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 소송'은 자연의 권리 소송

[주장] 우리나라 환경보호법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록 2003.12.11 01:13수정 2003.12.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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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울산 지방법원 제111호 법정에서는 도롱뇽과 그 친구들이 제기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구간 터널공사중지가처분신청에 대한 재판부의 1차 심리가 열렸다.

이번 소송의 당사자는 한국철도건설공단이 피고가 되고, 천성산에 서식하는 희귀동물종인 도롱뇽과 그 친구들이 공동원고로 나서며, 천성산 지킴이 내원사 지율스님이 이들을 대표하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독일, 일본에서도 야생동식물 등 자연 그 자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야생동식물을 원고로 세워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띈다.

이러한 자연의 권리소송은 주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제기하였던 예전의 소송과는 전혀 다른 소송목적과 내용을 가진 새로운 유형의 자연보호소송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자연보호소송이라 할 자연의 권리소송이 제기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현행 소송제도는 민사·행정소송 할 것 없이 어떤 사람의 위법한 행위로 법이 보호하는 이익을 침해받은 사람(자연인과 법인 등)만이 소송을 제기하여 상대방의 위법한 행위로 침해된 자신의 이익을 다툴 수 있는, 이른바 개인주의적이고 인간중심주의적인 소송제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행정소송의 예를 들면, 시장이나 도지사가 도로건설공사허가를 하였을 때, 이를 법정에서 다투기 위해서는 그러한 허가가 개인의 권리이익을 침해할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하고(처분성), 또 건축법이나 환경관계법을 위반하여야 하며(위법성), 위법한 건축허가처분을 취소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올 법률상 이익이 있는 사람만(원고적격)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 정상부분을 소유하는 개인이 행정청으로부터 위법한 골프장허가를 받아 골프장을 건설하더라도 이러한 공사로 직접적인 손해를 보는 사람이 없다면 이를 중지시킬 방법이 없는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요소들을 소송요건이라 하는데, 이들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재판이 성립되지 않거나 문전박대 당하게 되며, 사실 이러한 요건들을 충족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이나 까다로운 것이다.


즉 어떤 법률이 국민들의 일반적 이익(공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행정청에게 다양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을 때, 행정청이 법령이 부여한 여러 의무를 열심히 수행한 결과 일반인들이 얻는 이익은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고, 행정청이 의무 이행을 게을리 하여 그러한 이익을 침해받더라도 이는 법이 보호하는 이익이 아니므로, 그러한 이익을 침해받은 사람은 소송을 제기하여 다툴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보다 중요한 가치를 두어야 할 공익은 반사적 이익이라 하여 보호를 방치하는 소송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법이나 상법과 같은 법률은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고 조정하기 위한 법이므로, 이러한 소송 구조를 통해서도 개인간의 이익 충돌을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행정의 목적은 공익의 실현에 있고, 공익의 실현에 봉사하는 법이 행정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소송제도는 공익보호를 위한 제도라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주관적 기능에 중점을 두는 제도로 운용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환경법의 경우에는 민법이나 행정법에 비해서 객관성과 공익성이 훨씬 강한 법이다. 환경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개인의 이익보호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미래세대를 포함한 인류 전체의 이익, 나아가 생태계 자체의 이익, 지구의 이익보호에 중점이 두어진 고도의 공익성과 객관성을 띤 법률이라 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화석연료규제에 관한 국제조약, 오존층보호를 위한 프레온가스의 국제적인 이용규제, 희귀동식물 보호를 위한 국제조약과 국내법 등은 현재 지구상에 살아가는 인류, 그 중에서도 현재세대의 인류의 이익보호만을 염두에 두고 정립된 규범은 아닌 것이다. 즉 생태계 자체의 보호를 염두에 둔 규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 규범들은 지금까지 인간의 이익보호에 중점을 둔 민법이나 행정법과 같이 개인주의 또는 인간중심주의에 사상적 토대를 둔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포함하는 인류, 나아가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태주의(자연주의) 사상에 토대를 둔 규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기업이나 개인이 이들 환경법을 위반하여 환경이익(공익)을 침해하였을 때, 현행의 인간중심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소송제도를 통해서는 결코 객관적이고 공익적인 성격이 강한 생태익·지구익을 지켜낼 수 없을 것이고, 현행의 소송제도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환경법의 성격과 이념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 이념과 성질에 타당한 공익적이고 객관적인 소송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기업이나 개인이 환경법에 위반하여 환경파괴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이 사회 구성원이면 누구나 소송을 제기하여 공익(환경이익)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나아가 지금 전개되고 있는 도롱뇽소송과 같이 자연동식물도 법정에서 원고의 자격이 부여되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정에 설 수 있는 법제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환경법이 지향하는 이념이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방안이라 생각된다.

환경윤리학이나 환경철학, 나아가 환경법학 등 여러 학문분야에서도 이러한 제도에 대한 윤리적, 철학적, 법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구상의 생물들이 지금껏 진화되어왔듯, 헌법상의 기본권을 포함한 권리 역시 역사적으로 발전·진화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즉 예전에는 사람만이 권리의 주체로 보았으나, 지금은 사람이 아닌 법인이나 법인 아닌 단체라도 소송의 당사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가 아닐까 한다.

구체적으로 환경법에서 환경파괴행위자에 대하여 "누구라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는 것이다. 여기서 "누구"에는 자연동식물도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자연동식물은 사람처럼 법정에서 직접 자신의 이익을 다툴 수는 없으므로, 공익대표자(환경단체, 환경관련 학자, 환경법상 규제행정청 등)가 동식물을 대신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 체계상 이러한 새로운 소송제도를 창설하는 것이 가능할까. 헌법 제101조 제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라고 하여, 헌법에 다른 규정이 없는 한 사법에 관한 권한은 원칙적으로 법원이 행사한다는 법원사법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서 규정하는 '사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늘날의 지배적인 견해는 사법을 실질적 의미로 파악하고, "사법이란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당사자로부터의 쟁송의 제기를 기다려 독립적 지위를 가진 기관이 제3자적 입장에서 무엇이 법인가를 판단하고 선언함으로써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작용"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헌법 규정에 근거하여 법원의 권한을 정한 법원조직법 제2조 제1항은 "법원은 헌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한 일체의 법률적 쟁송을 심판하고, 이 법과 다른 법률에 의하여 법원에 속하는 사건을 관장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법원은 행정사건을 포함한 모든 법률적 쟁송에 관한 관할권을 가지며, 또 법률적 쟁송이 아니더라도 법원조직법과 다른 법률에 의하여 법원에 속하는 사건을 관할한다. 우리 행정소송법 제45조가 규정하는 민중소송과 기관소송이 후자의 예에 속한다.

헌법과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이른바 환경보호를 위한 민중소송과 같은 객관소송의 창설은 입법정책의 문제로서 법제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 그러한 제도의 도입여부는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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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법학과 교수. 전공은 행정법, 지방자치법, 환경법. 주전공은 환경법. (전)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전)한국공법학회부회장, (전)한국비교공법학회부회장, (전)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전)김해YMCA이사장, 지방분권경남연대상임대표, 생명나눔재단상임이사, 김해진영시민연대감나무상임대표, 홍조근정훈장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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