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갠 장작 가득하니 부자 안부럽네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62] 겨울 이야기 (1)

등록 2004.12.26 23:18수정 2004.12.2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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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늘어난 전기 요금


a 바람을 막고자 창문을 온통 비닐로 덮었다.

바람을 막고자 창문을 온통 비닐로 덮었다. ⓒ 박도

전기계량기 검침원이 돌아가면서 일부러 주인을 찾고는 지난 달 전기 사용량이 부쩍 늘었다고 하였다. 내가 어느 정도 늘어났느냐고 물었더니 내달에는 약 7만원 정도의 전기 값이 나오겠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전기 사용 확인 겸, 전기 사용이 부쩍 늘어난 데 대한 경고와 아울러 혹이나 나중에 고지서가 나온 뒤의 말썽을 대비한 듯하였다.

나는 잘 알았다고 그를 돌려보낸 뒤 아내에게 예사 달의 전기 요금을 물었더니 2만원 남짓했다고 하였다. 이렇게 갑자기 전기 요금이 불어난 것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내 글방에 전기 난방을 한 탓이었다.

날이 차가워진 뒤로 전기 패널에 전기난로까지 사용하였으니 전기 사용량이 부쩍 늘어났나 보다. 아내는 그 정도는 괜찮다고 계속해서 쓰라고 하였지만 나는 그 날부터 아래채 글방 사용을 중단하고 안채 거실로 컴퓨터를 옮겼다.

에너지 사용량과 문화생활과는 정비례라고 하지만, 나는 이 시대에 과도한 에너지 사용은 자연환경에 크나큰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전기 에너지 생산의 대부분은 화력발전이나 원자력발전으로 하는데, 이 모두가 환경을 크게 오염시킨다고 한다.


몇 해 전, 삼척에 갔더니 온 시가지에 원전 반대 플래카드가 나붙었고, 고성지방에 가도 그랬다. 또 연전에는 부안지방에 핵폐기물(원전 수거물)을 저장한다는 데 대해 주민들의 반대로 온 나라가 큰 몸살을 앓았다. 당국에서는 원전이 안전하다고 하지만, 아무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할수록 지구 환경에는 좋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집의 에너지 절약은 좀 심할 정도였다. 한여름 삼복더위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지냈고, 서울 한복판 종로구에 살았으면서도 1990년 중반까지 연탄을 썼으며, 컬러 TV도 딸아이가 대입 교육방송을 본다고 하여 1990년 중반에야 들여놓았다.


a 집 뒤꼍조차 비닐로 뒤덮었다.

집 뒤꼍조차 비닐로 뒤덮었다. ⓒ 박도

그런데도 TV 시청료가 매번 나와서 이의를 제기하자 내 집까지 실사를 하고도 그래도 못 미더워 옆집에 가서 다시 확인하고서 면제를 해 줬다. 그러고도 몇 달 후에는 슬그머니 고지가 나와서 동회로 가서 번번이 따지기도 성가셔서 나중에는 흑백 TV를 보면서도 시청료를 꼬박꼬박 물었다.

지금 우리 내외가 살고 있는 안흥 집은 온통 비닐로 뒤덮였다. 그런데도 서울에 사는 친지가 와서 하룻밤 묵고는 추워서 혼났다고 그 새 콜록거렸다. 우리 내외는 추위나 더위에 내성이 있는가 보다.

‘욘사마’ 열풍의 까닭

내가 교사생활을 하는 동안 에너지 사용 면에서는 학생들에게 무척 잔소리를 많이 하였다. 학생들은 환한 대낮에도 전등을 켜고, 심지어 3, 4월에도 체육시간 뒤에는 선풍기를 켰다. 요즘 학교 교실에는 선풍기는 물론 에어컨 시설은 대부분 갖췄다.

누구네 집 아이 없이 날씨가 조금만 더워도 선풍기 에어컨을 모두 켠다. 넓은 교실에 한두 사람이 있을 때도 선풍기도 에어컨도 모두 켜놓기 일쑤다. 더위나 추위에 대한 인내력이 없다. 그 때문인지 조그마한 어려움에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짙어가고 있다. 어떤 일이나 학습에 대한 지구력도 점차 떨어지는 듯하다.

나는 학생들에게 에너지를 만드는 원료는 거의 수입품이고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일장 잔소리를 한 뒤 내 수업 시간만은 삼복염천이 아닌 한 에어컨을 못 켜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들 중에는 내가 몹시 짜증나는 골동품으로 여겼지 싶다.

스위스 취리히에 갔을 때다. 저녁식사 뒤 밤거리에 산책을 나가자 도로 한가운데만 가로등이 있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 그런다고 했다. 그 흔한 네온도 거리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그 나라에서 네온 사용은 병원과 약국뿐이라고 했다.

스위스는 환경을 위해 화력발전도 원자력 발전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웃 독일은 지붕에 유리창문을 만들어 자연 조명과 환기로 에너지를 절약했다. 그 무렵 두 나라 다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몇 곱 많은데도 에너지 절약은 매우 철저했다.

글방을 안채로 옮기자 아내와 하루 종일 같이 지내게 되니 서로 불편하다. 옛 어른들은 “남자들은 그저 아침 한 술 먹은 뒤에는 나갔다가 해거름 때 들어와야 한다”고 그랬다.

a 옆집 작은 노씨 노진한 김인순 부부

옆집 작은 노씨 노진한 김인순 부부 ⓒ 박도

나는 골똘히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자판을 두드리는데 아내가 옆에서 궁싯거리면 산란해지고, 아내 역시 여기저기 책을 잔뜩 벌려놓고 하루 종일 쪼그리고 있는 남편을 보면 짜증나고 불편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얘기일 테다.

