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태안 마애불, 항해 안전기원 용도였다"

계명대 노중국 교수 '서산지역의 백제문화' 논문에서 주장

등록 2004.12.16 00:51수정 2004.12.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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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애삼존불상(자료사진)
서산마애삼존불상(자료사진)안서순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국부84호)과 최근 국보307호로 지정된 태안마애삼존불이 당시 대외무역시 내륙왕래 안전과 해상교통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간 서산과 태안의 마애불에 대해 그 조성 배경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대두되었으나 학계의 전문가에 의해 이런 주장이 공식적으로 제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주장은 16일 노중국 교수(계명대 사학과)가 충남 서산문화원이 주최하고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가 주관한 '서산지역의 백제문화'라는 학술회의에서 발표할 예정인 연구논문에 들어 있다.

노 교수는 논문을 통해 "태안의 마애불이 당시 당나라를 오가던 서해 해상교통로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백화산(284m)중턱에 위치해 있고 서산 마애불은 태안과 당진방면에서 도읍지로 가던 통로 역할을 한 내륙지역에 조성되어 있는데다 두 마애삼존불 모두에 안전을 기원하는 관음보살이 배치돼 있는 점 등을 볼 때 안전항해와 내륙교통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 틀림없다"고 밝히고 있다.

간월암의 성산 암주스님은 "관음보살은 중생의 괴로움을 해결해 준다는 보살이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의 고통도 해결해 준다는 능력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또 "서산과태안의 마애불은 만든 불상의 형태 등을 관찰할 때 6세기말에서 7세기초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나 기법이나 구도 상으로 볼 때 만든 주체가 각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서산 마애불은 불교의 도형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조각솜씨가 매우 뛰어난 것을 볼 때 이를 만든 주체는 경전에 밝은 사람들로 왕실이나 중앙의 유력한 귀족에 의해 솜씨가 뛰어난 파견된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태안마애삼존불상(자료사진)
태안마애삼존불상(자료사진)안서순
이에 반해 "태안 마애불은 불교경전이나 교리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서산마애불에 비해 세련미와 형식미가 갖춰지지 않는 등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지 않은 것 등을 보면 대외교역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지역 세력들이 지역에서 활동한 장인에 의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노교수는 "태안과 서산에 마애삼존불이 조성된 것은 그 당시 이 지역(태안, 서산, 당진)이 대당무역의 중심지이었다는 것이 입증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 백제시대에 미륵불이 등장하는 것은 그 시대 청소년들 사이에 '미륵신앙'이 유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서산마매삼존불의 협시불로 '미륵반가상'이 등장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 지역이 백제시대 청소년들의 무예와 정신을 단련, 이 땅을 미륵의 세상을 이룩할 수 있도록 심신을 다지던 장소중의 하나로 여겨진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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