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15회(3부 : 라일락 꽃향기)

-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5.01.03 09:05수정 2005.01.0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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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편지를 받아보면서 '이 사람은 좀 다르구나' 하고 여겨지더란다. 네 번째 편지를 받고는 발신인이 누구인가 궁금해서 나름대로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더란다. 다만 어렴풋이 '같은 과 사람이 아닐까?' 그 정도만 짐작이 갔단다.


마지막 편지를 받고 나라는 것을 확실히 안 그녀는 오랜 생각 끝에 몇몇 사람들을 통해 나에 대해 알아본 모양이다. 그 결과 적어도 장난질은 아닌 것 같은 판단이 서서 일단은 나를 만나보기로 했단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 저녁, 자기도 다음날 나와 만난 일이 기대되어 어떤 옷을 입고 갈까 고민을 하다 몇 벌 안 되는 옷이지만 죄다 꺼내놓고 거울 앞에서 차례차례 입어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초희 학생, 빨리 전화 받아봐! 천안 집에서 전화가 왔어!"

하숙집 주인아주머니의 다급한 말에 부리나케 달려가 전화를 받았더니, 그 동안 편찮으셨던 할머니께서 저녁 무렵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으니 빨리 오라는 소식이었단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눈물바람에 경황없어 하는데 연산에 사는 삼촌(작은 아버지를 그녀는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이 택시를 타고 하숙집까지 왔더란다.

그래서 삼촌네 식구들과 함께 그 택시 편으로 천안까지 갔다고 했다. 천안에 도착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와의 약속이 생각났단다. 얼른 하숙집으로 전화하여 영희를 찾았으나 그녀도 그 날은 시골집에 내려갔는지 없더란다. 내게 연락을 주고 싶었으나, 자취하고 있는 안집 전화번호도 모르고, 다음날 학교로 연락을 하자니 토요일이라 수업이 없고, 그렇다고 장례식 도중 빠져 나올 수도 없고‥‥‥,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단다.


연산의 선산에 할머니를 모시고, 하루쯤 더 있다가 가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꼭 들어야 하는 수업이 있다며 월요일 아침 첫차를 타고 대전으로 왔단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백방으로 나를 찾았으나 없었단다. 화요일도, 수요일도. 3일 동안이나 내가 보이지 않자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오늘은 주소를 들고 아예 나의 자취집을 찾아보기로 했었단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나의 자취집을 찾아가 보니, 내가 학교에 가고 없다고 우리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더란다. 내가 학교에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다소 안심이 된 그녀는 하숙집으로 돌아가 늦게 점심을 먹고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피곤해 책상에 엎드려 있는 다는 것이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단다.


눈을 떠보니 2시 30분. 잰걸음으로 학교에 와보니 벌써 A반 수업이 시작되었더란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는 대로 201 강의실로 가봤으나 한발 늦었는지 내 모습은 보이지 않더란다. 그 시각 나는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정말 이럴 수가 있는가? 나는 '터널 끝, 별천지 시작' 아니, '구원'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경우에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나보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순식간에 희망의 도가니로 빠져버렸으니, 실로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만난 기쁨이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 함께 농과대학 쪽으로 나있는 길을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확신대로 그녀는 예전의 그 연산 소녀가 맞았다. 그녀는 내가 몹시 궁금해 하자 지나간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연산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대학병원 의사로 일하게 되면서 부모님을 따라 대전에 오게 되었고 문화동에 터를 잡아 줄곧 거기에서 자랐단다. 연산에는 여전히 할머니와 삼촌네 식구들이 살고 있어 가끔 주말을 이용해 다녀오곤 했단다.

그때 내가 우연히 그녀를 본 것이었다. 그녀가 시내버스를 타고 동중 앞에서 내린 것은 그 동네에 고모집이 있어서였단다. 그 날도 아마 할머니의 심부름 차 고모 집에 들렀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거기서 그녀를 주야장천 기다렸으니.'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여고 2학년이던 초여름 무렵, 할머니가 허리를 심하게 다쳐 그녀의 아버지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병원에 한 달 넘게 입원했었단다. 퇴원하고도 계속해서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할머니는 시골로 내려가지를 못하시고 그녀의 집인 문화동에서 쭉 같이 살았단다.

