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의문사진상규명활동 대국민보고 및 제2기 보고서 출판기념회'에서 한상범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 지난 1기에 이어 2기 의문사위를 이끌어 오셨는데, 우선 1기 위원회 사건 중 기억나는 사건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허원근 사건하고, 김준배 사건, 장준하 사건, 최종길 사건 등이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사건인데, 그 중 김준배 사건과 최종길 사건은 인정 결정이 나왔지요.
허원근 사건은 법의학이나 총포학의 기본 원리원칙에 맞지 않는 거였습니다. 법의학자들과 LA경찰국의 총기전문가한테도 의뢰했는데 M16으로 세 발이나 쏴 자살한다는 건 전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국방부의 정수성이란 사람은 기자회견에서 의문사위 조사가 전부 날조라고 말했거든요. 이건 명예훼손이고, 사건을 재은폐하는 행위였습니다.
또 김준배 사건을 인정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한총련이 이적단체 구성원이니 잘못됐다는 식의 논리거든요. 김준배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관이 막대한 사비로 프락치를 고용했다는 게 드러났지요. 포상과 특진 때문이었어요.
프락치가 김준배한테 접근을 해서 유인한 뒤 체포되게 하려 했던 건데, 프락치인 게 드러날까봐 그 사람도 구속했다가 풀어줬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여기저기서, 공기관에서도 왜 한총련 편을 들어주느냐는 압력이 들어왔어요. 당시에 백주대로에서 '네가 뭔데'하는 식의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장준하 사건과 관련해 말씀드리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정치적인 탄압은 그 기관(중앙정보부, 현 국가정보원)에서 한 거예요. 그리고 쌍벽을 이뤘던 보안사(현 국군기무사령부)가 많은 정치공작을 하고 일을 저질렀거든요. 그런데 그 두 기관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료는 전혀 협조가 안됐어요.
당시에 누가 그러더군요. 대통령(김대중)이 자기가 대통령인데도 그 사건을 말 한마디 못하고 있는데, 당신이 뭘 하겠다는 거냐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다가 관두면 관뒀지 하는 데까지는 해 본다'는 게 당시 혼자서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 2기 의문사위 활동 결과 진상규명 불능 사건은 24건, 기각 7건, 인정 11건이었습니다. 인정된 사건보다는 기각되거나 불능 결정난 사건이 상당히 많습니다. 조사권한과 조사시한이 턱없이 미약했다는 점은 많이 제기됐는데, 그 외에 이처럼 불능 결정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근본적으로 오래된 사건이고, 관련자들이 죽거나 기억이 희미해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다. 또 국가공권력이 자행한 사건이거든요. 국가공권력은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백서를 쓴 적이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 감추려는 사건, 그걸 파헤치는 거거든요.
다음으로 우리 위원회 위원 중 변호사가 3명 이상입니다. 사건 결정이 법원의 증거 채택에 준해서 이뤄졌습니다. 사실 의문사 사건은 어디까지나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처벌하기 위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의문사위는 법원이 아닌데도 법원처럼 엄격한 증명을 전제로 결정을 하다보니 불능 결정이 많았습니다.
그 한 예로 2기에서는 김성수 사건이 인정되긴 했는데, 법률가들은 다 반대했습니다. 장준하 사건도 정황 증거 등으로 상당 부분은 인정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능으로 남았고요.
거기다가 민간조사관과 파견된 공무원들이 조사방침이나 방법에서 하모니가 안 됩니다. 용케 그래도 서로 자제를 해서 지내왔지만. 같은 사건을 함께 조사한 민간과 파견 공무원이 다른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똑같은 사건을 두고."
- 2기 의문사위에서 가장 사회적인 관심을 끌었던 사건은 아무래도 비전향장기수 관련 전향공작 옥사사건(손윤규, 최석기, 박융서 사건)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7월 1일 사건 브리핑 이후 수구세력은 '간첩, 빨치산이 민주인사라니'라는 식으로 의문사위 때리기'가 극에 달했습니다. 당시에도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텐데요.
"기자회견 다음날(7월 2일) 출근해서 중앙일보를 받아 봤어요. 언론과 극우의 반발은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지요. 그런데 이건 '간첩'이니 '빨치산'이니 하며 전력을 문제 삼잖아요. 다른 건 그렇다치더라도 과거 전력 때문에 문제 삼는 건 도저히 민주국가에선 있을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이건 곧 좌익 빨갱이는 법률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식의 위험천만한 논리입니다.
좌익 혐의만 갖고 사람이 맞아죽어도 좋다는 식의 사고는 육이오 때 보도연맹은 빨갱이니까 죽여도 좋다고 했던 논리와 같은 거예요. '명색이 민주화시대라는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하는 생각과 디제이 시대 최장집 교수 사례도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결심을 했지요. '여기서 물러나면 민주주의고 뭐고 다 무너진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헤쳐나가자 결심을 했고, 직원들에게도 '흔들리지 말고 의연하게 대응하라'는 얘길 했고요."
- 지난 7월 6일 오전에 예비역 장군 모임인 성우회와 간담회를 가졌고, 그 날 오후엔 민주화보상심의위에서 지난 1기 때 변형만 사건 등에 대해 '간첩은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결정을 했는데요. 그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화보상심의위의 결정 내용에 대해선 예상했던 거예요. 그런데 시기적으로 왜 하필 그날이냐 하는 것이 유감스럽고 의아스러웠습니다. 또 우리 사회 수준이 아직까진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비애감도 들더군요. 그 결정은 사상 차별이고 사상 추단, 예단이거든요. 이런 사상적 편견이 민주주의적인 결정일 순 없지요."
"법원처럼 엄격한 증거 채택으로 불능사건 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