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잃어버린 참 시장을 찾아서

20일 인천에서 열리는 탁발호혜시장

등록 2004.11.20 08:33수정 2004.11.2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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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호혜시장의 안내 포스터
탁발호혜시장의 안내 포스터전희식
탁발은 스님들이 발우 하나 달랑 들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얻어먹는 것을 말한다. 누구 집이냐를 가리지 않고 차례대로 들러서 주는 대로 감사하게 받는다. 그러나 탁발에는 다른 의미도 있다. 보시하는 상대에게 선한 공덕을 많이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적극성을 가지고도 있다.

이런 탁발을 정성과 감사가 나누어지는 대안의 시장이라고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인천에서 탁발시장을 여는 사람들이다. 정식 이름은 ‘탁발호혜시장’이다.

탁발시장을 연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행사일까?

오늘(20일) 토요일 오후 3시 인천 롯데백화점 8층 샤롯데홀에서 ‘대안과 밝은 세상으로 가는 탁발시장 준비위원회’이름으로 열린다.

탁발은 간단히 말해서 빈 그릇을 여러 사람들이 채워 주는 것인데, 행사가 열리는 이 자리에서는 강화도에 있는 대안학교인 ‘마리학교’를 빈 그릇으로 내 놓는다고 한다.

‘모든 생명이 곧 하늘이다’는 교육이념과 ‘스스로 살리고, 서로 살리고, 세상을 살리세!’라는 교육목표를 내 걸고 올 해 개교한 마리학교가 사회적 모금을 탁발시장이라는 방식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마리학교 황선진 교장
마리학교 황선진 교장전희식
이 학교 황선진(53) 교장은 이날 행사를 “지역화폐 운동과 전통의 호혜시장을 결합”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한다. 호혜시장이란 사회적 모금에 응한 보시행위를 기억해 두었다가 훗날 품앗이 형태로 다른 쪽에 보답하는 방식이다. 이런 시장을 황 교장은 “베풀어 준 은덕을 절대 잊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비자본주의적 시장”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인지 행사의 준비과정도 좀 특이하다.

저녁시간에 ‘만민의 밥’을 행사참석자들이 먹게 되는데 이 밥은 백 가정에서 조금씩 해 오는 것이라고 한다. 밥도 밥이지만 나물류, 볶음류, 떡류, 무침류 등도 백 가정에서 해 온다. ‘백인주’는 백 명의 사람들이 가져 온 술들이다. 백이란 숫자는 ‘백 가지가 넘는다’, ‘백약이 무효’라는 속담처럼 끝이 없는 무한대의 숫자를 의미한다.


현금과 소장품들을 보시한 사람들도 있다.

소장품에는 1억 년 전 화석도 있고, 책도 있고, 그림도 있다. 유기농 농산물도 있고, 진품 레닌동상도 있다. 이 기증품들은 행사장의 탁발호혜시장에서 거래되어 마리학교에 전달된다.

오후 8시까지 진행하는 탁발호혜시장에서는 여성농악단의 판굿과 김운태 선생의 채상소고춤이 공연된다. 또한 모든 보시자들에게 사회적 공덕을 기억하는 ‘보은화폐’가 전달되며 이 보시자들은 ‘계첩(戒牒)내림’이라는 순서에서 마리학교의 교육사업에 대한 격려나 충고를 계첩에 담아 전달하게 된다.

행사의 관계자들이 탁발호혜시장을 인류가 잃어버린 참 시장이라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탁발의 상징물. 일러스트 정진웅 작가가 만듦.
탁발의 상징물. 일러스트 정진웅 작가가 만듦.전희식
탁발을 받은 스님들도 합장을 하고 절을 하지만 보시를 하는 측에서도 공덕을 베풀 기회를 주신데 대해 감사의 절을 한다. 이처럼 이날의 행사에서도 ‘다루칸 공연’을 하는 마리학교 학생들에게 모든 참석자들이 감사와 축원의 절을 하고 학생들은 참석자들에게 큰 절을 한다.

마지막에는 참석자 모두가 서로에게 큰 절을 하는 ‘계승사배’라는 순서도 있다.

현재까지 인천탁발시장을 제안한 사람들은 모두 58명으로 박우섭 남구청장과 문병호,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있고 윤인중 목사와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도 있다. 김창한 민주노동당 인천시지부장도 제안자로 참여했다.

지난 5일에는 인천시 남구 학산문화원 3층 회의실에서 ‘탁발원탁포럼’을 열고 탁발의 본래 의미를 새기면서 탁발문화를 사회에 넓게 확산시키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전통의 호혜시장과 화백회의 그리고 보은화폐제도를 필생의 연구를 통해 복원해 낸 것으로 알려진 재야 경제인류학자인 탁발시장 준비위원회 김영래 위원장은 내년 1월에는 서울에서 새로운 사회 의제를 가지고 탁발호혜시장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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