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자' 아닌 '저자'와 만나게 하자!

[인터뷰] '책읽기 교육' 관련 책 여럿 펴낸 허병두 교사

등록 2004.12.15 11:50수정 2005.07.0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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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두 교사
허병두 교사조성일
우리 사회는 요즘 또 한번 요동치고 있다. 여기서 요동치기라 함은 이철우 의원을 둘러싼 색깔론이나 열린우리당이 밀어붙이고 한나라당이 결사항전의 자세로 막는 이른바 '4대 법안 처리'와 같이 국민들의 관심 밖인 '정치권 속'이 아니라 온 나라에 걸쳐 치고 있다.

2008년부터 바뀌는 '대학입시 개선안'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에 바뀐 대입안의 골자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학생들의 '독서 활동'을 평가해 이를 대학입시에 반영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독서 학원'이니 '독서 과외'니 하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와 가뜩이나 초조한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학부모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갈팡질팡 하는 공교육을 기민하게 대응하여 점수 기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역시 한국의 사교육계 만큼 탁월한 능력을 가진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듯하면서 말이다.


여하튼 이런 가운데 대학입시 한복판에 서있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가 우리의 책읽기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책을 내서 화제다. <푸른 영혼을 위한 책읽기 교육>과 <너희가 책이다>(이상 청어람미디어 펴냄)를 쓴 허병두(서울 숭문고 국어교사)가 그다.

청소년 책읽기와 관련해서 '허병두'라는 이름은 보통명사로 통한다. 그가 1989년부터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줄곧 '운동'을 해온 터이기도 하거니와 소위 잘나가는(?) 추천도서 목록을 발표하는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의 대표이고, 또 각 언론에 관련 글을 전방위적으로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이야 밝히지만 작년에 온 나라를 독서 열기로 가득차게 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그 유명한 문화방송의 '!느낌표'의 숨은 '책 선정 위원'으로도 활동할 정도로 이 분야에선 내로라 하는 전문가이다.

“'독서'는 간데없고, '교육'만 남는다!”

<푸른영혼을 위한 책읽기> 표지 이미지
<푸른영혼을 위한 책읽기> 표지 이미지청어람미디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면 문제될 게 없겠지요. 책이야 많이 읽히면 좋은 거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예민한 부분 중의 하나인 대학입시와 관련이 있다는 거죠. 그러면 정작 '독서'는 간데없고, '교육'만 남게 되는데,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해지죠.”

허병두는 책읽기의 대학입시 반영으로 인해 예상되는 우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점부터 지적했다.


“강남의 발 빠른 사교육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책읽기 과외가 시작되었다는 둥 소문이 무성하잖아요. 교육부에서 아직 실행 매뉴얼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이 정도인데, 정작 시작되면 어떻겠습니까? 책을 몸과 마음으로 읽어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신 써준 독후감을 암기해 내신 점수를 좋게 받겠다 뭐 이런 발상이겠죠.”

그러면서 허병두는 책읽기에 대한 잘못된 맹신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독서교육과 입시가 맞물리면서 독서교육 만능주의나 독서교육 강제주의가 팽배해질 텐데, 이렇게 되면 획일적 독서교육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아까 사교육 얘기했듯 읽기가 아니라 외우기가 되기 쉽죠.”


지금 사교육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원인 중의 하나가 '선행학습' 때문이라고 진단한 허병두는 이런 전철을 밟는다면 독서 교육의 상업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지적한다.

“학생은 독서자가 아니라 학습자로 남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4월에 있었던 '독서능력검정시험' 논쟁에서 보았듯 독서가 '저자와의 만남'이 아니라 '출제자와의 만남'이 되죠.”

추천 도서 목록 만능이 아니다!

<너희가 책이다> 표지 이미지
<너희가 책이다> 표지 이미지청어람미디어
독서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터진 봇물처럼 쏟아내는 그의 입심을 그가 최근 낸 책으로 말머리를 돌려, 그럼 이번에 나온 책이 그런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뭔가 대안이 들어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지금까지의 역설이 모두 쇠귀에 경 읽기였다는 듯 허탈해 했다.

“제 책도 어쩌면 또 하나의 도그마를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책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려고 하고, 그러다 지쳐 그만두면서 이건 너무 이상적이야, 혹은 잠시 귀신에 홀렸나봐 뭐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책을 내는 것조차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낸 것은 아, 이런 방법도 가능하겠구나, 또는 이런 방법을 토대로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겠구나 하는 교과서가 아닌 참고서 역할이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죠.”

