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아니 아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교사에게 주어진 긴 휴식의 의미를 되새기며

등록 2005.01.01 13:10수정 2005.01.01 15:18
0
원고료로 응원
저녁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쉬고 있는데 휴대폰 신호음이 울렸습니다. 확인해보니 "2005년도엔 기쁨 가득 운수대통"이란 문자메시지와 함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습니다. 아주 낯익은 번호였지만 수첩을 다 뒤져보아도 그런 전화번호는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 십중팔구는 지난 해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 보낸 문자입니다.

올해(2004년)는 담임을 맡지 않아 학급 아이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지만 작년만 해도 지갑에 넣고 다니는 필수품 중 하나가 바로 그 전화번호부였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종이를 꺼내 들여다본 탓에 종이가 너덜너덜해져 두 달에 한 번 꼴로 새 종이로 출력하여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여느 해보다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던 탓이기도 하지요.

시효가 끝난 담임 반 아이들의 전화번호를 4월이 다 되어서야 쓰레기통에 버린 기억이 납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종이 한 장을 버리는 일인데도 마음이 참 묘했습니다. 마치 한 해 동안 동거동락했던 아이들과 인연을 끊어내는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비장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하긴 새 담임을 만났는데 아이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긴다고 해도 내색을 하고 덤벼들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

며칠 전에는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휴가를 맞아 도서관으로 저를 찾아온 선영이에게 지금 담임 선생님이 누구인지를 묻고, 먼저 가서 인사를 드리고 오라고 했더니 이미 찾아뵙고 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잘했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어딘지 섭섭한 마음이 자리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제 마음을 읽기라도 했을까요? 선영이는 떠나면서 이런 묘한 인사말을 남겼습니다.

"선생님, 아니 아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는(이미 올해가 되었지만) 담임을 신청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아이들에게 깊은 정을 주기 위해서는 담임을 맡는 것이 상책이지만, 아이들과 깊은 정을 주고받기까지 감내해야 하는 아픔도 만만치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해 담임을 쉬었던 것도 어쩌면 그만큼 아이들과 나눈 사랑의 크기가 컸던 탓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에게 진실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교사가 체감해야 하는 아픔의 강도는 더 커지기 마련이니까요.

"근하신년 2005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다시 휴대폰 신호음이 울렸습니다. 이번에도 문자 메시지와 전화번호만 찍혀 있고 이름은 없었습니다. 누굴까? 궁금한 마음에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잠시 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머, 선생님. 저 주영이예요. 그동안 잘 계셨어요?"
"그래. 주영이었구나. 지금 어디야?"
"버스 안이에요. 휴가 얻어 집으로 내려가는 중이에요."
"아직도 현장실습 중이구나. 일은 할 만하고?"
"예, 할 만해요. 선생님, 많이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다'는 말, 이 말처럼 제 귀를 즐겁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진심이 담긴 한 통의 편지라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바로 '보고 싶다'는 말 한 마디입니다. 물론 그 말에 간절함이 묻어 있을수록 더욱 좋겠지요. 사실, 그 간절함으로 따지자면 언제나 제 쪽에서 손해를 보는 셈이지만 말입니다.

전화를 끊고 이전에 온 문자를 확인해보니 그 주인공은 종미였습니다. 종미도 주영이와 함께 반도체 회사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휴대폰에 발신인의 이름이 떴는지 이쪽에서 무슨 말을 건네기도 전에 종미 특유의 밝고 상냥한 목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어머 선생님, 저하고 필이 통했나봐요. 저 지금 선생님께 편지 쓰고 있었거든요."
"그래, 그럼 바로 메일 열어봐야겠네?"
"아니요. 카드 종이에 쓰고 있어요."
"아, 그랬구나. 그럼 우체통에 넣어야겠구나."
"예. 선생님…. 선생님 건강하시죠? 저 선생님 많이 보고 싶었어요."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하다 보면 저보다도 아이들이 오히려 더 말이 많아진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제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 말을 먼저 꺼내는 것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보고싶다는 말에 묻어있는 간절함이 제 것보다 더 커 보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제가 먼저 보고 싶다고 말을 하고 "너도 그래?"하고 물으면 마지못해 대답을 하는 정도였지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 가는 것은 그만큼 철이 들어간다는 증표일 수도 있겠지요.

종미와 통화를 끝내고 성탄절에 문자메시지를 보낸 다운이에게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후 바로 전화를 넣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아 언제가 다시 전화를 하리라 하고 미뤄둔 차였습니다. 이번에는 바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뜸 하는 소리가 이랬습니다.

"선생님, 보고 싶어 죽겠어요."

사실, 이 말은 언젠가 제가 다운이에게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마음에 병이 생겼는지 별 이유도 없이 학교를 나오지 않고 결석일수만 늘어가던 어느 날 휴대폰 음성으로 이런 말을 남겼던 것입니다.

"다운아, 보고 싶어 죽겠다. 넌 모를 거야. 이런 심정. 정말 너에게 잘해주고 싶어. 그런데 너와 끈이 끊어지면 그럴 수 없잖아."

제가 담임을 맡고 싶은 것은 이런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는 대상을 갖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못됩니다. 제 존재 이유가 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사랑만이 아이들을 진정으로 변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아이들에 대한 부족한 사랑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문제는 사랑을 하게 되면 어쩔 수없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도 좀더 넉넉해질 수 있도록 제 영혼의 크기를 더 키우는 일이 남았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교사에게 주어진 이 긴 휴식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