경련'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재벌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형 시장경제와 여기에서 발생한 '정경유착'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돌아본다.

'소리'의 당당한 미학

<격동 50년> 성우들
<격동 50년> 성우들iMBC
이 프로그램은 라디오라는 매체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소리'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존인물들의 목소리라고 착각할 만큼 유사한 성우들의 연기와 전체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해설자의 목소리가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라디오는 시각을 사용할 수가 없기에 청취자들의 상상의 세계를 자극한다. 그래서 그런지 '격동 50년'도 보이지 않기에 방송을 듣는 동안 실제 인물이 직접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생생함을 더욱 더 느낄 수 있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보다는 규제가 덜한 편이라 좀더 자유롭게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 상에는 실존 인물들의 육성 증언을 올려놓아 방송의 신빙성을 높여 주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권력자들의 부당한 횡포에 의해 여기저기가 잘려 나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여러 방송 프로그램이나 서적 등 여러 매체에서 진실의 가려진 면모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역사는 현재의 문제에 대한 조언과 교훈을 얻기 위해 존재한다. 지나 버린 일에 대해 새삼스럽게 왈가왈부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과거의 잘못은 숨기기만 해서는 곪아버려 전체를 썩게만 할 뿐이다. 썩기 전에 '드러내기' 과정을 통해, 그 문제의 원인을 진단해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여러 문제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격동 50년'과 같은 프로그램은 반갑다. 자본주의가 사회의 절대선이 되어버린 지금 방송 또한 돈의 움직임을 따라 작동한다. 소위 팔리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보기 좋은 연예인들이 노닥거리는 프로그램을 쉽게 볼 수 있고 해외 로케이션이 기본 사항으로 들어가는 드라마에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집중된다.

이런 상황에서 솔직히 텔레비전보다는 대중의 조명을 덜 받고 있는 라디오에서 '격동 50년'은 15년 동안이나 자신의 색깔을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다.

진실, 사실을 지켜나가는 어려움

<격동 50년> 제작 광경
<격동 50년> 제작 광경iMBC
'격동 50년'에서는 아무래도 실존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관련 인물에 대한 항의가 많이 들어온다. 대부분의 시사 다큐 프로그램이 그러하듯 협박전화는 수도 없이 걸려오고, 소송 또한 빈번히 당한다.

2001년 문민정부 초기의 슬롯머신 사건을 다룬 '문민정부의 허와 실' 편에서는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이 1993년 슬롯머신 업자 정덕진씨에게 뇌물을 받은 것으로 방송하였다. 이에 이 전 고검장은 명예훼손 혐의로 방송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93년에는 주미특파원으로 근무 중 '김대중 납치 사건 보도'와 관련해 미국으로 망명한 문명자씨가 자신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 친한 '반한 활동가'로 그렸다며 수십억원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또한 1991년 9월, 유신정권의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뤘을 때에는 유신시대 정치인들의 반발과 압력으로 6개월 동안 방송을 중단해야 했던 아픈 과거도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시사 다큐 프로그램이 실제 일어났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거기에 대한 확인 작업은 더욱 더 중요할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자료수집과정에서 모든 사실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만큼 방송 자체에서 자신들의 의견에 따라 필요한 자료의 확인 절차를 생략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격동 50년'

물론 '격동 50년' 또한 드러내어 고쳐나가야 점들이 많다. 이번에 해외 라디오 CD 판매를 앞두고 홈페이지에서 '다시 듣기'와 실존인물의 육성증언 듣기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 라디오 CD로까지 발매가 된다는 것은 라디오 사업에서는 분명 반가운 소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서마저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사람들의 진실에 대한 관심을 외면한 점은 아쉽다. 프로그램의 본래의 취지를 항상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15년 동안이나 방송이 되었으면서 방송 내용이 정치사에서 경제사로 바뀌었다는 점 말고는 그다지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텔레비전 방송보다는 대중의 관심을 덜 받는 대신 청취자들에게 좀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라디오의 특성을 활용하는 등 고민이 필요하다.

'마이카'시대에 라디오는 다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라디오는 텔레비전에게 자리를 내어 준 과거 미디어로 취급당하곤 한다. 이런 그늘 속에서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절대 뒤지지 않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바로 '격동 50년'이다.

정치사에서 경제사로 대중들의 관심에 따라 그 초점이 움직이며 많은 고정 팬들을 낳아 라디오 CD 제작까지 이뤄 냈지만 '격동 50년'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확실히 그들은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정치인들의 진실을 알려왔다. 또한 지금은 경제 분야에서 우리 시야를 벗어난 그늘 속에 있던 사실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 역사의 그늘에 있던 것은 정치나 경제의 진실뿐만이 아니다. 역사를 이루어 낸 것은 정치인, 경제인이 아니라 평범한 민중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격동 50년'이 사회 속에서 대중들의 진실을 향한 맹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맡은 만큼, 이제는 정치, 경제에만 그치지 않고, 앞으로는 문화 예술이나 개인사 등과 같이 더욱 역사의 그늘에서 존재하는 진실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길 바란다.

앞으로도 사회 전체에 대한 '격동 50년' 아니 격동 70년, 100년을 향해 사회 속 우리가 알지 못하며, 잊고 살아가는 진실에 대한 목소리를 계속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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