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하러 갔다가 예방접종 했어요!"

둘째 아들(?) 예방접종 맞던 날

등록 2004.11.29 21:52수정 2004.11.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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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타잔'이라는 이름의 애완견 한 마리가 있다. 요즘 거실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미끄러지듯 걸어 다니는 녀석을 보니 "진작에 미용을 시켰어야 하는데 게으름을 피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 먹은 김에 옷을 입히고 목줄을 매니, 외출한다고 좋아서 꼬리를 흔들고 핥으며 갖은 애교를 다 부린다.

"타잔, 미용하러 가자. '발바닥도 다듬고 머리도 예쁘게 해 주세요' 하자"라며 애완견과 함께 집을 나섰다. 몇 시까지 애견미용을 하는지 전화를 해 보고 가려다가 날이 겨울날씨 같지 않게 따뜻해서 무작정 나섰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횡단보도에서는 습관적으로 녹색불일 때 급하게 건넌다. 요즈음 관절이 불편하여 빨리 못 걷는 내가 따라가기 힘들 정도이다.

동물병원을 들어서니 주인이 온줄 알고 짖어대는 다른 강아지의 소리가 들려온다. 주거니 받거니 "왕왕", "멍멍" 한동안 소란을 피운 후에야 수의사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오늘은 미용 예약이 끝나서 안 된다고 한다. '이를 어쩌나' 바람 쐴 겸 나왔다지만 되돌아가긴 아쉽다.


"저, 타잔 예방접종을 해야 하지 않나요?" 내 질문에 차트를 본 수의사는 미용하고 삼사일 후에 와서 접종을 하란다. "아니요. 미용을 못하니 오늘 예방접종을 하면 안 될까요?"

광견병과 기관지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고 한다. 또, 2주 후에도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수첩에 적어 주신다. 바람 쐬러 나온다고 좋아했는데 타잔한테 미안하다.


이미 준비해 놓은 주사기 두 개가 진료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더 커진 우리 타잔. 주사 한대가 들어갈 때는 얌전히 가만히 있다. 웬일인가 주사바늘 꽂기도 전에 소리소리 지르던 녀석이 오늘은 꽤 참을성이 있는 걸.

두 번째 주사는 꽤 아픈 주사라고 하시며 놓는데 이번에도 어라 한숨만 푹 쉬는가 싶더니 그냥 가만히 있다. 아이, 착하기도 하지. 눈가가 벌겋게 충혈된 것 같은데 울지는 않으니 다행이구나 싶다.

"나하고는 눈도 안 마주치려 하는 거 보세요." 수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보니 내 쪽만 쳐다보며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주사 잘 맞았다고 상(?)으로 주는 비스킷 한 봉지를 대신 받아들고 집으로 오는 길에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정작 우리 아이가 클 때 꼬박꼬박 독감예방주사를 맞았나?' 그때는 백신이 없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타잔은 엄마(?)를 잘 만나 행복하겠다"며 맞이하는 남편에게 울지 않고 예방주사를 두 대나 맞고 왔노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형아 한테도 자랑하자"며 핸드폰을 들이대자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우리 아들에게 한참을 워-워- 거린다. 턱을 쳐들고 코를 벌름거리며 애절하게 말이다.

a 우리집 둘째 아들(?) 타잔

우리집 둘째 아들(?) 타잔 ⓒ 허선행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나는 애완견을 키울 생각을 해 본적도 없다. 어느 날 작은 강아지 하나를 안고 온 아들 녀석을 보고 깜짝 놀라 도로 갖다 주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아들이 몰래 키우는 듯했는데, 며칠이 지나 아들방 을 치우러 들어갔다가 빤히 나를 쳐다보는 강아지의 눈망울에 그만 빠져 버렸다. 벌써 육 년 전의 일이다.

요즈음 유기견이라는 말을 들을 때 가슴이 아프다. 간혹 타잔을 밖에 데리고 나갔을 때 아이들이 따라오며 "야! 귀엽다. 나도 강아지 사 달래야지"하는 아이들을 보면 꼭 해 주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잘 생각해 보고 사라고. 그리고 강아지 돌보는 건 엄청 힘이 드는 일이라고. 먹여주고 씻겨주고 돌봐줘야 하니 자칫 귀찮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고."

방송사에서 유기견 입양하는 프로그램을 보며 생각이 많다. 한때는 예쁘다고 키우다가 병이 들거나 혹은 귀찮거나 돌볼 형편이 안 되거나 하여 그냥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처음 들일 때 심사숙고하여야 할 것이다. 가족이 되는 거니까.

아무튼 씩씩한 우리 타잔은 예방접종을 하고 온 그날 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쿨쿨 잘 잤다. 혹시 열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나는 열심히 들여다보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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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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