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싹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만뢰산 오르며 저무는 해를 돌아보다

등록 2004.12.31 00:00수정 2004.12.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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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 있다'는 속담이 있다. 원숭이 해인 2004년이 그랬다. 일부 노련한 술수의 정치 원숭이들이 그 속담을 반증이라도 시켜주듯, 총선이라는 나무를 곡예하듯 건너려다 내동댕이쳐지듯 그렇게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당연한 것처럼 거리낌없이 자행되던 일부 정치 행태가 관행의 나무에서 미끄럼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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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부터 자명종 역할을 해 주던 장닭의 '꼬끼오' 소리는 어둠 걷히고 희망의 날이 밝아옴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을유년 한해 이 장닭처럼 건강하고 힘찬 일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임윤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용케 매달려 있는, 꼭 떨어져야 할 원숭이들이 없는 건 아닌 듯싶다. 세밑까지는 그들조차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 꼴'이 되길 바라는 심보를 가졌으나 시간적으로 어려울 듯싶으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이다.

만뢰산 오르며 저무는 해 돌아보다

그런 심정 달래고 불끈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희망을 담기 위해 새해 소망을 기원하러 산엘 오른다. 매일 떠오르는 게 해지만 장관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3년의 적덕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국 방방곡곡에 해돋이 명소가 부지기수지만 정작 해맞이로 좋은 곳은 집에서 멀지 않은 산이나 바다가 제격일 듯싶다.

진천에는 신라명장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탄생지가 있다. 김유신 장군의 생가 터에서 산령 줄기를 1시간 남짓 따르면 멀지 않은 곳에 만뢰산(萬賴山)이 있다. 해발 612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탁 트인 전망이라 해맞이하기엔 제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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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실 좋은 장닭과 암탉이 만들어 낼 달걀엔 희망과 행복 그리고 살맛의 싹수가 들어있을 겁니다. 시대와 세월이 낳는 정치의 달걀 지도의 달걀엘 희망과 행복의 싹수가 담겨 있으면 좋겠습니다. ⓒ 임윤수

살아서는 최고의 길지라는 '생거진천', 김유신 장군의 태기가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모를 그 만뢰산을 오르며 저무는 해 돌아본다. 그리고 탁발하듯 새해 소원을 가슴에 담아본다.

잔나비 해가 저물며 닭의 해가 밝아온다. 많고 많은 가금류뿐 아니라 십이지(十二支)의 띠로 등장하는 많은 동물 중 닭은 유별나게 인간들과 그 관계가 밀접하다. 달걀을 낳아주고 살코기를 준다고 해서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 농경생활이라면 일상에서 닭과 인간의 관계가 그렇다. 닭들은 텃밭이나 헛간에 만들어진 우리나 둥지에 살면서 주인 댁 식구들과 어울려 사는 한울타리 운명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 시골에서 더 없는 자명종은 역시 아침에 울어주는 장닭의 길다란 '꼬끼오' 소리다. 어둑새벽에 들을 수 있는 장닭의 '꼬끼오' 소리는 달걀 낳은 암탉이 홰치며 울어대는 대낮의 그 '꼬꼬댁' 소리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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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낳은 달걀을 꾸러미로 엮었습니다. 열 개의 달걀 모두가 건강하고 튼실합니다. 하나의 달걀엔 희망 가득 또 하나엔 행복 가득, 그리고 나머지 것들엔 믿음, 소망, 질서, 존경, 정의, 사랑 등의 싹수가 가득 담겨 있을 겁니다. ⓒ 임윤수

제일 춥지만 긴 어둠이 걷히는 시간에 어김없이 높고도 맑은 소리로 울어댄다. 그러기에 장닭의 울음소리는 밝음이 시작된다는 신호며 조금씩 기온이 올라가는 승온의 개시점이다. 사람들은 한밤중이 제일 추울 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 번쯤 바깥에서 새벽녘을 맞아보면 장닭이 자명의 울음 울어줄 그 시간이 제일 춥다는 걸 알게 된다.

닭의 의미를 알고 닭의 울음소리가 뜻하는 걸 알기에 새해엔 더 없는 기대감을 갖는다. 장닭의 울음소리로 아침이 열리면 밝음과 따스함이 온다. 그리고 머지않아 암탉이 홰치며 '꼬꼬댁'거려 달걀 낳았음을 알려줄 테니, 그 알이 가져다줄 기쁨이 이만저만 기대되는 게 아니다.

