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과 '도롱뇽 친구들'은 과연 미쳤을까?

도롱뇽소송 항고심 결정에 대한 환경법학자의 소회

등록 2004.11.29 21:41수정 2004.11.30 17:34
0
원고료로 응원
지율스님의 수차례에 걸친 단식투쟁과 천성산 도롱뇽이 원고로 참여함으로서 사실상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의 권리소송'으로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된 이른바 '도롱뇽소송'은 항고심에서도 또 한번의 깊은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부산고등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김종대 부장판사)는 29일 도롱뇽과 도롱뇽의 친구들, 내원사·미타암 등이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신청사건에서, 지난 4월 9일 1심 법원인 울산지방법원 합의부에서 도롱뇽에 대해서는 각하, 도롱뇽의 친구들과 미타암·내원사에 대해서는 기각 결정을 내린 것과 마찬가지로 각하 및 기각결정을 내렸다.

항고심 재판부는 이날 오전 선고 직전에 원고측이 제기한 변론재개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터널 부근의 지하수맥과 무제치늪이나 화엄늪의 직접 수원되는 지하수 내지 지표수는 신청인들의 주장과 달리 상호 연결돼 있지 않을 개연성이 훨씬 높아 터널공사가 무제치늪이나 화엄늪 등의 고산늪지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또한 재판부는 "터널 길이가 13㎞를 넘는 장대터널이고 시공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지질상태를 만날 개연성도 있어 자체 기술의 한계 및 시공상 실수의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신청인들의 주장과 같이 터널 자체의 붕괴 가능성과 지하수 유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발생개연성에 대한 소명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판시하였다.

동 재판부는 이어 "터널 공사중단으로 고속철 완전개통이 미뤄지면 연간 2조원에 가까운 사회경제적 이익이 감소되는 등 막대한 공공의 이익이 침해된다"고 하면서, "굴착공사로 초래될 환경침해의 개연성은 현저히 낮아 보이고, 따라서 이 공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를 넘는 위법한 환경이익의 침해행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즉 재판부는 개발로 인한 경제적 이익과 보존으로 인한 환경이익을 형량하여 개발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재판부는 원고측이 원용하였던 자연물의 당사자에 대한 외국의 판례에 대해서도 "신청인 중 하나인 도롱뇽에 대해서 외국의 하급심에서는 특이한 판결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연물에 대한 소송당사자 자격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며 각하를 결정하였던 1심 판결을 그대로 확인하는데 그쳤다. 또 재판부는 환경단체인 도롱뇽의 친구들이 주장하는 환경권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피보전권리가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항고심 결정과 관련하여 도롱뇽소송 시민행동연대는 재항고할 뜻을 밝혔고,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 3개월간 중단되었던 해당 구간 고속철공사를 30일부터 즉각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도롱뇽소송의 법률자문단으로 참여하면서도 사실은 소송의 결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기대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아무리 재판부가 이번 도롱뇽소송의 역사적 의미를 깊이 인식하고, 원고측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한다 할지라도 현행법 체계상 도롱뇽에게 원고적격을 인정한다는 것은 법원이 법을 창조하는 일이 될 터이므로 기대를 갖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우리 헌법재판소는 지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사건에서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끌어들여 위헌결정의 근거로 삼긴 하였지만, 지금까지 법원의 태도는 새로운 법의 창조라는 위험부담을 스스로 떠 안기보다는 제정법 준거주의라고 하는 편한 길을 선택했던 것이 그간의 일반적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지율스님도 누차 강조하였듯이 애당초 도롱뇽소송은 단순히 국책사업이라는 명분만으로 국법 어기기를 밥먹듯이 하는 국가 등의 형태에 문제를 제기하고, 법치주의에는 국가 등도 예외일 수 없으며 국책사업이라 해도 법을 위반하였으면 공익을 위한 환경단체 등이 문제를 제기하여 위법한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하다는 '제도개혁소송'이자 '세기적 가치소송'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여야 할 미래가치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이라며 지율스님이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국가 사회를 위해 발악(?)에 가까운 발버둥을 쳤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라고는 "미친 중년, 사바세계의 중생은 어려운 경제에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는데, 그깟 도롱뇽이 대수냐"는 투의 조롱 일색이었다.

개혁을 발목 잡는데도 '경제', 더한 미래가치에 대한 선각자의 외침에도 '경제'라는 말만 들이대면 유구무언일 뿐이다. 아마도 2004년 대한민국 올해의 단어에 '경제'라는 말이 가장 유력한 용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앞선 글 <권리 찾아 인간법정에 서는 천성산 도롱뇽>(<오마이뉴스> 2003년 10월 17일) <'도롱뇽소송'은 자연의 권리소송>(<오마이뉴스> 2003년 12월 11일)에서도 누누이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지율스님의 고독한 외침만큼이나 메아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었다.

이번 도롱뇽 소송에는 녹색연합, 습지와 새들의 친구, 환경정의시민연대, 청년환경센터와 같은 환경단체, 불교·천주교 등 종교단체, 전교조 및 민주노동당 등 수많은 정치사회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아쉬운 부분은 법률 전문가인 공익법률센터의 변호사들이나 환경법학자들의 철저한 무관심이지 않나 하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일본에서는 아마미섬 골프장 건설을 저지하기 위하여 주민들이 아마미섬 야생토끼를 원고로 내세워 다툰 아마미 야생토끼 소송에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수많은 변호사들과 환경법학자들이 참여하여 법리를 계발하고 원고들을 도왔던 사례와 비교할 때, 이번 우리의 천성산 도롱뇽소송은 크게 대비가 된다.

필자는 이미 몇 년 전에 '자연의 권리소송'에 관한 글을 전공 학회지에 발표한 바 있고, 도롱뇽소송과 관련한 몇 번의 토론회에서도 발표자로 참여하여 도롱뇽소송의 시대적 의미를 알려내고 현행 소송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함으로써 제도개혁의 공론화를 이끌어, 인류익·생태익이라는 미래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방향으로 현행 소송제도의 개혁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였지만 역시 메아리 없는 아우성에 그치고 말았다.

환경법 전문가로서 필자 역시 도롱뇽소송 항고심 결정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롱뇽소송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국민들에게 차근하게 설득해 내지 못한 책임, 그리고 환경법 전문가로서 재판부로 하여금 '도롱뇽의 원고적격'에 대한 흔들리지 않을 법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현행 소송제도의 개혁에 대한 당위성을 설득함으로써 '도롱뇽도 소송을 제기할 원고적격을 가진다'는 재판부의 결정을 도출해내지 못한 환경법 전문가로서의 무거운 책임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늦긴 하였지만 이번 도롱뇽소송이 인류익과 생태익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도록 우리의 현행 소송제도가 가진 결함을 극복하여 생태주의적 소송제도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련
기사
- 권리 찾아 인간법정에 서는 천성산 도롱뇽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제대 법학과 교수. 전공은 행정법, 지방자치법, 환경법. 주전공은 환경법. (전)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전)한국공법학회부회장, (전)한국비교공법학회부회장, (전)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전)김해YMCA이사장, 지방분권경남연대상임대표, 생명나눔재단상임이사, 김해진영시민연대감나무상임대표, 홍조근정훈장수훈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