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미스테리' 풀렸다

노 대통령, 출입기자단 송년만찬에서 '비화' 공개

등록 2004.12.29 15:56수정 2004.12.2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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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가고시마 미스테리'가 풀렸다. 당사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풀어주었다. 28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송년만찬 자리에서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헤드 테이블에 앉은 기자들과 정상회담을 주제로 담소를 하면서 일본 규슈(九州) 가고시마(鹿兒島)현 이부스키(指宿)시가 한·일 정상회담 장소로 정해지게 된 '우여곡절'의 비화를 털어놓았다.

노 대통령 "고이즈미 총리 직접 만나보니 부드럽고 상대방 배려할 줄 알더라"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직접 만나보니 부드럽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더라"면서 가고시마 이야기를 꺼냈다.

노 대통령은 "가고시마가 한일회담 장소로 결정된 것과 관련 논란이 됐을 때 고이즈미 총리가 간접적으로 그 얘기를 듣고 우리 쪽 입장을 받아들이겠다고 통보해왔다"면서 "고이즈미 총리가 그렇게 하니 오히려 내가 작아지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노 대통령은 이어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 주장에 대해) '일리 있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정하겠다고 했다"면서 "그래서 '우리가 괜히 사소한 것 가지고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고마, 그냥 가자 욕 좀 먹으면 되지, 그게 중요한 것이냐'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한·일 양국은 지난 7월 제주에서 첫 번째로 이른바 '셔틀 정상외교'를 가진 뒤에 하반기에 일본의 지방도시에서 두 번째 '셔틀 회담'을 갖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후 외교 관례에 따라 초청자인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가고시마의 유명한 온천 휴양지인 이부스키를 회담 장소로 정해, 지난 10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ASEM 정상회담 기간에 양국은 회담 날짜와 장소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회담 개최를 한 달 앞둔 지난 11월 청와대 주변에서는 가고시마현이 정한론(征韓論)의 발상지이고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의 기지가 있었던 곳이라는 이유로 회담장소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급기야는 한국측의 회담 장소 변경 요구로 장소 문제가 외교 갈등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였었다.

사실 양국이 서로 합의해 놓고서 이제 와서 개최국에 장소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국제적인 외교관행에 비추어도 '무례한 결례'였는데, 한국 외교 당국이 일본측에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된 배경에는 한·일 관계의 특수성 말고도 여론을 수렴한 노 대통령의 '무리한 지시'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풀린 '가고시마 미스테리'

그런데 이번 노 대통령의 비화 공개로 한때 한·일간의 외교 갈등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였던 장소 문제가 어느 날 갑자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풀린 '가고시마 미스테리'가 해소된 것이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비화 공개로 "'가고시마 태풍' 발원지는 노 대통령?" 제하의 지난 11월 8일자 <오마이뉴스> 기사도 뒤늦게 특종(?)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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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태풍' 발원지는 노 대통령?

노 대통령은 출입기자들과의 송년만찬에서 이 비화를 털어놓으며 "우리도 한 발짝 양보하는 게 더 얻는 게 많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실제 외교는 큰 소리를 치는 것보다 실제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면서 "외교는 등 뒤에 있는 국민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가고시마에서 열린 정상회담 직후에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도 일본인 납치자 문제로 대북 제재 여론이 거센 것과 관련 "일본 국민들이 여기에 대해서 감정의 상처를 입고 분개하는 것은 잘 이해가 간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국민들의 입장이고 일본의 책임있는 지도자들이라면 이 문제의 해결책을 항상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되기 때문에 국민과는 다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국민들은 감정적으로 말할 수 있지만 지도자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숙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지도자를 선택할 때 지도자의 판단과 일반국민의 판단이 항상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의 향후 개편 방향과 관련해서는 이날 송년 만찬에서 "조윤제 경제보좌관이 영국 대사로 가게 됐지만 수석·보좌관급의 고위직에서는 더 이상 개편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조 보좌관이 지난 7월에도 그만 두겠다고 했는데 그때 내가 붙잡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청와대 주변에서는 조 보좌관이 국제기구 책임자로 나갈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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