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도 '특별상'도 아닙니다

[2004 나만의 특종] 한 장 사진에 담긴 '탄핵정국'의 모든 것

등록 2004.12.22 09:48수정 2004.12.2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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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용히 상념에 잠깁니다. 오늘이 벌써 12월 22일입니다. 이맘때면 사람들은 곧잘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올해도 다사다난한 한해였어'라고 말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네요. '2004 나만의 특종'이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나만의 특종'을 찾아 나섭니다.


저는 2004년 1월 6일에 처음으로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렸습니다. 제목은 '그가 이웃집 아저씨였다니'입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누구냐고요. 바로 민주노동당 권영길 국회의원입니다.

저는 그분을 동네 목욕탕에서 만났습니다. 그분은 우리 동네에 살고 있거든요. 그때의 느낌을 쓴 글이 바로 '그가 이웃집 아저씨였다니'입니다. 이후 저는 <오마이뉴스>에 70여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지난 11월에는 '특별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특별상'이 제게는 뜻밖이었습니다. 저는 법원경매공고를 개선하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직장협의회의 주장을 <오마이뉴스>에 올린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특별상'까지 주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그럼 '특별상'이 '나만의 특종'이냐고요. 글쎄요?

지난 9월 23일이었습니다. 저는 이날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공무원생활 17년만에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겁니다.

아파트 당첨이 뭐 대단하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저는 아닙니다. 우리 가족 모두의 희생이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아내의 근검절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물론 아내의 내핍생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이제 겨우 중도금을 2회밖에 납부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럼 '아파트 당첨'이 '나만의 특종'이냐고요. 글쎄요?

지난 3월 12일이었습니다. 이날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전국에서 '탄핵무효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3월 20일입니다. 그 날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도 탄핵무효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우리 가족도 기꺼이 촛불집회에 참가했습니다. 그 날의 기록을 저는 <오마이뉴스>에 올렸습니다. 3월 21일입니다. 제목이 '300명이 적다고? 이 정도면 됐어'입니다.


저는 그 날 한 시민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행한 '시민 발언대'에서의 열변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주 토요일에 광화문을 다녀왔습니다. 87년 9월, 그때도 저는 광화문에 갔었습니다. 그때의 스물 여덟 살 청년이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 땅에는 어둠이 머물고 있습니다. 87년 그때는 손에 화염병을 들었었지만 지난 토요일에는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누구를 죽이려는 마음으로 광화문에 갔었지만 지난 토요일에는 대통령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창원 시민 여러분, 이제 우리 함께 동참합시다. 모두 물러가라! 모두 물러가라!"

a 제 딸 산하의 사진입니다. 가슴에 달린 검은 리본이 눈길을 끕니다.

제 딸 산하의 사진입니다. 가슴에 달린 검은 리본이 눈길을 끕니다. ⓒ 박희우

그렇습니다. 바로 '탄핵무효 촛불집회' 참가가 '2004 나만의 특종'입니다. 저는 사진첩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냅니다. 이 한 장의 사진 속에 '탄핵정국'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이 바로 제 딸 '산하'입니다. 지금 산하는 일곱 살입니다. 저는 제 딸 산하에게 이 사진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딸 산하에게 이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내 딸 산하야, 우리 가족은 이날 역사의 현장에 있었단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아빠는 공무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집회장소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단다. 아빠는 촛불도 들지 못했고, 큰소리로 탄핵무효를 외치지도 못했단다. 그러나 네 엄마와 언니와 산하는 아니었단다. 아빠의 비겁함을 용서받기라도 하려는 듯 목이 터져라 탄핵무효를 외쳤단다. 내 딸 산하야, 그때를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하는구나. 아빠의 유약함을 용서하거라, 내 딸 산하야!"

그렇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행동하는 시민'이 되었습니다. '행동하는 공무원'이 되었고요. 정말 한해가 저무는가 봅니다. <오마이뉴스> 가족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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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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