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폭력이 없는 세상을 바랍니다

<이혼이야기 6>

등록 2005.01.03 19:55수정 2005.01.03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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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과거로 돌아갑니다. 새해 근무 첫 날부터 무슨 과거냐고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답니다. 바로 '남성의 폭력'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맞는 여자' 때문입니다.

2002년 7월입니다. 저는 그때 시골 지원(支院)에서 협의이혼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날은 일진이 좋지 않았던가 봅니다. 왜냐고요? 그날 말이지요. 어디서 본듯한 부부가 이혼을 하러 왔지 않았겠습니까. 그들 부부도 저를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남자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습니다. 여자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저도 슬그머니 눈길을 돌렸습니다.

저는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남자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야, 너는 여기까지 와서 나를 망신시켜야겠냐? 자, 우리 빨리 끝내자."

남자가 여자에게 협의이혼신청서를 들이밉니다. 여자는 한사코 신청서를 받으려하지 않습니다. 금세 사무실 분위기가 험악해집니다. 남자는 산처럼 큰 체구를 가졌습니다. 어딘지 불량기가 있어 보입니다. 반면 여자는 몸이 자그만 합니다. 여자가 일방적으로 몰립니다.

"왜 안 하려고 하니? 네가 먼저 하자고 했잖아."

저는 솔직히 그랬습니다.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최악의 사태를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폭력을 행사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부 싸움에는 끼어들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중재가 어렵다는 말일 것입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토록 염려했던 사태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얼굴을 올려 부칩니다. 직원들이 남자를 제지합니다.

남자는 직원의 손을 뿌리칩니다. 계속해서 여자를 때릴 기세입니다. 여자는 자꾸만 몸을 움츠립니다. 이제 여자의 몸은 아이의 몸만큼이나 쪼그라들어 있습니다. 직원들이 남자의 팔을 양쪽에서 휘어잡습니다. 남자를 사무실 밖으로 끌고 갑니다. 어느 순간 남자가 다시 사무실로 뛰어들어옵니다.

"우리 집에 가자. 가서 다시 얘기해보자."

남자가 여자를 끌어당깁니다. 여자는 버티기를 시도합니다.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남자가 때리는 시늉을 해 보입니다. 그때마다 여자는 '욱, 욱' 하는 신음소리만 냅니다.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 부부가 누구이든 이제 내겐 성가신 존재에 다름 아닙니다. 저는 남자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당신, 왜 그렇게 사람을 때리는 거요."

여자에게도 소리를 지릅니다.

"왜 바보 같이 그렇게 맞고만 있는 거요. 도대체 무엇을 그리 잘못했소."

제 기세가 얼마나 등등했던지 남자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칩니다. 그러더니 쏜살같이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창 너머로 주차장 쪽을 바라봅니다. 남자가 자신의 차 안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있습니다. 여자가 비틀거리며 제게로 걸어옵니다. 저는 여자를 의자에 앉힙니다.

저는 힐끔 옆 눈으로 여자를 훔쳐봅니다. 아, 그런데 성한 곳이 없습니다. 얼굴에는 피멍이 들었습니다. 팔뚝에는 파란 잉크 물이 배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 말이 여자에게 더 큰 상처를 줄지도 모릅니다. 저는 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손이 가볍게 떨립니다.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말없이 사무실을 벗어납니다. 남자는 뻑뻑 담배만 피워대고 있습니다. 여자가 남자의 차에 오릅니다. 그들이 탄 차가 법원정문을 벗어납니다. 저는 두 손을 모읍니다. 그리고 소망합니다. '매맞는 여자'가 없는 세상이 올 수 있도록 조용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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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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