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로 만난 어느 독자에게 띄우는 글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60) 독약과 채찍을 받고서

등록 2004.12.19 00:03수정 2004.12.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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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를 받은 설레는 마음


행복한 전도사님께

성탄일이 가까운 겨울밤입니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님과 서울에 있는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혈육간의 근원적인 사랑을 노래한 김종길 님의 <성탄제>를 흥얼거려봅니다.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
……………


아직 성탄제 날까지는 닷새나 남았지만 올 겨울은 이상 고온 현상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답장이 늦어 죄송합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전도사님께서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 횡성 안흥으로 보내지 않고, 서울 제 집으로 우송했기에 늦었습니다. 지난 월말에야 오랜만에 아이들이 내려오면서 그동안에 쌓인 우편물을 가지고 온 곳에 전도사님의 우체국 택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깨 통증으로, 신간 준비로, 한 방송국과 광복 60주년 특집 다큐맨터리 제작 일로 조금 바빴습니다.

행복한 전도사님께서 베이징에서 구한 귀한 차에다가 샛노란 편지지에 담아 보낸 편지를, 마치 청소년 시절 좋아했던 연인에게 받은 러브레터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보내주신 그윽한 차는 요즘 잘 마시고 있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소서

제가 글을 쓴 뒤로 여러분에게 많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들은 저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 제가 오늘까지 글을 쓸 수 있었던 견인차였습니다.

지난 8월 28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하느님! 감사합니다'기사에 올린 행복한 전도사님 올린 댓글은 저에게 더욱 진솔한 글을 쓰라는 계시와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나의 삶을, 말을, 행동을 죄다 보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사람이 아니면 하늘이라도 내려다 보겠지요.

안녕하세요!
조회수:158 , 추천:3, 반대:0 행복한 전도사(umax11), 2004/08/29 오후 8:18:21

1989년, 꿈 많은 문학 소년이었던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서 쓰신 "비어 있는 자리"란 에세이집은 여러모로 제게 적잖은 감동을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 내용 중 당시 존경하던 저의 학교(우신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던 우정 나동성 선생님에 대한 글을 읽고, 반갑고도 뿌듯했던 마음에 책을 쓰신 저자께 소년적인 호감(?)이 들어, 편지라도 쓸까하는 마음에 설렜던 기억도 있습니다.

a 필자의 첫 작품집인 <비어 있는 자리>

필자의 첫 작품집인 <비어 있는 자리> ⓒ 박도

우연히 선생님의 기사를 보고, 기사 밑의 약력에 교편을 잡으셨다는 소개를 보고 지금도 제 책장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책의 저자일 것 같다는 확신에 반가움 앞세워 이렇게 무턱대고 인사 글을 씁니다. 이제 교단에서 떠나셨다지만, 세상에서 선생님의 글과 삶으로 더 큰 교육의 길을 가실 줄 믿습니다.

책의 첫 장을 열면 나오는 선생님 사진속의 모습도, 이젠 15년의 세월이 더하여 계시겠다 싶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건승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저도 비록 한 권의 책을 통해서이지만, 선생님께 영향을 받은 넓은 의미의 제자입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행복한 전도사님은 다 알고 있겠지만, 저는 그 책이 처녀 작품집으로 "교육자가 그 사회에서 최대의 존경을 받지 못하면 그 사회는 이미 썩은 사회가 아니면 썩어가는 사회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사들까지도 자가용 출퇴근으로, 학생들의 학습 공간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글을 썼다가 동료 교사들에게 거북한 소리도 들었고, 교실(학교)의 민주화가 되지 않고서는 그 나라의 민주주의가 되지 않는다는 말도 하였습니다.

그 말에 제 스스로 족쇄가 되어 아직도 저는 운전면허증도 없습니다. 저 자신 학교사회에 30여 년 몸담아 왔기에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만 우리 교육계는 자본에 너무 찌들어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방과 후 학생들을 거의 강제로 붙잡아 두고 돈을 받는 나라는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돈 받는 것을 쭈뼛쭈뼛하더니 이제는 아주 당연시하고 학부모마저도 그렇게 하는 학교를 열성 있는 학교요, 교사로 여기고 있습니다.

교실의 민주화도, 학교의 민주화도 아직은 멀었습니다. 가장 큰 일은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며, 그 잘못에 대해 참회하지 않는 점입니다. 시험에 부정을 하고서도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여기는 태도입니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그 책임은 모두 기성세대에게 있습니다. 대통령을 한 게 부끄럽다고 눈물을 질금거리는 것을 본 아이들이 그 누구를 존경하고 따르겠습니까? 그런데 기성세대는 나만은 예외라고 서로 상대방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높은 곳에 계신 분이 볼 때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이지요.

그러나 저는 우리나라의 앞날을 낙관하고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 적은 수이지만 깨어있는 젊은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언젠가는 이긴다는 하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산학교를 세우신 남강 이승훈 선생이 제자들에게 교사, 목사, 변호사, 의사가 되라고 했답니다. 이 네 사람만 바르면 빼앗긴 나라도 찾을 수 있고, 다시 찾은 나라도 일으킬 수 있다고.

어쩐지 행복한 전도사님은 훌륭한 목회자로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이 ‧ 상 ‧ 찬'이라는 이름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늘 낮은 곳에서 빛과 소금이 되소서.

향이 무척이나 좋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차를 마시다가, 찻물을 비운 찻잔에 가득히 남은 차향을 맡으면서 문득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인생을 비워가면서 그 비운 자리에 오히려 향기를 채워 감동과 여운을 전하시는 선생님의 삶이 꼭 향기로운 찻잔의 모습 같아 보였습니다. ……

행복한 전도사님이 주신 과찬의 말씀을 저는 독약과 채찍으로 여기며, 더 진솔한 글을 쓰는데 제 남은 삶을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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