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들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살아?"

<내 추억속의 그 이름 207> 까치집

등록 2004.12.02 14:59수정 2004.12.0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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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그러니 매달린 까치집을 바라보면 고향생각이 간절하다
덩그러니 매달린 까치집을 바라보면 고향생각이 간절하다이종찬
"올(오늘)따라 까치가 와 저리 자꾸 울어쌓노?"
"오데서(어디서) 반가운 손님이라도 오시려나?"
"그기 아이라 솔개로 쫓아낸다꼬 마구 싸우고 있구마."
"하여튼 까치 저기 영물은 영물인기라. 병아리까지 채가는 솔개도 떼거리로 덤비는 저 까치들한테는 우짤 수 없는 거 보모(보면)."


이른 새벽부터 까치가 하얀 배를 드러낸 채 꼬리를 까딱거리며 유난히 시끄럽게 울어댄다. 암컷인 듯한 까치는 얼기설기 얽어놓은 둥그런 까치집 앞에 앉아 목이 터져라 깍깍거리고 있고, 수컷인 듯한 까치는 까치집 아래 자동차 꽁무니를 슬며시 갖다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리 날았다 저리 날았다 정신이 없는 듯하다.


예로부터 이른 새벽에 들리는 까치 울음소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어릴 적, 우리 마을 사람들은 집을 바라보며 까치가 요란스럽게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며 아침부터 수선을 떨었다. 그날은 진종일 기대감에 들떠 그 반가운 손님이 누굴까 은근히 신작로를 힐끔거리며 기다리기도 했다.

그래.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우리 마을은 그해 수확한 짚으로 예쁘게 엮은 노오란 초가지붕으로 탈바꿈했다. 우리 마을 한가운데 사천왕처럼 떡 버티고 앉은 대지주집의 검푸른 기와지붕을 빼고는 모두 노오란 초가지붕이 마치 모이를 찾는 병아리떼처럼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저절로 정이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아니, 가만 보이(보니까) 저 녀석들이 아침부터 사랑놀음을 하고 있구마."
"에휴! 일년 내내 뼈 빠지게 농사로 지으모 뭐하노. 추곡수매가가 길거리에 파는 군고매(군고구마)보다 더 못한데. 차라리 저 까치처럼 아침부터 사랑놀음이나 함시로(하면서) 알콩달콩 살았으모 울매나 좋것노."
"오늘따라 객지 나간 신랑이 디기(많이) 보고 싶는가베. 아, 쪼매마 더 기다려보라카이. 올(오늘) 신랑이 돈을 한 보따리 싸들고 들어올랑가. 오늘따라 저 까치들까지도 듬정떼기(듬정댁) 집을 보고 자꾸 울어 쌓거마는."


내가 태어난 자란 동산마을에는 곳곳에 까치집이 참 많았다. 전봇대처럼 하늘로 쭉쭉 뻗어오른 미루나무 가지와 아카시아 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까치집이 하나씩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간혹 어떤 나무에는 까치집이 두 개씩이나 매달려 있기도 했다.

우리 마을 어머니들은 나무 하나에 까치집이 두 개씩 매달려 있는 것을 참으로 볼썽사납게 생각했다. 아니, 집안에 아주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런 까닭에 집 주변에 서 있는 나무에 까치가 또 하나의 집을 짓기 시작하면 긴 장대를 들고 나와 그 까치집을 마구 허물어 버렸다.


나란히 매달린 까치집이 마치 정겨운 이웃처럼 보인다
나란히 매달린 까치집이 마치 정겨운 이웃처럼 보인다이종찬
왜냐하면 집 주변의 나무에 까치가 집을 두 개나 짓게 되면 그 집안이 금세 망해 셋방살이 신세를 하게 되거나, 남편이 바람을 피워 두 집 살림을 하게 될 징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동무들도 마을 주변의 나뭇가지에 까치집이 나란히 두 개가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면 재수 나쁘다며 돌팔매질을 하곤 했다.

"까치들도 점점 사람을 닮아가는구먼."
"저거는 까치 가족이 셋방살이를 할라꼬 집을 짓는 기 아이라, 까치 숫컷이 바람을 피운 기라카이. 그라이 까치 암컷이 집을 못 짓구로(짓게) 저리 깍깍거리며 난리로 피워쌓지."
"쉬이~ 듬정떼기 들을라. 그렇찮아도 객지에 돈 벌러 나간 신랑이 소식이 없어가꼬 속이 터져 죽을라 안 카더나."



그랬다. 1970년대 초반 우리 마을 아버지들은 추수가 모두 끝난 농한기가 다가오면 가까운 건축현장에 나가 날품을 팔거나 겨울이 끝날 때까지 객지에 나가 돈벌이를 하곤 했다. 그러다가 크게 다쳐 병원비가 더 많이 들 때도 있었고, 간혹 소식조차 아예 끊기는 때도 더러 있었다.

마을에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마을 어머니들은 긴 장대를 들고 나가 뒤에 지은 까치집을 마구 쑤시곤 했다. 까치들도 대단했다. 까치들도 마을 어머니들에게 결코 지려 하지 않았다. 마을 어머니들이 틈만 나면 긴 장대로 까치집을 그렇게 들쑤셔놓아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까치집이 반쯤 지어져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까치와의 끊질긴 싸움에서 마을 어머니들이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듬정댁은 이른 새벽마다 두 개의 까치집이 매달린 그 나무 앞에 찬물을 떠놓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남편이 새 식구를 데리고 돌아와도 좋으니 제발 집으로만 돌아오게 해 달라며.

"아빠! 저 까치집도 사진 한 장 찍어"
"왜?"
"저 까치집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잖아."


그랬다. 막내딸 빛나의 말처럼 나의 고향도 사라져 버렸다. 스스로 고향을 떠난 게 아니라 창원공단조성으로 인해 그리운 내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한꺼번에 몽땅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새로운 까치집을 하나 짓긴 했지만 마치 뒤에 지은 까치집처럼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때 내 고향집과 내 고향마을과 내 고향들판을 사진으로라도 남겨놓겠다는 그런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하긴 그땐 사진기도 몹시 귀했다. 아니, 지금처럼 자그마한 자동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 같은 것은 더더욱 없었다. 내가 살았던 창원군 상남면 소재지에 '희망사진관'인가 하는, 이름도 가물거리는 그 사진관이 꼭 하나뿐이었으니까.

사진을 찍었던 기억 또한 별로 없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 한 번 찍었고, 중학교 입학원서에 붙히기 위해 또 한 번 찍었던가? 하지만 그 사진조차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두 개의 까치집을 바라보며 한숨을 포옥 내쉬던 마을 어머니들도,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두 손을 싹싹 빌던 듬정댁도 보이지 않는다.

노오란 초가지붕이 이마를 정겹게 맞대고 있었던 내 고향마을이 있었던 그 자리에는 지금 반듯반듯한 이층 양옥집이 뒤늦게 지은 그 까치집처럼 뺀질거리고 있다. 보리가 마악 싹을 틔우던 들판이 있던 그 자리에는 반듯한 백화점과 20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그때 두 개의 까치집이 매달린 그 미루나무처럼 우쭐거리고 있다.

"아빠! 까치들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살아?"
"제 집이 있잖아"
"지붕도 없잖아. 곧 눈이 펑펑 쏟아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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