'싸가지 있는' 병아리가 나오는 달걀

닭의 해에 꼭 얻고 싶은 시대와 세월의 달걀이 있다. 그 달걀은 황금알도 아니고 도깨비 방망이를 패러디해 뭔가가 뚝딱 쏟아지는 요술 달걀도 아니다.

그냥 싸가지 있는 노란 병아리를 부화시킬 수 있는 알이면 된다. 싸가지 있는 병아리라고 하니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병아리 중에도 분명 싸가지 있는 놈과 없는 놈들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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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품고 있는 달걀이 싹수있는 유정란이면 부화되는 병아리도 분명 싹수가 있을 겁니다. 결국 싸가지 있는 장닭과 암탉의 솔선이 싸가지 있는 병아리를 담보합니다. ⓒ 임윤수

요즘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엘 가면 여기저기서 탄식처럼 '요즘 애들 싸가지(싹수) 없다'라는 말들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가끔은 눈살 찌푸리도록 정말 싸가지 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는 청소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벌건 대낮에 버젓이 교복을 입은 채 빠끔 담배를 피우는 애들이 있는가 하면 술에 취해 벌건 눈으로 시비를 걸 듯 쏘아보는 애들도 있으니 말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뭔가를 잘못해 간혹 타이르거나 꾸중이라도 하려면 말을 듣기는커녕 금방 달려들어 주먹이라도 휘두를 듯 험상궂은 표정을 짓거나 욕설을 해대는, 경우 없는 애들도 있다.

별 죄의식 없이 재미나 장난 삼아 또는 뭔가를 채우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물건을 갈취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애들도 더러는 있다. 이러한 행동이 우리가 말하는 윤리적 기준과 사회적 규범에서 싸가지 없는 범주에 속한다면 이들은 분명 싸가지 없는 애들이다.

급기야 작금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성폭력 집단으로까지 청소년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좀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른들이 말하는 싸가지 없는 아이들은 싸가지 있는 아이들에 비하면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얀 백지에 떨친 빨간 잉크 한 방울이 돋보이듯 극소수 아이들의 그런 행동이 부각되고 잔상으로 오래 남기 때문에 '요즘 애들은 싸가지 없다'란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십중팔구 대개의 청소년들은 강요에 의한 것이든 자발적이든 착실하게 생활하고 열심히 공부한다. 골목길에서라도 동네 어른을 만나면 깍듯이 인사하고 잘못된 행동을 나무라면 다소곳이 그 말씀 다 끝날 때까지 듣고는 '잘못했습니다'하며 반성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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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어둑새벽입니다. 주변은 캄캄하고 한기는 살갗을 파고듭니다. 지금까지의 과거가 이랬다면 밝아오는 새해엔 분명 광명과 따뜻함이 있는 그런 한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 임윤수

드물게 동네 골목에서 어른을 만나도 못 본 체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건 싸가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숫기가 없어서 고개를 돌릴 뿐인 아이들일 게 분명하다.

싹수 없는 아이들은 어른 탓

극소수 아이들의 '싸가지 없는'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반사경처럼 '아이들 앞에서는 냉수도 제대로 못 마신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에는 '보는 대로 따라하는 아이들 습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기에 청소년들의 그런 행동에는 앞서 냉수 마신 누군가의 싸가지 없는 모습이 있었음을 어림할 수 있다.

싹수라는 게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요구되는 예나 도덕성이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더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느 곳에든 요구되는 기본질서며 희망의 바탕이 싹수다.

그런 싹수가 보기 힘들다. 당리당략과 붕당을 일삼는 정치권을 보고 싸가지 있는 정치를 한다고 보기 힘들다. 반칙과 불법이 판치는 사회를 싸가지 있는 사회라고 말하기 힘들며 정의롭지 못한 경제 현황이 싸가지 있는 경제라고 하기 힘들 거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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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에 “덩!” 하고 떠오르는 일출은 칠흙같은 어둠과 살갗을 파고들던 한기를 지리멸렬 시켜 줍니다. 그러기에 일출은 희망과 온기입니다. ⓒ 임윤수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며 자라고, 그렇게 받아들인 습성은 아이들의 인격뿐 아니라 가치관 정립에도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소위 싸가지 없는 아이들의 행동은 '자생적 행동'이 아니라 어른들로부터 학습된 가치관과 성장 배경에서 비롯된 '대물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 그렇게 싸가지 없는 아이들이 등장하고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까? 물론 태고부터 싸가지 없는 아이들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요즘처럼 왕왕 거론되거나 사회적 문제로 크게 대두된 경우는 없었을 거라 생각된다.

