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제발 이혼하지 마세요"

[이혼이야기 5] 어느 부부의 '마지막 눈물'

등록 2004.12.31 07:58수정 2005.07.1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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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리 바로 앞에는 높이가 아주 낮은 민원대가 있습니다. 앉은뱅이 책상쯤으로 생각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이 민원대는 협의이혼 전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이곳에서 협의이혼신청서를 작성합니다.

올해도 우리 법원에서는 약 3천여 쌍이 이혼을 했습니다. 전국 법원을 합치면 그 숫자는 엄청날 겁니다. 이혼의 주된 이유는 성격차이와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배우자 부정도 적지 않게 눈에 띕니다.

오늘도 이혼하는 부부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민원대를 바라봅니다.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신청서를 잘못 적었는지 쫙쫙 찢습니다. 제게 다시 신청서를 달라고 합니다. 여자 옆에는 남자아이가 있습니다. 눈이 여간 초롱초롱한 게 아닙니다.

문득 그때 그 아이가 떠오릅니다. 지난 8월이었습니다. 저는 진작부터 현관복도에 있는 '민원용 의자'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인 듯한 남녀가 의자에 앉아있고 바로 그 아래에 여자아이가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열 살쯤 되어 보였습니다.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되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봅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화장실을 가는 척 하면서 그들을 훔쳐봅니다. 귀도 쫑긋 세웠습니다.

"엄마, 이혼하지 마세요. 아빠, 제발 부탁이에요."

어, 그러고 보니 아이가 한 명 더 있습니다. 댓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입니다. 녀석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모르는 듯했습니다. 제 엄마 품을 한시도 떠나지 않습니다.

여자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매점 쪽으로 걸어갑니다. 남자아이가 따라갑니다. 여자아이는 제 아빠의 무릎에 머리를 묻더니 울기 시작합니다.

"아빠, 제발 이혼하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

아이는 아빠를 향해 두 손으로 빌기 시작합니다. 저는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마음이 여간 아픈 게 아닙니다. 어떤 여직원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합니다. 여자가 매점에서 돌아옵니다.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있습니다. 여자아이에게 그것을 주지만 받질 않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여자아이가 제게로 뛰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 우리 엄마 아빠 이혼 못하게 말려주세요."

아이의 눈물 때문인지 갑자기 제 가슴이 끓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들 부부에게로 다가갔습니다. 남자아이는 연신 아이스크림만 빨아대고 있습니다.

"무슨 사연 때문에 이혼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기에 좀 그렇습니다. 웬만하면 참고 사시지요. 어린 애들이 둘씩이나 있잖아요. 애들이 참 잘 생겼습니다. 물론 공부도 잘하겠지요. 이제 곧 점심시간입니다. 애들에게 맛있는 것 좀 사주세요. 어쩌면 오늘이 애들과는 마지막 점심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이혼은 오후 3시 30분에 있습니다. 시간은 충분합니다."

제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습니다. 저도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 부부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남자가 여자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여자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들 가족이 법원 정문을 나섭니다.

저는 그날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릅니다. '그 부부가 다시 오면 어떻게 말려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다행히 그 부부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그 부부는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316호 법정을 향합니다. 오늘따라 제 발걸음이 더욱 무겁습니다. 이제 2004년도 마지막입니다. 저는 힘들게 법정에 들어섭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판사 앞에서 눈물을 흘릴 겁니다. 매일 보는 눈물이지만 제게는 언제나 슬픈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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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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