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학생들, 한국으로 교육 망명?

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 결과로 우울한 오스트리아

등록 2004.12.12 00:42수정 2004.12.1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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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 충격에 휩싸인 오스트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국가들이 해마다 실시하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즉 피사(PISA)로 불리는 평가에서 오스트리아를 대표한 학생들의 성적이 저조하자 오스트리아 전체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피사(PISA) 관련 기사를 크게 다룬 오스트리아 주간지 뉴스(NEWS)
피사(PISA) 관련 기사를 크게 다룬 오스트리아 주간지 뉴스(NEWS)NEWS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층 달구워져야 할 이곳의 12월 분위기는 피사의 저조한 평가 결과로 우울하기 그지없는 상태다. 또 오스트리아 피사조직위원회의 하이더 위원장과 게러 교육부장관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매시간 라디오에서는 피사와 관련된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으며, 국영방송사인 ORF는 특집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했다. 각 신문사들은 '피사 충격'이라는 제목으로 피사와 관련된 교육기사를 매일 매일 업데이트하며 교육정책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곳의 언론들은 오스트리아의 교육이 너무나 정치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각 학교의 교장들이 각각 다른 정당에 속해 있어 학교의 교육이 일률적이지 않고, 자율적인 학교 분위기는 학생들의 학업 의욕을 상실케 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학자들과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한 자존심 높은 오스트리아에서 아이들의 교육 문제는 현재 다른 어떤 스캔들보다 더 뜨거운 사회적, 국가적인 큰 이슈로 떠올랐다.

오스트리아의 피사 순위, 이웃 국가인 독일보다 낮아

읽기, 수학, 과학, 문제해결능력 등의 총 4개 부문에 걸쳐 시행되는 피사에서 오스트리아는 읽기 부문 19위로 작년보다 9계단, 수학은 15위로 작년보다 4계단 떨어졌다. 과학에서는 20위를 차지해 작년 평가보다 무려 12계단이나 떨어졌고, 올해 새로 시행된 문제해결능력에서는 15위를 차지했다. 특히 이번 피사는 이웃 나라이며 경쟁 국가인 독일보다 열등한 결과를 보여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자존심마저 건드렸다.

이번 피사에서 최우수 성적을 거둔 1위 국가는 핀란드다. 핀란드는 읽기, 수학, 과학 3개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2위 국가는?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읽기 2위, 수학 2위, 과학 3위, 문제해결능력에서 1위를 차지해 핀란드의 뒤를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뉴스(NEWS)에 소개된 피사 결과. 핀란드, 한국 등의 순위를 훨씬 지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피사 순위가 소개되어 있다.
뉴스(NEWS)에 소개된 피사 결과. 핀란드, 한국 등의 순위를 훨씬 지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피사 순위가 소개되어 있다.NEWS
오스트리아의 교육 전문가들과 미디어는 피사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국가의 교육 제도를 배워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1위를 차지한 유럽의 이웃 국가인 핀란드보다도 2위를 차지한 한국의 엄격한 교육 제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엄격한 교육제도를 배워라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독립일간지 <데어 슈탄다드>는 지난 10일자 신문 6면에 피사 관련 6번째 기사를 전면에 실었다.

'피사 우등생들 흘끔 쳐다보기'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한국으로 교육 망명을 떠날지도 모를 오스트리아 학생을 그린 커다란 만평까지 실렸다. '오후 5시까지 학교에 머무르고, 직업 선택을 위한 학교의 도움이 있으며, 18살 때까지 취학의 의무가 있는 피사의 대가(大家) 한국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부제의 이 기사에는 한국의 독특한 교육 제도가 면밀히 소개됐다.

8살부터 13살까지의 초등교육과 각각 3년간의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이 한국의 필수 교육 과정이라고 소개한 이 기사는 한국의 필수 교육 시스템에는 '유급'이나 '낙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성적 위주의 사회에서 치욕과 마찬가지며 좋은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서 고등교육은 전제 조건이라고 소개했다.

12월 10일자 <데어 슈탄다드>에 보도된 한국 교육 기사.
12월 10일자 <데어 슈탄다드>에 보도된 한국 교육 기사.
또 이 기사에서는 오후 5시까지 학교에 머물러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점심 식사를 위해 1시간 정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고,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의 반 분별은 더 이상 엄격하지 않으며,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의 학생들은 방과 후에 밤 10시까지 사설학원에 보내지거나 과외 선생의 지도를 받는다고 한국의 공교육과 사교육을 함께 소개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기사가 삼강록 충신편에 나오는 군자의 말씀인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즉 '왕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같으며 존중되어야 한다'는 고사성어를 들며 한국의 교육 제도에는 여전히 엄격한 유교적 규율이 존재한다는 것을 소개한 부분이다.

군사부일체, 과연 지금도 존재하는가?

한국 교육에 대한 이러한 오스트리아의 관심은 다소 갑작스럽긴 하지만 반갑기도 하다. 필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아는 주변의 오스트리아인들은 뜬금없이 축하 인사와 더불어 전에 없던 관심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학생들의 자살률이 높은 한국 교육의 또 다른 현실도 알고 있다. 엄격한 교육이 최고의 교육이 아니라는 점을 이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언론들은 배우고 수용하자고 주장할 뿐, 모방하거나 바꾸자고 하지는 않는다. 이 정도의 스캔들로 교육부 장관이나 피사 위원장이 사퇴할 가능성도 아주 미미하다.

등수와 성적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시험에 대비한 암기 위주의 한국 교육이 학업성취도비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도 감성과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유럽의 교육에서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 또한, 스승을 무시하고 왕따가 존재하는, 치맛바람과 촌지가 아직도 출렁이는 한국의 학교 교육에 군사부일체의 유교정신이 아직도 제대로 남아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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