나라가 해방되고 산업화되면서 어른들은 그 스스로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싸가지' 다 팽개치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삶을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때다. 그때는 경우에 조금 벗어나고 버릇없어 행동해도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체명제의 핑곗거리가 있어 그런 행동이 통용되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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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불법정치 그리고 싸가지 없는 일상이 “음”이라면 밝음과 정도정치 그리고 살맛나는 세상은 “양”입니다. 떠오르는 태양은 음의 세계를 양의 세계로 바꿔 줍니다. ⓒ 임윤수

기성세대들이 시대적 배경을 핑계로, 그렇게 먹고 살기 위해 경우에 벗어나고 버릇없는 행동을 하다보니 그것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에겐 어쩜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진 건 아닐까 진지하게 되새겨볼 일이다.

현재 자신의 입장이 사회적 지도층이거나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싸가지 없는 정치술수를 부리거나 싸가지 없는 권모술수를 부린 적이 없는지 돌아볼 때다.

서커스하듯 정치권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 다니고,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를 좇기 위해 지도층 권역서 얼쩡대던 사람이 꼭 곱씹어봐야 할 시대적 화두다. 그렇다고 그 화두가 엄청나고 새로운 의미를 갖고 있거나 어려움을 담고 있는 게 아니다. 이미 그들도 다 알고 있는 그런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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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둥그런 해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매달려 있는 산 그림자와 어둠을 떨쳐야 합니다. 그러기에 뭔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 임윤수

오늘의 기득권자들이 좀더 나이 먹고 사족에 풀기 떨어져 어쩔 수 없는 어르신(?)이 되었을 때, 싸가지 있는 후배 정치인이 정치하고, 싸가지 있는 지도자들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그런 사회에 살고 싶다면 솔선수범하여 싸가지 있는 정치와 진실의 알을 낳아야 한다.

시대와 세월의 장닭은 국민 여론

늘그막에 눈살 찌푸리지 않아도 되는, 싸가지 있는 사회서 살고 싶으면 스스로가 싸가지 있는 어른으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그런 싸가지를 부화시킬 수 있는 신뢰의 달걀을 낳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춥고 칠흑 같은 어둑새벽에도 밝아오는 아침이 있음을 알리는 장닭이 되어 '꼬끼오' 소리를 내고, 당당하게 홰치며 '꼬꼬댁'거리는 암탉이 되어 산란의 소리도 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싸가지 없는 정치와 지도가 계속될 경우 그 싸가지는 변종되어 패륜의 정치와 지도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무섭게 생각해야 한다. 패륜의 정치가 된다면 그건 바로 사족에 풀기 떨어진 늙은 정치인들을 후손들이 사리에 맞지 않게 두들겨 팰 수도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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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태양이 어둠 속 산 그림자 떨치고 산정을 올라섰지만 아직은 좀더 있어야 본연의 광명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 임윤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격언이 있다. 몇몇 요즘 청소년들의 행동이 싸가지 없게 보인다면 그건 어른들이 그런 싸가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느 정치 신인이 싸가지 없게 행동한다면 그건 기성 정치인들이 싸가지 없는 정치를 했기 때문임을 보아야 한다.

앞으로 정말 좋은 세상을 보고 싶으면 제대로 된 싹수 가득한 그런 유정란을 낳을 수 있도록 모두가 화합하는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둑새벽의 칠흙 같은 어둠도, 살갗을 파고들던 엄동설한의 추위도 장관의 일출에 지리멸렬해 간다. 시대와 세월의 장닭이 천하의 새벽에 희망의 을유년이 밝아옴을 알리기 위해 커다란 울음소리를 낸다.

시대와 세월의 장닭은 다름 아닌 국민들의 여론이며 국민들의 관심이다. 이제 머지않아 잘 키운 암탉으로부터 희망과 행복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그 모든 걸 기대할 수 있는 '싹수 있는 알'을 낳고 홰치며 울어대는 꼬꼬댁 소리를 들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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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지가 되었습니다. 새해엔 음습한 그늘 구석구석 따스함과 광명이 곁드는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임윤수

그 달걀 속에 담겨진 행복과 건강 그리고 만사형통의 행운과 축복이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되고 재생산되기를 간절한 신년소망으로 가져보며 생활 속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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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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