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형 휴대전화, 버그도 최신?

기능 다양해질수록 버그도 늘어... 소비자 피해 속출

등록 2004.12.03 18:33수정 2004.12.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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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천아무개(22)씨는 지난 9월 72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200만화소급 카메라폰을 새로 구입했다가 낭패를 봤다. 전화가 오면 첫번째 통화는 무조건 끊어져 다시 걸어야하는가 하면, 휴대폰 전원도 자동으로 꺼지는 경우가 많아 꼭 받아야할 전화를 놓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공공장소에서 매너모드로 전환을 하면 내부 액정에 불이 들어오지 않고, 전화기 폴더를 열어도 10초 이상이 지나야 액정화면이 켜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AS센터에 수리를 의뢰했으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그 패치를 설치하고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에서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전화번호, 유료로 구입한 게임 등 데이터가 모두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수리를 받은 후에도 종료 버튼이 제대로 눌러지지 않는 등 잔고장은 계속됐고, 휴대폰 수리에 지친 천씨는 결국 기기 교환을 요구해놓은 상태다. 천씨는 "휴대폰을 부실하게 만든 제조사의 잘못 때문에 소비자가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AS센터를 들락날락해야하는 불편을 겪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드렸다.

회사원 서아무개(27)씨도 당시 독특한 디자인으로 관심을 모았던 최신형 휴대폰을 43만원 주고 구입했다가 피해를 본 경우다.

전화가 와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데다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아 문자메시지 전송에도 애를 먹었다. '먹통' 전화 때문에 서씨는 업무상 중요한 전화통화를 해야할 경우 가까운 공중전화를 찾아다녀야만 했다.

서씨는 "서너번 AS센터에 가서 수리를 받았지만 전화기가 정상으로 작동하지 않아 결국 다른 기종으로 바꾸고 말았다"며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보니 그 모델을 구입한 사람들 중 유사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리콜요구 목소리가 높았다"고 말했다.

버그로 신음하는 휴대폰


휴대폰이 '버그'(bug)로 신음하고 있다. 다양한 기능을 갖춘 최신형 휴대폰일수록 버그로 인한 고장 피해가 빈번하다.

휴대폰이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 신용카드, TV 기능까지 갖추게 되면서 단말기에 집어넣어야할 소프트웨어도 용량이 늘어나고 복잡해지면서 발생하는 기능 장애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휴대폰 상에서 구현되는 기능이 다양해지면 그 기능을 뒷받침할 소프트웨어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테스트를 하긴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완벽하게 버그 발생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피해사례도 자동으로 저장된 데이터가 모두 삭제되는가 하면, 카메라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다가 종료 버튼을 눌러도 멈추지 않아 배터리를 분리해야 하는 등 다양하다. 액정크기를 소프트웨어가 따라가지 못해 동영상 재생이 불가능한 경우도 잦은 피해 사례 중 하나다.

버그가 잦은 휴대폰 모델의 경우 사용자들이 인터넷상에 '안티 카페'를 개설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올 10월까지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휴대전화 단말기 관련 상담 및 민원도 3600여건이나 된다. 서울YMCA가 지난달 12일 문을 연 휴대폰 버그 관련 소비자고발센터에는 2주만에 500여건의 피해사례가 접수되는 등 소비자 불편·피해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은 업체들간 신제품 출시 경쟁이 격화되면서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제품을 내놓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제품 출시 경쟁에 소비자들만 피해...소비자 보호운동 본격화

휴대폰 버그 사례가 소개되고 있는 모바일사용자연합 홈페이지 피해사례 게시판
휴대폰 버그 사례가 소개되고 있는 모바일사용자연합 홈페이지 피해사례 게시판
휴대폰 사용자 커뮤니티들의 연합체인 모바일사용자연합 박정석 대표는 "올 들어 휴대폰 기능이 다양화되고 업체들의 신제품 경쟁이 심해지면서 버그 발생이 급증하는 추세"라며 "그런데도 제조사들은 버그의 원인을 소비자 탓으로 돌리고 있어 신제품 출시경쟁에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사실 외국에서는 버그로 인해 휴대폰에 문제가 생길 경우 판매를 중단시켜 업체의 영업에 큰 타격이 생긴다"며 "일본만 해도 다기능폰의 버그 발생률이 그리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희경 서울YMCA 간사는 "소비자 피해사례를 분석해보면 버그가 없는 모델이 별로 없었다"며 "수십만원하는 고가의 휴대폰을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면서 철저하게 테스트하지 않고 소비자를 상대로 테스트를 진행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 단체들은 향후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본격적인 소비자 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서울YMCA는 접수된 소비자 피해 사례 분석을 통해 버그 발생이 고질적인 휴대폰 모델에 대해서는 업체들에게 공개리콜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등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다.

모바일사용자연합도 커뮤니티를 통해 휴대폰 버그 실태와 심각성을 알려나가는 한편 버그로 인한 단말기 피해에 대한 보상기준 마련 등 제조사가 보다 철저히 제품을 검증한 후에 출시하는 관행이 정착되도록 소비자 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여 나가기로 했다.

회사원 김요한(30)씨는 "앞으로 500만·600만화소 카메라폰이 세계에서 최초로 출시되더라도 버그 때문에 제기능을 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세계 최초만을 자랑하다가 제품 품질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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