이렇게 할머니가 대전으로 오시면서 그녀는 연산에 갈 일이 없어졌단다. 왜냐하면 이제는 오히려 삼촌네 식구들이 할머니를 뵙기 위해 대전을 다녀갔기 때문이었다. '아, 그래서 고 2 때 5월 인가부터는 그녀를 볼 수 없었구나.' 고교시절에 품었던 의문이 그녀의 입을 통해 모두 풀렸다.

내가 왜 그럼 부모님은 지금 천안에 살고 계시냐는 질문에 그녀는 자기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천안에 조그맣게 개인병원을 냈다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과 할머님은 천안으로 가시고, 자기는 고모네에서 자꾸 있으라고 해서 얼마간 있다가 아무래도 불편한 것 같아 아버지에게 말씀드려서 하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그녀와 나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 새 그녀의 하숙집 앞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잠깐만 있으라고 말해 놓고는 구멍가게로 얼른 뛰어 들어가 자두 맛 알사탕 두 개를 사왔다. 그리고는

"사탕처럼 달콤하게 사귑시다!"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손을 입에 살짝 가져다 대고는 말없이 웃었다. 예전의 고교시절 시외버스 안에서의 미소 그대로였다. 웃음 짓는 그녀의 복숭아 빛 얼굴이 달빛을 받아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스테파네트 아가씨처럼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알사탕을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사탕이 꿀보다 더 달았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얘기를 주고받고도 아쉬움이 남아 거기에서 또 한참동안 달무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야기꽃을 피웠다. 생각할수록 가슴 벅찬 밤이었다.


이즈음의 일을 내 <사랑일기>는 이렇게 적고 있었다.


만 남

호수 위에 백조가 저토록 우아한 것은
물밑의 헤아릴 수 없는 발길질 때문이요
한 모금의 꿀을 달게 맛볼 수 있는 것은
몇 천 번의 일벌의 왕복비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드디어 내가 너를 만난 것도
내 청춘을 다 바쳐
그리움의 탑을 쌓은 덕분일까?

오, 기도의 순애(殉愛)!


첫 데이트

단둘이 시간을 마련한 것은 처음인 그 날
나는 나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를
모두 벗어 보여 주었다
자랑뿐만 아니라 부끄러운 사실까지도

너를 만나면 너무 떨려 말을 못할 것 같았는데
뜻밖의 편안함에 제동장치가 고장 난 레코드처럼
나의 입술은 땀 흘리며 계속 돌아갔고
너는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두 귀를 내 눈빛에 고정시켰다

도대체 몇 시간을 그렇게 얘기한 거니?
그럼에도 돌아설 때는
나는 할 말이 너무 남아 아쉬웠고
너는 들을 말이 너무 많아 서운해 했다

하루해가 그렇게 짧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는 날이었다


연서(戀書) 2

하얗게 지샌 밤을
속달우편으로 실어 보내고
복음(福音)이 들려오기만을 가슴 졸이며
기린보다 더 긴 목으로 시간을 재촉한다
일과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와
우체통에 손부터 집어넣는다.
아무 것도 없을 때의 그 허망함과
답장의 편지가 만져졌을 때의 그 뛸 듯한 기쁨
사랑할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태평양 밑바닥과 에베레스트 산정을 오르내린다


연서 4

오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의 기다림은 우체통처럼 열려 있다
자전거 소리만 들리면
그냥 내닫는 나의 눈빛

분명
틀림없이 답장이 올 텐데
어찌하여 이리 더딜까?
하루가 다르게 길어져 가는 나의 목
그리고 까맣게 숯이 되어 타들어 가는 나의 가슴

편지 한 장에
이토록 내가 처절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니!
구겨지고 찢겨진 종잇조각처럼
자꾸만 허물어져 가는 나의 마음이
못내 안쓰럽다


연서 5

그로부터의 반가운 회신은
겨울나무에 내린 봄 햇살 그것이다
몇날 며칠 바싹 마른 나무에 물이 올라 화색이 돋고
마음은 종달새처럼 하늘로 날아올라
푸르게 푸르게 마냥 푸르게 색칠하고 있다
세상을 온통‥‥‥


* 16회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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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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