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인가 기사인가? 사과 한번 없는 언론들

[모니터 보고서] 대구 아동 사망 사건 관련 보도 분석

등록 2004.12.30 17:02수정 2005.01.0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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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5일 우리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송아무개군이 엄마의 시신 옆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해 온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당시 송군의 어머니는 7년 전부터 당뇨를 앓는 등 질병에 시달려 왔지만 가난 때문에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사망해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엉성했음을 보여 주는 사례였다.

그런데 당시 비난의 화살은 엉뚱하게도 학교와 이웃에게 쏟아졌다. 언론이 사회 안전망과 관련한 보도는 뒷전으로 한 채, 송군이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과 친구들이 송군이 발견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일제히 보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언론사의 이런 보도는 허위였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송군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2003년 11월 19일 송군을 찾은 것도 같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당시 한 방송사의 보도비평 프로그램에서는, 경찰의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취재 경향이 이와 같은 무더기 오보 사태를 낳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세밑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부각시킬 수 있는 좋은 뉴스거리로 ‘짜맞추기 보도’를 하다가 오보를 생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이런 언론의 보도 태도를 ‘떼거리즘 현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론사의 이런 잘못된 보도 태도는 아직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발생한 대구의 5세 아동 사망 사건을 보도한 언론의 태도는 1년 전 ‘송군 사건’의 보도 태도를 답습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사건 초기 기사, 과연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했나?

‘2004년 12월 추운 겨울날 한 아이가 죽었다. 그것도 부모와 함께 지내는 방안에서 숨졌다. 겉으로 보기에 뼈만 앙상했고, 게다가 이틀 동안 장롱 속에 있었다.’

언론사 취재의 출발점이 된 이번 사건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기자들의 취재를 거치면서 사건 발생 저녁에 다음과 같이 보도된다.

MBC <뉴스데스크>는 ‘아이들이 무슨 죄’에서 “경찰은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실직 상태인 아버지가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왔습니다.... 아내와 몇 달 전부터 별거해 혼자 아이들을 돌봐왔습니다”라고 보도했다.

KBS <뉴스9>는 ‘네살배기 아이 장롱서 숨진 채 발견’에서 “경찰은 노동일을 하는 김씨와 정신지체 3급인 김씨의 아내가 생활고로 굶어 숨진 아들을 이틀 동안 장롱 속에 방치한 것으로 보고 사망경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SBS <8뉴스>는 ‘4살 어린이 영양실조로 사망’에서 “4살 난 남자 어린이가 부모와 함께 사는 집에서 굶어 죽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경찰) 조사 결과 김씨 부부는 숨진 둘째 아들을 이틀 동안 장롱 속에 방치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는 김씨는 지체장애인 아내, 3남매와 함께 사글셋방에서 생계를 꾸려왔지만 일거리가 없어 노는 날이 많았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영세민 부부 아들 굶어죽은 채 발견’에서 “발견 당시 김씨의 아들은 외상 등 타살 흔적이 없었지만 매우 마른 상태였고 부패 정도로 미뤄 며칠 전쯤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숨진 김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지난 16일 오후부터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자 장롱 속에 넣었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8년 전쯤 정신지체장애 3급의 동갑내기 아내와 결혼해 3남매를 둔 김군의 아버지.... 경찰이 현장 확인을 하러 김씨 집에 갔을 때 텅 빈 냉장고에 먹을 것이라고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제 아이는 굶어서 죽었다. 뿐만 아니라 부모는 아이를 장롱 속에 방치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가난 때문이다. 부모는 별거 중이었거나 아이의 어머니가 정신지체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언론사 기자들이 하루 동안 취재한 결과였다. 우리 사회는 경악했다.

다음날, 비난의 화살은 동사무소와 이웃에게

다음날 일부 언론은 '관할 동사무소 담당 공무원의 무책임한 행동과 이웃들의 무관심한 행?을 추가로 보도했다.

19일 <연합뉴스>는 '영세민 5세兒 아사 사건은 사회 무관심 때문'에서 "김씨는 아들이 숨지기 며칠 전인 지난 13일께 주소지 동사무소를 찾아가 기초생활 수급권자 신청을 했으나 서류가 미비됐다는 이유로 반려된 것으로 밝혀졌다(이 내용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 2시간 후 정정됐다)... 또 이웃 주민 누구도 기초생활 수급권자 신청이나 장애인 등록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라고 보도했다.

