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온 거 후회 안 합니다"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56] 이제는 지방화 시대다2 -젊은 농사꾼 윤종상씨

등록 2004.11.28 15:45수정 2004.11.2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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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들길에서 선 어머니와 아들의 다정한 모습

들길에서 선 어머니와 아들의 다정한 모습 ⓒ 박도

갓난아이를 볼 수 없는 시골


시골할머니들은 "마당 빨랫줄에 아기 기저귀 늘어놓은 것을 보지 못한 지 10년은 더 된 듯하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시골에 젊은 부부가 없다는 말도 되고, 이제는 시골의 젊은 엄마들도 대부분 일회용 기저귀를 사 쓴다는 말도 될 게다.

아무튼 시골 곳곳을 쏘다녀 보아도 젊은 부부나 갓난아이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런 현상은 우리 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지난 봄, 중국 연변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곳 사람들도 마을에 혼인잔치가 끊어진 지 몇 해가 되었다면서 농촌 총각들이 장가를 가지 못해 큰 문제라고 개탄했다.

최근 30∼40년 동안 우리 농촌에는 '탈 농촌' 태풍이 몰아쳤다. 전국 어디를 할 것 없이 농촌 인구가 1/3~1/6(지역에 따라 차이가 남) 정도로 줄어버렸다. 특히 젊은이들의 '탈 농촌화'가 두드러졌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내사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앵두나무 처녀> - 김정애 노래

고향을 먼저 등진 사람은 대체로 미혼 여성들이었다. 그에 따라 농촌총각들도 고향을 등졌다. 심지어 결혼을 하기 위해 몇 해 동안 일부러 도시로 간 농촌총각도 있었다.


요즘 시골 젊은 아낙네 가운데는 연변이나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 시집 온 여인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40∼50이 되도록 미혼으로 혼자 사는 농촌 총각도 더러 만날 수 있다. 우리 나라 농촌 문제는 이웃나라 농촌에까지 연쇄반응으로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이런 농촌 현실에, 묵묵히 땅을 지키는 믿음직한 젊은 부부 농사꾼을 찾아나섰다. 수소문 끝에 두어 차례 안면이 있는 횡성군농민회 사무국장 윤종상(34)씨 댁을 두드렸다.


고향 땅을 지키는 사람

a 친환경농업정착기술시범단지 팻말

친환경농업정착기술시범단지 팻말 ⓒ 박도

그의 집은 횡성군 갑천면 포동마을로, 횡성 댐에서 그리 멀지 않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조상 대대로 살던 집을 지난 봄에 새로 지었다는데 아직도 페인트 냄새가 날 정도로 산뜻했다.

그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갑천초등학교와 갑천중학교를 마치고 원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9년,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고 있다.

그는 올해 일흔인 어머니 김옥례씨의 6형제 중에 막내둥이로서, 같은 대학 커플인 아내 신용한(34)씨 그리고 아들 희망(5), 딸 해언(4)이를 둔 가장이다. 아버님까지 모셨지만 2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필자가 탐방한다고 일부러 자리를 피해 마실 가신 할머니를 뵙고자 윤종상씨와 이웃 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 댁으로 찾아갔다. 요즘 가을걷이가 끝났기에 시골집 안방에는 같은 또래의 할머니들이 모여 점심도 해 잡수시고, 때로는 화투장도 만지면서 소일한다고 했다.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던 막내아들이 고향으로 내려온다고 하기에 고맙기도 했지만, 고생할 게 뻔한 것 같아서 몹시 가슴 아팠어요. 농사도 남다른 농사(친환경 유기농)를 지으면서 풀더미 속에 사는 걸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남 보기 남세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당신은 남달리 며느리 밥 얻어먹고, 손자 손녀 재롱 보는 재미를 누리기에 흐뭇한 표정이었다. 마침 윤종상씨가 농사짓는 들판에는 추수가 끝나 텅 비어 있었지만, '친환경농업정착기술시범' 단지임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는 들길에서 모자는 다정히 포즈를 취해 줬다.

그에게 올 농가 수입을 물었다. 그는 그냥 웃기만 하면서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내가 쓰는 글은 전국의 독자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진 동포, 그리고 각계각층에서 보기에 정확하게 얘기해 줘야 보는 분들이 우리 농촌을 바로 알 것이라고 거듭 채근하자 그제야 무겁던 입을 열었다.

"올 농사는 논 4500평에 밭농사 600평을 지었다. 논농사 추수를 하고보니 1200만 원의 수입을 올렸는데, 도지와 영농비로 절반 정도 썼기에 순수입은 60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매월 50만 원의 수입이다. 밭농사는 집안 식구들 먹을거리와 어머니 용돈 정도였다.

