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가 심해야 특종이 되는 슬픔

3년 동안 정확한 황사 예보에 자부심... 내년에는 어떨까

등록 2004.12.08 07:37수정 2004.12.1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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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끔씩 엉뚱한 곳에 집착할 때가 있다. 기자로서 내가 엉뚱하게 집착하는 것이 황사다. 황사철이 다가오면 괜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집착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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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찾아온 황사. 처음에 심해 언론들이 들떴지만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 조창완

올해도 그런 의무감이 찾아왔고 나는 <오마이뉴스> 3월 11일자에 '불청객 모래바람, 2년만에 돌아왔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올려 나름대로 황사를 예측해 보았다.

당시 다른 언론에서 황사가 심할 거라 예측한 것과 달리 나는 평년 수준이 될 거라 내다봤는데 결과적으로 이 예측이 딱 들어맞았다. 황사가 심했던 3년 전에 황사가 심할 거라 추측을 한 후 3년간 정확히 황사 수준을 예측했다는 점이 내가 봐도 재밌다.

하지만 추측이라기보다는 관심을 갖고 다양하게 접근해 내린 결과다. 문제가 심각해져야만 뉴스가 되는 것이 현실인데 올해도 나만의 특종으로 만족하며 그 이야기를 잠시 쓴다.

나와 황사의 인연은 방송 코디네이션차 쓰촨에 들렀던 2002년 2월로 거슬러 간다. 취재 중에 나는 겨울인데도 너무 빨리 피어버린 꽃들에 의구심을 가졌다. 이게 무슨 자연현상과 관련 있나 하는 의구심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여러 자료를 찾아 분석한 뒤 그 결과를 2002년 2월 23일 <오마이뉴스>에 '중국 이상 기온 한국도 위협한다'라는 제하 기사로 올렸다.

당시는 황사 현상에 그리 주목하지 않을 때였다. 우리 언론이 황사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대황사가 지난 후였다. 지금은 봄철이 되면 황사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만 2002년 전에는 그다지 심각하게 느끼지 않았다.

때문에 언론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나 역시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 불허였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3월 20일 초대형 황사가 왔다.

그 황사 덕분에 나는 기사도 쓰고, 방송도 만들어 제법 쏠쏠한 황사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내가 살던 톈진을 지난 황사가 하룻만에 한국에 도착한다는 점 때문에 <오마이뉴스>에 계속 황사실황을 중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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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황사를 예측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은 중국 기상 실황도 ⓒ 조창완

그리고 다음 해인 2003년 나는 다시 황사의 근원지를 방문하고 관련 예측 기사를 썼다. 2003년 2월 10일자 '황사, 올해는 안전할까'라는 기사가 그것이다.

편집자도 확신하기 어려운 기사여서 소극적으로 제목을 뽑았지만 이 예측은 정확했다. 지난 해 황사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감이 아니라 황사 근원지의 상태나 강수량, 기온, 세계적 기후 변화를 분석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이를 위해서 기자는 적지 않은 투자를 했다.

2003년에는 황사 정도를 예측하기 좋은 2월에 황사 근원지들을 방문해서 르포 기사를 쓰기도 했다. 눈쌓인 타이싱(太行) 산을 넘어갈 때는 주변에 골짜기로 빠진 차들이 많아서 겁을 먹기도 했고, 일주일에 걸쳐서 허베이·산시·샨시·깐수·닝샤·네이멍구를 도는 장정을 하기도 했다.

이들 지역은 겨울인데도 고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거리에서는 철보다 빠른 봄 꽃을 팔고 있었다. 기자는 황사 지역의 겨울이 이상 고온을 유지한다는 사실에서 황사를 예측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망 기사를 썼고, 결과는 정확히 맞았다.

깐수, 닝샤에서 본 것만으로는 불안해 네이멍구 산맥에 쌓인 눈을 보고나서야 확신하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다 전부터 내린 사막 근원지의 강우량, 황사를 부추기는 엘리뇨 현상도 세밀하게 점검했다. 그 후에야 자신감을 갖고 기사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특종은 황사가 없어 날아갈 기회조차 없는 특종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올해 초 나는 다시 의무감으로 황사 예측 기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위에 소개한 3월 11일자 기사를 썼다. 올해도 평년 수준의 황사가 있을 거라는 예측은 정확히 맞았다. 올초 다른 언론에서 황사가 심할 거라는 추측이 난무할 때 나는 황사를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언론의 특성상 피부에 와닿지 않은 위협은 기사거리가 되지 못하기에 결국 이 기사도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황사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삼성반도체 담당자에게 감사 메일을 받기도 해 보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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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보도 덕분에 중국에서 열린 세미나에도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진은 중국임업국에서 열린 동북아 황사 공동대책 세미나 ⓒ 조창완

사실 환경과 전혀 상관 없는 분야에서 글을 썼지만 황사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환경이나 지구의 미래, 특히 중국의 미래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취재할 의욕을 갖게 됐으니 황사는 나에게 가장 확실한 스승인 셈이다.

지금은 그 관심이, 벗겨지는 설산의 미래나 중국의 대체 에너지로 확산하고 있다.

내년에도 봄이 돌아오면 들뜬 바람쟁이처럼 황사를 예측하기 위해 레이더를 가동할 것이다. 3년을 맞혔다고 내년에도 정확히 맞힐 것으로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황사를 다루지는 않을 테니 기자의 기사를 기대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내년에도 기자의 예측 기사가 특종으로 부각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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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중국 이상 기온 한국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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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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