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보는 세상

등록 2004.11.23 13:52수정 2004.11.2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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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뜬금없는 어머니 전화

뜬금없는 어머니 전화 ⓒ 김요수

1990년쯤에 서울에 있을 때인가 봅니다.


"어머니께서 전화하셨네."

시외전화요금을 걱정하여 좀체 연락이 없으시는 어머니에게서, 그것도 사무실로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월급날이 멀었는데'하는 생각부터 '몸이 안 좋으신가', '누가 혼인하나'하는 생각 끝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부를 여쭌 지 오래된 죄책감에 "아버지 잘 계시지요? 잘 드시고 계세요?"하자, 어머니께서 "워메, 으짜끄나?" 하십니다. 마음이 덜컥했습니다.

a 입단속해라

입단속해라 ⓒ 김요수

그런데 너무 뜻밖의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아가, 영삼이하고 태우하고 종필이하고 당을 합쳐분닥하냐! 큰 일 없을랑가 모르것다. 바깥 출입 헐 때 얌전하고 입단속 철저히 혀라. 그라믄 전화세 나온께 끊을란다."


팔십년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첫째로 나라일을 걱정하고 둘째로 힘없는 아들 앞일을 걱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팍팍한 살림살이를 전화요금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몇 마디에 어머니의 마음을 모두 실어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배운 사람들의 심야토론보다 훨씬 시원하고 간단합니다.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모 장관이 정치 9단 김 의원에게 뭔 말을 했을 때도 어머니는 몇 마디 하셨습니다.


"저것 봐라. 가만 있으면 암시랑토 안 했을 것인디. 뭣하러 처자식 데꼬 사또 병문안 가서 포졸한테 뺨맞을 것이냐?"

그 말을 듣고 아버지와 한참 웃었습니다.

a 어머니 생활철학

어머니 생활철학 ⓒ 김요수

"옛날에 동쪽바다 고래가 남쪽바다에 더 맛있는 것이 있는 가 보러 가서 멸치꼬리에 뺨 맞고 부애가 나서 쫓아가다가 그물에 걸려 부렀단다. 너도 니 자리만 지대로 버티고 있으믄 그것이 훌륭한 일이다."

덧붙이신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어머니는 배움이 짧으신 데다 지금까지 시장바구니만 지녀보셨던 분이라 사회 돌아가는 현상, 불쑥한 정치판은 아주 모르십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름대로 생활철학을 지니신 것입니다.

a 자식들이 모여서

자식들이 모여서 ⓒ 김요수

한 번은 자식들이 모여 "애기들도 다 컸으니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오세요"했더니 "멀미 땜에 어디 못돌아 댕긴다. 글고 느그들이 구경 걱정 안혀도 된다. 테레비에서 니들 외국댕긴 것보다 더 자세히 보여주더라. 안 댕게도 댕긴 것이나 마친가지다. 그런 돈 있으믄 현찰로 주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a 그리운 어머니 세상평

그리운 어머니 세상평 ⓒ 김요수

어디 따로 쓰실 곳이 있나 해서 꼬치꼬치 여쭈었더니 "놈 모르게 도와주는 디가 있어. 생색을 내기 싫어서 그란디. 재미도 있고 맘도 좋아야"하십니다.

오월을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에서 새로운 오월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뭔 일이데. 5·18에 금남로에서 사람들 모이게 했담서야. 차말로 좋아진 것이냐? 떡주고 뒤통수 때래서 목에 걸리게 할라고 그란 것이냐? 매운탕(최루탄)도 인자 지긋지긋헌디."

어머니는 집에만 계시고 아무것도 모르시는 듯해도 늘 마음에 충격을 주셨습니다.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퍽이나 늙으셨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힘들어 하십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 바른 자식이 없어 한숨과 분함만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의 넉넉한 넋두리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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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책, <염치혁명>, <탐관오리 필독서>, <부서불랑께>, <소설 폐하타령1,2,3>, <쓰잘데기>, <딱좋아 딱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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