이런 내 처지를 알기나 한 듯, 옆집 작은 노씨가 경운기에다가 나무를 가득 싣고 내 집 마당에 내려놓고 전기톱까지 가지고 와서 토막토막 잘라주고 갔다.

사람의 생각과 부러운 것도 주어진 처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나 보다. 광주 보병학교 시절에는 취사병이 마냥 부럽더니 요즘 내가 부러운 것은 뉘 집에 갔을 때 처마 밑이나 헛간에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두거나 거실에 벽난로가 있는 집이다.

얼마 전, 한 화가의 작업실을 둘러보자 흙과 돌로 빚어 만든 벽난로가 정감 있어 보였다. 아내에게 그 얘기를 하였더니 지금 사는 집은 공간이 좁아서 만들 수 없고 언젠가 우리 집을 지을 때 만들어보자고 한다. 그런데 그날이 언제일는지.

오늘은 아침에 글밭을 갈다가 운동 겸해 마당에서 장작을 빠개는데 앞집 큰 노씨가 왔다. “백묵만 잡은 줄 알았더니 장작도 잘 팬다”고 인사하면서, 장작을 더 잘 빠개는 요령을 일러주었다. 나무둥치가 언 것이 더 잘 빠개지고, 나무의 결을 보고 도끼질을 해야 힘이 덜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자는 자고로 도끼질을 잘 해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나무에 섣불리 도끼질하면 빠개지기는커녕 오히려 나무가 튀어서 다친다고 하면서, 도끼질을 할 때는 정통으로 야무지게 해야지 장작이 쉽게 잘 빠개진다고 했다.

a 장작을 도끼로 빠개고 있다.

장작을 도끼로 빠개고 있다. ⓒ 박도

곧 남자가 여자를 다룰 때도 무딘 도끼로 시원찮게 찍으면 여자가 튀어버린다면서, 야무지게 정곡을 '콱' 찍어야 부부가 해로하며 금실이 좋다고 체험에서 우러난 말을 했다.

그러면서 요즘 일본여자들이 ‘욘사마’인지 ‘용사마’인지 난리치는 것도, 일본 사내놈들의 도끼질이 시원찮아서 그런 모양이라고 당신 나름대로 일방적인 해석을 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라, 나도 연전에 일본여행 중에 들은 얘기를 했다. 일본남자들은 어떻게나 쩨쩨한지 심지어 연인과 러브호텔에 들어갈 때도 방값을 절반씩 각자부담(와리깡)한다고 했다.

그래서 일본여자들이 왜소한 일본남자들에게 염증을 느낀 나머지, 남편감이 아닌 애인으로는 기분파 한국 남자들이 더 매력적이라서 열광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목소리

한 경운기 나무면 한 보름 군불을 지필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써 나무를 해온 노씨에게 산에서 나무한 게 잘못이 아니냐고 염려를 했더니, 요즘은 나무하는 사람이 없어서 산마다 나무가 지천으로, 오히려 적당히 나무를 베어 줘야 나무들이 더 잘 자란다고 아무 걱정 말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두메산골도 대부분 기름보일러 난방 아니면 심야 전기보일러 난방으로 나무를 때는 집은 드물었다. 며칠 전 TV를 보자 산에다 나무를 심어놓기만 하고, 자주 간벌을 하지 않아서 산의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죽어간다고 했다. 이따금 가지치기도 해 주고 마른 나무는 베어 주는 게 더 좋다고 한다.

오전 내내 도끼질하니 마당에 가득 찼다. 지난날에는 겨울준비로 장작 한 바리와 쌀 한 가마니 들여놓으면 부자 부럽지 않다고 했다. 빠개놓은 장작이 마당에 가득하니까 우리 집도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그러면서 언젠가 내 집을 지어 거실 한구석에다가 벽난로를 만들어 놓고 그 옆에다 책상을 두고 자판을 두드릴 그 날을 그려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신나게 자판을 두드리는데 아내가 목욕 가겠다면서 나서기에 나도 따라 나섰다.

안흥 장터 목욕탕은 장날만 문을 열기에 조금 떨어진 코레스코 대중탕으로 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쓰던 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수증기 사이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내가 저승에서도 네 글 잘 읽고 있다. 나는 네가 어떻게 살아온 것을 환히 알고 있다만, 이 강원도 두메산골에 와서 좋은 집 짓고 넓은 거실에서 잘난 사람들 얘기를 쓴다면 누가 그 글을 감명 깊게 읽어주겠니.

안흥 산골사람조차도 네가 서울 학교에 있으면서 부도덕하게 치부한 뒤 이 산골에 와서 호화 생활하면서 여생을 즐긴다고 손가락질할 거다.”


a 제 도끼 날을 보세요.

제 도끼 날을 보세요. ⓒ 박도

아버지는 늘 그러셨다. 내가 할아버지 재산을 다 지니고 있었다면 교사도 작가도 되지 않았을 것이고, 설사 작가가 되어도 가진 사람의 처지에서 글을 쓸 거라고.

아버지 생전에는 그 말씀이 당신이 재산을 흩어버린 변명으로 무척 듣기 싫었는데, 이제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되어 다시 곰곰 되씹어 보니까 일리 있는 말씀으로 들려온다.

왜 아버지는 아무 때나 나타나서 나를 울릴까? 아마도 나는 청개구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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