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소통, 그 기쁨을 맛보다

[2004 나만의 특종]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다

등록 2004.12.28 16:31수정 2004.12.2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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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4년의 끝자락에 서서 한해를 되돌아 보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탄핵, 총선, 김선일씨 피살 사건과 이라크 추가 파병,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행정수도 위헌 사태, 수능 부정 등 유례 없이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숨가쁜 한해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2004년은 예년과 다르게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한 해였습니다. 우선 제가 속해 있는 도서관 단체가 주관하는 사서직무교육에서 '진보적 사서상' 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누군가의 앞에 서서 저의 생각을 한시간 가량 말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또 제가 쓴 글이 종이 매체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탄핵 당시 제가 쓴 촛불집회 참가기가 한 교육 관련 단체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또 노사 문제에 대한 글은 몇몇 중소기업의 노보에 실리기도 했고 도서관에 대한 글은 한 공공 도서관의 소식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저의 사진과 글이 인쇄되어 누군가에게 보여진다는 사실이 참 이채로웠습니다.

그리고 가장 달라진 점은 장애인복지시설, 시민단체, 정당 등 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체와 저와 지향점이 비슷한 단체에 작지만 후원을 하면서 사회적 연대와 참여를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2004년 한해 동안 제가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오마이뉴스>가 있었습니다.

제게 글을 기고하라고 부탁했던 이들은 모두 <오마이뉴스>에 실린 제 글을 보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제 기사에 공감한 이들이 관련 주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소통을 원했던 것이지요. 또 제가 한달에 만원씩이지만 꼬박 꼬박 후원을 하게 된 것도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였습니다.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한 시민단체의 간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뭐든 하고 싶다'는 젊은 아빠, 헌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헌책방 즐김이', 흘려 버리기 쉬운 책들과 문화 행사를 꼼꼼히 챙겨 주는 '문화전도사'. 저는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좀 더 밝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진정성과 열정만은 특별한 사람들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만났습니다. 그들의 진지한 삶을 보면서 또한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작지만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작지만 여러 단체에 후원이라는 나눔을 실천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오마이뉴스>에 처음 기사를 기고한 것은 올해 1월이었습니다. 어설프지만 진보적 성향을 지닌 제가 보수적 성향이 강한 대구에 살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정치,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부딪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 속에서 저는 항상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또 제 또래 젊은이들의 정치에 대한 심각한 무관심은 저를 무척 안타깝게 했습니다.


관련
기사
- 젊은이들이여! 세상을 뒤집어 보자

그런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풀어 보고자 아니 하소연하고자 '젊은이들이여! 세상을 뒤집어보자'(2004/01/07)라는 다소 감정적인 글을 <오마이뉴스>에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치기 어린 제 글이 정식 잉걸 기사로 채택되었고 거기다 이천원의 원고료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저의 글을 채택해 주었다는 기쁨, 글을 써서 돈을 받았다는 신기함, 수백명의 사람들이 제 글을 읽었다는 만족은 저에게 묘한 흥분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처음엔 그렇게 하소연이나 혹은 제 글을 남들이 봐 준다는 단순한 만족감을 맛보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기사를 쓰기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나 저는 전문대학들의 취업률 부풀리기가 심각하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전문대학들의 취업률 거품'(2004/01/19)이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며칠 후 다른 몇몇 신문사에서 제 기사와 거의 흡사한 내용의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그 기사를 본 저는 제가 쓴 기사의 상당 부분이 참조되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교육인적자원부는 취업률을 산출하는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여 각 대학별로 전달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우연일수도 있지만 당시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일개 소시민의 문제 제기가 사회적 발언이라는 행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탄핵 정국 당시 촛불집회를 '노빠들의 광기'로 몰아붙이는 소설가 이문열의 발언을 비판하는 "'탄핵반대' 촛불집회는 일종의 개인숭배주의"(2004/03/16) 기사의 조회 수가 무려 3만5천회에 이르고, 댓글이 387개나 달리면서 또 한번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글이 가지는 힘을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어설픈 글일지라도 최대한 신중을 기해 쓰고, 쓰고 난 다음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글에 대한 책임감은 최근에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시위' 참가를 거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사립학교에 몸담고 있으면서 시위를 거부하기란 참으로 힘든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제가 쓴 글이 저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또 말(글)과 행동이 다르지 않다는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쓴 글이 저의 신념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준 것입니다.

2004년 저는 글쓰기를 통해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사회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뿌듯함과 자신감을 얻었고, '나의 글과 행동이 서로 다르지는 않나?'하는 반성을 습관화하였습니다. 또한 외적으로는 저의 생각과 다른 이들의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을 살찌우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제 자신과의 소통, 이웃들과의 소통을 통해 상식을 실천하는 데 미약하나마 힘을 보탰다고 조심스럽게 자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된 것은 2004년을 통틀어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한해 동안 차곡차곡 쌓아 둔 저의 글을 보면서 제 삶을 따뜻하게 데울 땔감을 쌓아 둔 듯해 흐뭇합니다. 내년에도 후 내년에도 아니 오래도록 그런 흐뭇함을 맛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하고, 글쓰기 할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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