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이 아니라 '농독'이 맞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농사말들

등록 2004.11.19 21:36수정 2004.11.2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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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농업인 연수가 있어서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아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작목반이 있어 갔는데 작목반 회장님의 헌신성과 자신감, 그리고 유기농자재를 직접 다 만들어 쓰시는 이야기가 감동을 주었습니다.

유기농 전문매장
유기농 전문매장전희식
지난 16일 전라북도 장수군 '의제21 환경농업분과'에서 주선한 행사였는데 다 좋았습니다만 한 가지 반성하게 된 것이 있다면 우리 말을 환경농업을 하겠다는 사람들만이라도 바로 쓰고 잘 살려 나가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동안 30여명이 버스로 대구까지 가고 오면서, 강의시간과 대화시간, 뒤풀이시간에 제가 하나 하나 적어 봤는데 일본에서 온 말이 많았고 한자어의 문어체도 많았습니다. 그보다 심각한 것은 지배층의 이데올로기가 노골적으로 침투해 있는 말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친환경농사를 하겠다는 말은 죽음의 농사를 그만두고 살림의 농사, 생명의 농사를 하겠다는 것인데 우리말을 엉터리로 사용하는 것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다 싶었습니다.

관행농법 : '화학농법'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화공농법'이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관행이라는 것은 적어도 몇 십 년이 아니라, 몇 백 년 동안 계속 해 온 것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처럼 땅을 죽이고 물과 공기와 먹을거리를 죽이는 이런 농법은 고작 30년밖에 안 된 것입니다.

우리 농사의 수천년 관행은 온전한 환경농법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관행농법인 것입니다.

농약 : '농독'이라 부르자. 독이지 절대 약이 아닙니다. 약은 좋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농사에 '약'이라 하면 꼭 필요한 것처럼 들립니다. 더 이상 '독'을 '약'이라 할 수 없습니다.


농약이라는 말은 제가 짐작하건대 70년대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다국적 곡물기업들의 지원과 후원 아래 동남아에 대규모 농업시험장을 운영하면서 통일벼를 만들고 화공약품을 개발하면서 '약'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수도작 : '벼농사' 또는 '논농사' 라고 하면 됩니다. 30년이 넘는 유기농역사를 간직한 '정농회' 모임에서도 그렇지만 귀농운동본부 교육 때도 보면 '수도작'이라고 합니다.


옛날처럼 산비탈까지 깎아서 밭벼를 많이 심을 때는 논벼라는 구별되는 명칭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관개시설이 좋아서 논벼만 심는 때는 그냥 '벼농사'라고 해도 되는 것입니다.

무슨 전문용어나 되는 듯이 '수도작'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반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습니다. 한 달쯤 전에 젊은 귀농자들이 많았던 어떤 모임에 갔는데 설문조사지에 '수도작'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두 사람이나 내게 물어 왔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강의 중인 모습. 작목반 운영과 유통에 대한 강의였다.
강의 중인 모습. 작목반 운영과 유통에 대한 강의였다.전희식

추비 : '웃거름'하면 참 좋을 것을 꼭 추비라고 합니다. 6년 전인가 하동에 이아무개 선생의 태평농법 농장에 가서 그 분이 추비라 해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구에서 강사님도 추비라고 했습니다.

멀칭 : '덮개'나 '씌우개'라고 하면 안 될까요? 멀칭이라고도 하지만 피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덮개나 씌우개는 어감도 참 좋습니다.

시비 : '거름주기'라고 하면 될 것을 꼭 시비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다들 시비, 시비 합니다. 더 품위가 있다고 여길까요?

미강: 이건 '쌀겨'입니다. 생협 매장에 가도 '미강유'라고 부릅니다. 쌀겨기름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이제 내년부터는 유기농 농사를 지을 때 유기농 농자재를 사용해야 합니다. 법이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쌀겨는 유기농 농자재를 만드는 데 약방에 감초와도 같습니다.

축분, 우분, 계분, 돈분: 처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알아듣지는 못하고 잠시 이것저것 떠올리다 알아챘던 기억이 납니다. 짐승 똥이라고 하면 됩니다. 소똥, 닭똥, 돼지 똥이라고 하면 천해 보일까요?

농장방문
농장방문전희식
웰빙 : 요즘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 유기농을 권유하면서 면 직원도 이런 말을 합니다. '참 살이'라고 하면 좋습니다. '온 살이'도 좋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대구에서 돌아와서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어느 분이 '그린 투어'라는 말을 했습니다. '팜 스테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녹색기행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되겠지만 녹색보다는 풀빛이라는 말이 더 좋습니다. 팜 스테이는 '농가체험'이라고 하면 훨씬 더 좋은데 시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인데도 이런 영어를 쓰니 안타깝습니다.

저도 알게 모르게 한문체와 번역체에 오염된 채 글과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말 바로쓰기라고 여깁니다. 요즘 유기농이 너도 나도 강조되면서 유기농을 하거나 유기농 유통을 하면 돈이 된다고 노골적으로 말합니다.

'여섯시 내 고향' 프로그램을 보십시오. 전 국토가 다 환경농업이고 생태농업입니다. 기능성작물들이 앞을 다투어 나오고 있습니다. 지자체들이 이름도 잘 짓습니다. 나비 쌀이니, 메뚜기 쌀이니 하다가 한방 쌀까지 나왔습니다.

경제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경제성만 강조할 때 오래 가지 않아서 유기농의 파탄이 오리라 봅니다. 최근 풀무원의 엉터리 유기농 녹즙 문제와 중국산 콩 문제가 그냥 생긴 문제가 아닐 것이며, 더불어식품의 수입 전분과 수입밀가루 혼용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의 논리가 돈의 논리로 바뀌는 순간 다 망가지고 맙니다.

민족의 식량, 민족의 생명을 만드는 농민들이라도 먼저 우리 농사말을 바로 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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