월 50만 원의 수입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횡성여성농업인센터의 공부방 아이들 통학차 기사 수입으로 메우고 있다. 젊은이들이 시골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두레와 품앗이와 같은 협동조직체를 되살려야

a 지금 시골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삼대의 사는 모습

지금 시골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삼대의 사는 모습 ⓒ 박도

할머니는 필자에게 넌지시 서울에서 대학교 다닐 때는 데모를 많이 해서 무척 속을 썩였다고 귓속말을 하셨다. 그는 89학번으로, 98년 결혼 후 이듬해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왔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자란 부인 신용한씨에게 그때의 심경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농촌을 잘 몰랐기에 왔나 봐요. 이곳에 내려와 보니까 이곳 마을 아가씨들은 절대로 농촌으로 시집 안 간다면서 모두 도시로 가더군요."

그리고는 티 없이 웃었다.

"사는 데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재미도 있고, 우선 조용해서 좋아요. 처음에는 말벗도 없어서 따분했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아이들과 지내느라고 그런 생각도 사라지더라고요."

아이들을 좀 더 키운 뒤에 농촌활동에 이바지하겠다는 속내를 비쳤다. 윤종상씨는 "이제 피폐해진 농촌이 사는 길은 친환경 유기농법과 농민들이 도시민들로부터 신뢰감을 얻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자신이 솔선수범으로 어려운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었다.

논농사를 유기질 비료와 볏짚 거름, 그리고 우렁이 농법으로 제초를 하는 친환경 농법이다. 일반 농사보다 품이 많이 들고 소출은 2/3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당신 농산물을 알아주는 이에게만 직접 판매하기에 일반 농가처럼 수매해서 목돈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집에다가 정미 시설까지 갖추고 직접 도정해서 소비자에게 택배로 보내주고 있다. 그래도 요즘은 입소문으로 당신 생산량은 다 판매한다고 했다.

그는 WTO(세계무역기구)를 막아내야만 농촌이 회생할 수 있다면서 쌀은 우리에게 국가안보요, 주권이자 농민들의 생존권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주권문제라고 역설했다.

오늘날과 같이 허물어져가는 농촌을 회생시킬 수 있는 그 대안을 묻자, 그는 "지난날 우리 농촌에 '두레'와 '품앗이'와 같은 협동조직체를 현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농민 스스로 올바른 농사를 지어야 하고 신뢰감을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부에서도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미봉책이 아닌, 근원적으로 농촌을 살리는 애정어린 농정을 펴야 합니다. 지금처럼 농촌이 쓰러지고 도시만 산다면 머잖아 온 나라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옵니다. 그때는 치유할 수 없습니다."

인생은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

그는 벼농사만으로는 도저히 타산을 맞출 수 없어서 집 뒤꼍에 계사(닭집)를 지어서 토종닭을 기르고, 유정란을 생산해서 생협에 공급할 거라고 막 터를 닦는 중이었다. 뒷산에다 울타리를 쳐서 닭들을 방사할 거라고 했다.

"참 다행한 일은 사람들이 점차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고 유기농산물에 관심을 갖는 점입니다. 계란만 하더라도 유정란을 더 찾고 있어요. 사실은 자연보다 더 좋은 게 없지요."

a 윤종상 신용한 부부와 아이들, 이들 가족들이 대대로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

윤종상 신용한 부부와 아이들, 이들 가족들이 대대로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 ⓒ 박도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시골에 정착할 수 있지만 교육문제로 도시로 나갈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이들 부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면서 아이들도 모두 시골학교에 보내겠다고 했다.

시골학교에 아이들이 워낙 없어서 또래 문제도 없지 않지만 시골학교가 도시학교보다 좋은 점이 더 많을 거라고 했다. 우선 아이들을 친환경적으로 자라게 할 수 있고, 도시의 과밀학급이나 경쟁적인 삶에서 초연하게 기를 수 있어서 좋은데, 시골에 바른 생각을 가지신 좋은 선생님들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들 부부에게 정말로 시골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인생은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이지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아름다운 환경에서 사는 게 좋고, 먹을거리를 내 손으로 직접 길러서 먹어서 좋고, 에너지를 적게 써서 좋아요."

부부의 공동 대답이었다. 그 새 시래기 국을 끓여뒀다고 굳이 점심을 들고 가라고 소매를 붙잡았다. 고향 냄새가 물씬한 시래기 국에 계란 부침으로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일어섰다. 돌아오면서 횡성 댐 전망대에서 잠시 머물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를 만나 기분 좋은 하루였다.

a 한 폭의 그림 마냥 아름다운 환상의 횡성 댐

한 폭의 그림 마냥 아름다운 환상의 횡성 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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