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하고 촌스럽고 어눌해도 '뭔가 있다'

리마리오·복학생·블랑카에 중독되는 이유

등록 2005.01.07 00:00수정 2005.01.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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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에 충실해." "그런 거야?" "뭡니까, 사장님 나빠요." "선생님 똥 칼라파워!"

그것은 사상 유례 없는 코미디의 대반격이었다. '국민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인기가 한풀 꺾이면서 침체 일로를 걷고 있던 한국의 코미디 장르가 2004년 한해 동안 전에 없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던 것이다. 이제는 개그를 바라보는 수요자들의 욕구도 무척 다양해졌거니와 개개인의 코드는 그 곱절의 스펙트럼을 표방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전에 없이 다양화로 거듭난 개그 캐릭터들의 등장은 수직에서 수평으로, 집중에서 확장과 복제로 이어지는 작금의 패러다임이 유효하게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웃찾사>와 <개그콘서트>, 그리고 <폭소클럽>은 지금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그 안에는 강한 개성을 지닌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확연히 도드라지는 3명의 등장인물을 만날 수 있다. 이제부터 풀어갈 '재미있는 사람들에 대한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들의 개그가 발을 담그고 있는 저 은밀한 지점의 사회적 함의와 코드에 대한 분석표이다.

남성성의 만화적 파괴- <웃찾사>의 리마리오

a 리마리오의 성공요인은 다분히 복합적이다.

리마리오의 성공요인은 다분히 복합적이다. ⓒ SBS

역시 리마리오(이상훈)를 그냥 지나치는 것은 거의 죄악처럼 느껴진다. 2004년 끝자락에 휘몰아친 리마리오의 바람은 누구나 인정하듯이 가공할 만한 수준이었다. "본능에 충실해" "미끄러지듯이" 같은 대사들과 함께 느닷없이 '더듬이 춤'이 등장할 때면 관객들과 시청자들은 그 자리에서 포복절도하기 마련이다.

'리마리오'라는 캐릭터의 특색은 그 이름처럼 비디오 게임 <슈퍼마리오>에서 가져왔다느니, 혹은 본인의 실제 삶이라는 등 말들이 많지만, '아시안 프린스'의 독특한 인물 성향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아시안 프린스는 2001년 딴지일보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킹카'로 세간에 처음 알려졌으며, 디시인사이드의 인기 패러디물로 유명해진 '가수'이다.

a 아시안 프린스

아시안 프린스 ⓒ 아시안 프린스

현재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는 아시안 프린스(본명이 Wo-Hen Nankan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이것은 "나는 못생겼다"라는 의미의 중국어)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서 "나는 엄청난 부자인 동시에 지상 최고의 아름다움을 지닌 미남으로서 나를 향한 세계 모든 여성들의 열렬한 구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지상 목표"라고 설명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니던가? 더군다나 외모의 유사성은 심증을 확증으로 발전시키며 선명한 방점을 찍는다. 현재 아시안 프린스의 공식 홈페이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에게 납치되었다'는 연유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


리마리오의 성공 요인은 다분히 복합적이다. 유서 깊은 '느끼한 남성' 캐릭터는 리마리오의 강점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식상한 감이 있다. 리마리오는 화려한 몸짓과 대사들을 동원하여 예정된 수준의 '혐오감'을 자극시키고,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관객들은 즐거워한다. 주위의 못생긴 여성을 학대한다거나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을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여타의 불쾌한 경우들과는 달리, 리마리오의 개그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마초를 연상시키면서 역설적으로 물신화된 남성의 이미지를 처절하게 파괴시킨다. '미끄러지듯이'.

결정적으로 리마리오의 모든 행동들은 지극히 '만화적'이다. 극의 진행과 아무런 개연성이 없이 등장하는 '더듬이 춤'은 리마리오를 극적으로 희극화시키는 도구인 동시에, 만화 속 엽기 캐릭터의 자화상으로 발돋음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만화 <멋지다 마사루> 혹은 <이나중 탁구부>에서 느꼈던 '이유 없는' 배설의 쾌락을 리마리오의 춤과 캐릭터에서 발견한다.