'이제 아이는 굶어 죽었고 부모는 이를 방치했으며 담당 공무원과 이웃들로부터도 외면을 받는 상황에서 참으로 불쌍하게 죽었다.'

언론의 추가 보도가 나올수록 우리 사회의 분노는 점점 더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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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2월 24일 ⓒ 조선일보

신문도 비슷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등이 ‘기아사로 추정’했을 뿐이다. 사건이 주말에 발생한 관계로 신문은 월요일인 20일 일제히 이 사건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비쩍말라 숨진 네살 아들, 부모가 장롱속 방치'에서 "집안에 먹을 건 쌀 한톨 없었다"고 했다. 또 다음날 사설 '네살짜리가 무슨 죄가 있어 굶어 죽어야 했나'에서는 "네살짜리 장애아가 장롱 속에서 굶어죽었다.... 죽은 아이의 어머니는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 동사무소측은... 관련서류를 갖춰 오도록 대답하는 것으로 그쳤다... 복지담당공무원 7500명이 있다... 자상하게 그 집 사정을 상담해 줬더라면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문화일보>는 20일 ‘가난 때문에... 서러운 죽음’에서 “정신지체 영세민 부부의 네살난 아들이 굶어 죽고... 경찰에 따르면 김씨 가족은 관할 행정기관은 물론 수년간 한 동네에서 살아온 이웃들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매일경제>는 20일 ‘얼마나 굶주렸기에...5세아이 장롱서 숨져’에서 “어린 것이 얼마나 주렸기에 삐쩍 말라 숨도 제대로 못 쉬었을까...김씨 가족은 관할 관청은 물론 수년 간 같은 마을에서 생활해온 이웃에게서조차 관심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생활해 오다 이 같은 사태를 맞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20일 ‘집안엔 쌀한톨 안보였다’에서 “네살배기 남자 어린이가 집 안방 장롱 안에서 굶어 죽은 채 발견됐다... 경찰은 집안의 냉장고가 텅 비어 있는 등 먹을거리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매일신문(대구)>은 ‘4세아 장롱서 앙상한 모습으로 숨져’에서 “어머니마저 온전치 못했다. 경찰관계자는 ... 부모에 대한 정신감정을 의뢰한 상태라고 말했다... 자주 굶었지만 주위의 도움은 별로 없었다”고 했다. 또 같은 날 사설 ‘네살 어린이가 굶어서 죽었다면...’에서 “어머니도 정상인이 아니었다... 당해 구청이나 동사무소는 도대체 뭘 했는지 참으로 원망스럽다”고 했다.

<영남일보(대구)>는 ‘누가 이 아이를 굶겨 죽였나?’에서 “경찰은 이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정신지체장애 3급으로 알려진 숨진 김군의 어머니.... 이웃주민 누구도.... 관할 대구 동구청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무지한 부모와 이웃의 무관심 속에서 병원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굶어 죽은 김군”이라고 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언론들의 보도 내용은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은 숨진 아이를 3년 6개월 정도 진료했던 소아과 전문의가 12월 21일 “숨진 아이가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 증세를 보였다”고 말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언론의 흥분, 그 속에 제3의 피해자가 있었다

숨진 아이는 3년여 동안 100여차례 진료를 받았으며, 응급실에도 10회 이상 실려갔다. 아이의 부모는 가난한 생활 형편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영양제도 사서 먹였고, 아이의 정밀 검사도 받고 싶어했다. 이러는 가운데 김씨 가족은 애초의 전세금 1000만원을 다 소진해 이번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는 보증금 100만원도 내지 못하고 월세도 5개월 치가 밀리는 형편이었다.

