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겨울진미 양미리를 맛보다

강릉 사천항을 찾아서

등록 2004.11.24 09:49수정 2004.11.2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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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면 동해안 바다는 겨울이다. 먼 수평선 끝에서 찬 바람이 파도를 밀고 온다. 하루 종일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사천항에는 겨울 진객이 찾아온다.

a 사천항 전경

사천항 전경 ⓒ 최백순

젓가락 길이만 한 황갈색 등과 은백색 배를 가진 양미리다.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하루 종일 양미리를 가득 실은 배들이 들어오고 어촌의 아낙네들은 그물에 걸린 고기를 벗겨내느라 굽은 허리를 펼 겨를이 없다.


관광객들은 항 내에 수북히 쌓인 양미리 더미 앞에서 흥정을 붙인다. "양미리 맛있겠네요. 얼마예요?" 이렇게 말을 붙이면 바닷바람에 까맣게 탄 볼을 실룩이며 검은 봉지에 주섬주섬 담아들고 손가락 2개를 펴든다. 20마리 2000원, 덤으로 5마리는 더 담긴다.

a 양미리를 손질하는 어촌의 아낙들

양미리를 손질하는 어촌의 아낙들 ⓒ 최백순

철망에 얹고 굵은 소금을 한 줌 뿌려서 숯탄에 구워내는 맛이란, 백문이불여일견이요, 맛을 본 사람만이 안다.

사천항은 강릉지역에서 주문진 다음으로 큰 어항이다. 고기잡이배도 많고 횟집을 찾는 관광객도 점차 늘고 있다. 게다가 바람이 바다를 향해 부는 봄에는 요트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전국에서 몰려든다.

이맘때는 방생을 하고자 먼길을 달려와 용왕제를 지내는 모습도 간혹 보인다.

이런 사천항은 멀리 신라 경덕왕 16년(서기 757년)까지 거슬러 오르는 유래를 안고 있다. 명주군 1읍 7면의 하나로 사화산(沙火山)의 이름을 따서 사화산면이라 했고, 조선에 이르러 1885년 고종 3년에 강릉군 사천면으로 개칭되어 지금의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인근의 '판교'라는 지명처럼 넓은 들이 펼쳐져 논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다.

a 즉석 양미리구이

즉석 양미리구이 ⓒ 최백순

하지만 세태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는 법. 해안가 도로를 따라 횟집과 카페, 모텔이 나날이 늘고 있다.


이 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교문암'이다. 주문진을 향하는 바닷가에 생김새가 우렁이와 같다 하여 우렁바위라 불리기도 한다.

먼 옛날 이무기가 용이 되기를 기다리다 승천하면서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하여 교문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 산줄기의 생김이 도롱뇽과 같아 '교산'이라 불렸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이 자신의 호로 삼았다.

그 산자락에 허균이 태어나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마다 찾아와 머물던 애일당터가 있다. 애일당은 조선 중종 때 문신인 김광철의 옛 집터로 그의 호가 애일당이다. 애일당은 허균의 외할아버지가 살던 곳이다. 훗날 허균의 문학정신을 기리던 이들이 이 산 능선에 허균 시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a 교문암. 이무기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교문암

교문암. 이무기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교문암 ⓒ 최백순

이외에도 허균의 형 하곡 허봉이 살았다 하여 그의 호를 따서 하평동이라 불리는 하평리가 있다. 이 마을은 농악놀이가 유명하다.

오랜 유래와 전설만큼이나 사천 앞바다에는 철마다 나는 고기도 다양하다. 우럭, 광어, 돔, 대구 등 철따라 값비싼 어류가 잡히는 천혜의 항구다.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은 '양미리'가 주로 잡히고 2월까지는 도루묵이 잡힌다. 초여름인 6월부터 12월까지는 오징어의 계절이다.

추위가 더해지는 한 겨울에는 '뚝지' 일명 도치, 심퉁이라 불리는 배에 빨판이 달린 고기가 난다. 생김은 올챙이 같아도 겨울철 동해안에서만 잡히는 어종이다. 김치와 함께 불고기를 하거나, 살짝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으면 일품이다. 특히 알만 골라서 두부처럼 눌러서 먹기도 한다.

사천항의 멋과 맛에 취해 과한 술이라도 마신 날에는 곰치 해장국으로 속을 풀거나, 아니면 초장으로 양념한 오징어 물회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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