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갈비집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나 먹는 일보다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입술이 더 바빴습니다.김형태
우리가 만난 갈비집 2층은 마치 이산가족 상봉 장소 같았습니다.
"너 순애 맞지?"
"그래, 내 이름을 기억하는구나!"
서로들 반가움에 체통도, 위신도 집어던지고 악수하고 부둥켜안고…. 시장통을 방불케 했습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지만, 대부분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거의 변하지 않은 얼굴도 있었고, 어린 시절의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고, 그러나 몇 명은 정말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였던 우리들이 갑자기 중년의 어른이 되어 만나니, 말을 놓아야 하는지, 높여야 하는지 어색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골뜨기 코흘리개들이 23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어느새 신사 숙녀, 아니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만난 것입니다.
처음에는 명함을 주고받으며, 어디 사느냐, 무엇을 하느냐, 애는 몇이냐, 안부 묻기에 바빴습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서 종로경찰서장 역할을 했다는 봉기, 공부 잘했던 명중이는 최고 명문대를 나와 공인회계사를 하고 있었고, 원개는 전공을 살려 도서관에 근무하고 있었고, 나처럼 교편을 잡은 친구들도 몇 명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자영업을 하는 친구, 의사, 공무원, 회사원, 전업주부…. 모두들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일들을 하며 꿋꿋이 이 나라를 떠받드는 기둥이 되어 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