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족한 아이들과의 사랑

나와 말을 놓고 지내는 두 아이 이야기

등록 2004.12.15 20:34수정 2004.12.2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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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움에 겨워 잠에서 깰 때가 있다. 그리움 같기도 하고 배고픔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후회스러움이나 죄의식 같기도 한 일종의 결핍감은 내가 느끼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또한, 이만큼 확실하게 나의 존재감을 일깨우는 것도 드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찬 새벽 명치끝에서 전해져오는 서러운 감정만큼 나를 안심시키는 것도 없다. 행복감이나 자기존중감에 사로잡혀 있는 어떤 순간보다도 2%가 부족할 때 나는 내가 안심이 된다. 2%가 부족한 그 순간은 속옷 바람에 무릎을 꿇는 기도의 시간이기도 하고, 시가 써지는 창조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아내와 놀이 삼아 짓던
호박 농사 깨 농사 모두 끝나고
무성하던 잡풀마저 다 스러진 밭두렁에
지상에서 더는 고울 수 없는
산구절초 몇 송이
선연하게 피어 있다

나는 알겠다
저 꽃을 피운 것은
햇살도 바람도 아니라는 것을
꽃을 피운 것은
무슨 그리움 같은 거
무슨 배고픔 같은 거

어두운 땅 속에서
햇살을 그리는 마음이
바람에 살이 닿고 싶어
몸을 흔들어 대던 그 마음이
해마다 꽃으로 피어난다는 것을

아, 가난한 실뿌리를 가진 나는 알겠다
가난한 땅에서 자라는 꽃들이
더 멀리 뿌리를 내린다는 것을


-시 '결핍' 전문

나를 닮아서인지 학교에도 2% 부족한 아이들이 있다. 작년에는 담임을 맡은 34명 중 13명이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었다. 화초에 물을 주듯이 나름대로 사랑을 쏟아 붓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제 방식으로 그 부족한 사랑에 반응하면서도 늘 2%가 부족하다. 초기의 결핍이 너무 컸던 탓이리라.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 역시 2%가 부족하다보니 다 큰 어른이 되어 볼썽사납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와 말을 놓고 지내는 두 아이가 있다. 나야 제 선생이니 말을 놓는 것이 당연하지만 언제부턴가 녀석들도 덩달아 말을 놓아버린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거 이렇게 쓰면 돼?” “나, 잘 했지?”


교사와 학생 사이라기보다는 영락없이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아니,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고맙고 반갑다. 그만큼 나를 따르고 내게 마음을 주고 있다는 증표가 아니겠는가. 물론 그것이 나 혼자만의 즐거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두 아이와 나 사이에 작은 사건이 있었다. 학교에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부랴부랴 도서관을 청소하고 있었을 때였다. 마침 두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으로 책을 빌리러 왔다. 반가운 마음에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다 말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가 오늘 이쁜 짓 좀 할래? 밀걸레로 바닥 좀 닦아주면 고맙겠는데.”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 번 더 똑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내 말을 못 들었다는 알리바이라도 만들려는 듯 책장에 더욱 눈을 가까이 대고 있거나 서로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얄밉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을 향해 다시 한 번 이렇게 소리쳤다.

“애들아, 오늘 선생님 무지 바쁘거든. 선생님 좀 도와주지 않을래?”

잠시 후, 도서관에 있던 다른 한 아이가 마음을 바꾼 듯 계면쩍은 웃음을 흘리며 책장에서 몸을 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을 때까지도 두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내버려둘까 하다가 뭔가 아쉽기도 하고 은근히 화가 치밀기도 해서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이렇게 다그쳤다.

“너희들 조금 귀찮다고 그동안 선생님과의 인간관계를 끊겠다 이거지? 좋아 마음대로 해. 지금 밀걸레를 들고 안 올 거면 내일부터 선생님 아는 체도 하지 마.”

그렇게 말을 해놓고 내심 이 정도면 되었겠지 싶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두 아이가 대화를 멈추고 청소상자 있는 쪽을 향해 가는가 싶었는데 그길로 그대로 도서관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나는 당장 뛰어나가 혼을 내주고도 싶었지만 선뜻 그럴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의 행동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다른 아이들도 아니고 그렇게 친하고 허물없이 지내던 아이들이었는데…

쓸쓸하고 허망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집에 당도해보니 문을 열어주는 아내의 안색이 나빠 보였다. 오랜 지병인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아내의 건강도 늘 2%가 부족하다. 아내는 파리한 낯빛으로 간신이 입을 떼어 내게 말했다.

“여보, 미안해. 나 죽 좀 끓여 줄 거야?”

쌀죽을 끓이면서 줄곧 두 아이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나는 평소와는 달리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죽을 끓일 수가 있었다. 약한 불에 다섯 번도 넘게 끓이고 한 번 더 물을 부었다. 그러자 다시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뜨거운 물에 쌀의 몸피가 터지면서 단단하던 경계가 허물어지고 물과 섞이어 죽이 되는 지루한 여정이 끝이 났다.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런 깨달음이 왔다.

‘보석 같은 쌀도 화탕지옥에 다녀와서야 비로소 밥 구실을 할 수 있구나! 그런데 아내는 그 밥조차 소화할 능력이 없어 더 부드럽고 더 짓이겨진 쌀죽을 나에게 요구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두 아이도….’

학교에는 약한 불에 다섯 번을 끓이고도 한 번 더 물을 부어 부드러운 죽으로 만들어서 먹여야 비로소 소화를 시키는 아이들이 있다. 그것은 아이들의 소화기능의 문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욱이 아무리 교사와 인간관계가 좋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선뜻하겠다고 나서기는 쉽지 않을 터.

내가 여러 차례 부탁을 했는데도 매정하게 외면하고 도서관을 나가버린 것은 아이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다만, 2%가 부족한 것일 뿐. 부족한 것을 채워주기 위해 학교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로 인해 애간장이 다 탄다고 해도 그것은 분명히 교사의 일이다. 그걸 깜빡 잊곤 하는 것이 탈이지만 말이다.

다음날 나는 두 아이를 만났다. 우린 5분가량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에 서로 화해의 의미로 손을 잡고 환히 웃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오고간 말이 이랬다.

“선생님이 너희들 사랑하는 거 알아 몰라?”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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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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