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엔 뚝배기 설렁탕 한 그릇이 딱이다.김규환
질그릇, 뚝배기, 항아리 옹기는 우리 음식의 역사야!
사람들은 흔히 집안 살림규모와 솜씨를 이야기 할 때 장독대를 들먹인다. 항아리, 옹기, 질그릇이 얼마나 많이, 어떤 쓰임새에 따라 올려져 있는가가 살림의 잣대가 된다. 같은 장단지에도 햇간장, 작년 것, 이태 혹은 삼년 묵은 간장단지가 있다. 된장단지에는 봄, 가을 두 철과 해마다 담근 된장이 따로따로 나눠 담겨 있다. 이토록 지혜와 정성을 쏟아부었기에 우린 단지의 수효를 헤아려 식구 수를 짐작하고, 상에 차려졌을 때 맛을 미리 가늠하기도 한다.
장독대에 차려진 그릇이야말로 숨쉬는 그릇이다. 안팎이 통하는 소우주(小宇宙)다. 질박하지만 둥그런 모양은 고조선 시대에 시작하여 고구려 때 자리를 잡고 현대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다. 중국의 역사왜곡 '동북공정'에 맞설 유일한 무기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손으로 버무린 어머니를 다시 생각나게 하고 잠시 잊고 있던 시골집을 그립게 하고 조르기도 하는 풍경이다. 마음의 안식처다.
웬만한 온도에도 까딱없이 바깥 변화에 둔감하게 반응하면서 내부에선 발효가 진행된다. 더울 땐 더운 대로 추울 땐 추운 대로 잘 적응하여 외부 열을 차단하고 내부 음식을 보존한다. 습할 땐 습기를 머금어버리기만 한다. 건조하면 안에 있던 내용물로 바깥 공기 유입을 막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항아리, 옹기만 같아라'는 법칙이 적용된다. 이토록 보존성이 뛰어나다.
우리네 전통 그릇은 윗부분부터 다르다. 위로 넓게 펴졌다기보다 가운데가 제일 배가 부르고 위로 올라오면서 차츰 줄어든다. 투박하기 이를 데 없다. 질박하다. 볼품없어 보이는 그릇과 솥은 수천 년 내려온 과학이다. 떠먹기나 설거지하기엔 조금 불편하다. 깨지기 쉽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악조건을 수습하고서 보면 전혀 새롭지 않은 나름의 오묘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뚝배기나 질그릇이라면 쌀뜨물 한 바가지나 행주 한 장으로 설거지가 가능하다. 그냥 문지르면 말끔해지니 환경에 치명적인 세제를 줄일 수 있다. 온도조절 능력이 탁월해 음식이 쉬 변치 않는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이면 다른 그릇 쓰기 아깝다. 깨지지 않는 한 오래될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건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