또 숨진 아이의 엄마는 ‘정신지체장애 3급’이 아니다. 3년 이상 그를 접했던 담당 의사는 “둘째와 셋째에 대한 애정이 강했고, 다소 산만하기는 했지만 정신질환으로 보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사실 숨진 아이의 엄마는 ‘정신지체장애 3급’으로 등록되어 있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장롱에 ‘방치(유기)’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숨진 아이의 아버지는 “다른 아이들이 시신을 훼손할까봐 장롱 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제례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장롱 앞에 상을 차려놓고 물과 쌀을 떠놓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담당공무원의 ‘무책임ㆍ무관심’에 대해 살펴보자. 숨진 아이가 2004년 3월~11월까지 저소득층 보육료 지원 사업 대상자로 월 7만8600원의 지원을 구청에서 받은 것으로 봐서 행정당국에서 이들 가족의 처지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빈곤층이 대략 600만명으로 추산되고 이들을 도울 복지공무원이 7500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담당 공무원이 각 가정마다 구체적 상황을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2~3배 정도의 인원이 부족하다는 것이 일선에서의 호소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에 약 1천명 정도를 늘릴 예산을 배정했을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담당 공무원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이 드러난 이후 언론은 자신들의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으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아니면 말고...' 오보에 과장 보도- 사과 없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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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12월 21일 ⓒ 영남일보

우선 가장 적극적인 보도 태도를 보인 대구의 <영남일보>부터 살펴보면 21일 ‘굶어죽었나? 희귀병인가?’에서 숨진 아이를 3년 이상 진료했던 소아과 전문의의 “진료 당시 김군은 걷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는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었다”는 내용을 크게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22일 ‘장롱 속 주검의 아버지가 털어놓는 사연’에서 “어떤 부모가 자식을 굶겨 죽이겠냐.... 자식들만큼은 굶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제발 막내딸이라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길 바란다”는 숨진 아이 아버지의 심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반면 대구의 <매일신문>은 다른 태도를 보였는데 23일 ‘기자노트-장롱 속 죽음 그 후....’에서 “희귀성 난치병이 사망 원인으로 드러난다면 지금껏 비난을 받았던 사람들은 면죄부를 쥐게 된다.... 안타까움은 부모에게 돌아간다. 제대로 밥도 못먹고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아이를 그냥 두었던 부모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며 숨진 아이의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듯한 보도를 했다.

그리고 <연합뉴스> 21일 ‘복지직 공무원 업무 과다ㆍ개선 필요’와 22일 ‘사회안전망 허술’ 그리고 22일 ‘말뿐인 사회안전망’에서 ‘사회복지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만을 보도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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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12월 23일 ⓒ 매일신문

또 21일치 <연합뉴스>‘영세민 5세兒 사망, 병사 가능성도’와 22일치 <한겨레>‘장롱서 숨진 네 살배기 희귀병 앓았을 수도’와 <중앙일보>22일치 ‘숨진 김군 질환 가능성’ 등의 기사에서, 숨진 아이를 진료했던 소아과 의사의 말을 인용해 “사인(死因)이 희귀 난치병의 하나인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 때문일 수도 있다”고 보도했을 뿐이다.

용두사미다.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을 후속 보도가 많이 미흡했다. 이런 언론의 태도는 본의는 아니겠지만 이번 사건을 감정적ㆍ동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아이를 숨지게 한 부모에 대한 원망, 얼마간의 도움의 손길, 그리고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악순환이 되기 쉽다. 그래서 근본적 문제 해결은 또다시 미뤄지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런 잘못된 보도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 기자가 '툭 터놓은' 언론의 자화상

우리들의 이 난감한 물음에 답하는 취재기자의 고백이 있어 소개한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큰 뉴스거리였다... 화살은 다름 아닌 부모에게로 향했고 ‘굶어 죽인 것 아니냐’ ‘죽도록 방치한 것 아니냐’ 등 엄청난 의혹들까지 끄집어냈다”며 취재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는 “아직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동생과 오빠를 잃은 누이들에게 가족을 떠나 보낸 아픔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 줘버렸다. 큰 뉴스거리라는 그릇된 욕심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성급하게 판단하고 지나치게 확신했다. 진실을 전하기보다는 선정적인 기사 한 꼭지를 만들어 내는 데 급급했다”고 반성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위에서 잘못된 보도의 대부분이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는 데서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것은 취재 기자들이 경찰의 조서나 발표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이번 사건에서도 ‘기아사’ 이외의 사망 원인을 의심해볼 만한 단서가 취재 초기에 여럿 보인다. ‘숨진 아이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다’는 점이나 ‘한 집에서 생활한 큰 딸(7)은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는 점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이런 의구심에 주목하기보다는 경찰의 말을 더 믿었다. 이것이 관행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효율적인 측면을 강조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진실 보도와는 거리가 먼 태도라고 보았을 때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할 병폐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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