그가 이 두 책에 담은 일관된 메시지는 책읽기 자체에 방점이 찍힌 교육이 이루어지고,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입시와 만나고, 그래서 가정이 책읽기의 출발점이 되고 학교는 그 책읽기를 더욱 내실 있게 다져주는 그런 공조관계의 조성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기존의 어른 중심의 권장도서 목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지금 인터넷을 비롯한 각급 학교에서 활용하고 있는 각종 추천도서 또는 권장도서 목록이 이 책만 읽으면 모든 게 다 되는 듯한 만능목록으로 통하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만 하면 독서 교육은 다 한 것으로 생각한다.

“추천도서라는 게 아이들 눈높이하고는 별로 상관없는 듯해요. 그저 어른의 교양주의적 입장에서 골라 추천하는 거죠. 아이들의 관심사와 기성세대의 관심사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습니다. 그 간극을 무시하고 무조건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제하면 그게 읽힐 리 만무하지만 읽었다 하더라도 눈으로만 읽은 게 되죠.”

그래서 그가 활동하는 책따세의 '추천도서' 목록도 자칫 권력화하면서 비판의 대상이 아니냐고 물었다.

“물론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죠. 그리고 저희의 것은 이래서 좋고 남의 것은 저래서 나쁘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가능하죠. 다만 저희들은 현장 교사들로 책을 읽어야하는 주체들, 즉 학생들과 최대한 가까이에서 함께 호흡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학생들의 욕구 파악에 근접해있다고 볼 수 있죠.”

읽을 책 스스로 고르게 하라!

조성일
그러면서 허병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가 읽을 책을 자기 스스로 고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학생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어떤 책을 골라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단다. 그럴 때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단다.

“좋아. 30년 뒤에 너희들의 아들딸에게 권해줄 수 있는 책을 골라 와라.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혹은 엄마가 너희만 했을 때 읽었던 좋은 책이야 하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책 말이다.”

그런데 실제 해본 결과는 효과 만점이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책이나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좋은 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 생각의 결과에 따라 선택해온 책이 일반적 기준으로도 괜찮은 책들이었다는 것이다.

지난번 화제가 됐던 파주의 '골든벨 학생'처럼 강요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골라 어떤 책을 읽기 시작하여 그 책에서 해소가 되지 않는 궁금증이나 또 다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책을 찾아 읽게 되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책읽기는 하나의 궤적을 그리며 목록을 쌓아나가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그에게 그만의 좋은 책읽기 방법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흔히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뭔가를 찾으려고 하는데, 그런 독서는 한계가 있다며 '정말 그러한가?'하는 질문을 항상 던지면서 '왜냐 하면' '다시 말해' '예를 들어'와 같은 주문에 답하면서 읽으면 보다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서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쓰기 교육을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을 제대로 쓰려면 읽어야 하고, 제대로 읽으려면 써야합니다. 그 상관관계를 한번 곰곰 생각해보세요.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하면 무조건 쓰기부터 할 수 없잖아요. 그럼 당연히 필요한 책을 찾아 읽게 되잖아요. 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특히 정보화시대의 독서교육은 독서가 교육의 대상이 아닌 문화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입시만을 강조하면 응당 교육부 소관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책읽기를 문화적 범주 속에 넣어야 한다고 보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문화부가 주체가 되겠죠. 그것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정보화시대 아닙니까. 그러면 그 수단을 갖고 있는 정보통신부도 함께 해야겠죠. 따라서 문화부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교육부와 정보통신부가 배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고기 잡는 방법 터득하자!

조성일
'지금 우리 사회의 여러 요소 중 가장 강력한 독서 교육의 적은 무엇이냐'고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더니, 그는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이 질문이 '아주 기자다운(?) 질문'이라고 하여 묻는 사람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데, 일단 물으셨으니까 대답하면 우리들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TV라고 감히 말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들이었습니다. 스스로 책과 가까워지고 독서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없었죠. 앵무새처럼 교육적 입장만 떠들었죠.”

해서 그는 학교도서관을 비롯한 공동도서관의 활성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집안 형편상 책을 다 구비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마음 놓고 책을 빌려볼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뒷받침 되어야 비로소 독서교육은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에 낸 책에서 학부모와 교사들에게는 발등의 불이 된 독서 교육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또 학생들에게는 그물질을 해 잡은 고기를 대신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물질 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했단다.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과 문화가 만들어지고, 그 문화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가꿔주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면 보람된 일이 아니겠느냐며 그는 시험에 지친 영혼(학생)들에게 책읽기가 부담이 아닌 위안과 격려가 될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책따세 모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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