추억을 저당 잡힌 역설의 유머- <개그 콘서트>의 복학생

얼룩무늬 교련복, 공갈 폴라티, 고리바지, 운동회 모자, 동서남북 종이접기, 흔들 샤프, 그리고 "선생님 똥 칼라파워!" 같은 철지난 농담들. <개그 콘서트>의 복학생(유세윤)이 준비해 온 것들이다.

복학생이 노리는 어드밴티지는 '향수'의 코드이다. 빛 바랜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안의 촌스러운 자신에게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복학생은 시청자들의 기억 저편에 있는 소품들과 농담들을 동원해 웃음을 향한 유리한 고지를 일찌감치 선점한다. 옷 입은 것만 봐도 벌써 이렇게 웃긴 걸. 복학생은 개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웃음이 얼마나 강력하고 효과적인 것인지 일찌기 깨달았다.

a 복학생이라는 어감이 주는 효과는 무척 이중적이다. 시대를 앞서 경험한 연장자라는 느낌과 동시에 사회의 일꾼도, 혹은 온전한 학생도 되지 못한 묘한 경계인의 이미지. 그것이 복학생이다.

복학생이라는 어감이 주는 효과는 무척 이중적이다. 시대를 앞서 경험한 연장자라는 느낌과 동시에 사회의 일꾼도, 혹은 온전한 학생도 되지 못한 묘한 경계인의 이미지. 그것이 복학생이다. ⓒ KBS

재미있는 것은 복학생이라는 어감이 주는 효과가 무척 이중적이라는 사실이다. 시대를 앞서 경험한 연장자라는 느낌과 동시에 사회의 일꾼도, 혹은 온전한 학생도 되지 못한 묘한 경계인의 이미지. 그것이 복학생이다. 우리들은 사계절 유니폼 차림에 강의실 맨 앞에서 열심히 판서를 하지만 정작 성적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불행한 청춘으로 묘사되곤 하는 복학생을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 탈권위, 수평화 시대의 희극 캐릭터로서 복학생의 위치를 확고하게 하는 요소이다. 복학생은 남들이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혹은 이미 떠나 버린 패러다임을 구차하게 부여잡은 망령의 이미지를 덮어쓴 채, 망가진 권위의식의 메타포로 커밍 아웃한다.

복학생은 끊임없이 지나간 시대의 유물들을 끄집어 내고 '경험자'로서의 자신을 주변인들에게 떠벌리지만, 그 지점에 동의하거나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은 단 한명도 발견할 수 없다. 현실의 정치 사회적 세대·이념 갈등을 보는 듯한 이 광경은 공교롭게도 스스로를 망가뜨린다는 개그의 제1 원칙과 맞아떨어지면서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촉발시킨다. 우리는 완벽한 역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사회성에 기반한 풍자 개그- <폭소 클럽>의 블랑카

맑스는 역사는 한번은 비극으로 그 다음은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과거와 명랑하게 이별하기 위해서'다. 이 지점에서 유머 없는 현상의 재현이나 반복은 무의미하다. 풍자 개그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90년대 중반, 꽁트의 외투를 빌려 입고 잠시 각광 받았던 풍자 개그는 현재에 이르러 새로운 형태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폭소 클럽>의 블랑카(정철규)가 이 기막힌 실험의 장에 뛰어들었다.

a 재미있는 것은 블랑카가 영위하는 일상의 요소들이 우리들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지만, 그것이 불만의 어조로 포장되면서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가공할 폭력성과 부조리함을 시시각각 드러낸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블랑카가 영위하는 일상의 요소들이 우리들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지만, 그것이 불만의 어조로 포장되면서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가공할 폭력성과 부조리함을 시시각각 드러낸다는 점이다. ⓒ KBS

"이게 뭡니까, 사장님 나빠요." "때리지 마세요, 사장님." 블랑카의 대사는 비록 웃음을 선사하지만 절규에 가깝다. 이 사회성 짙은 개그야 말로 우리 시대의 암울한 기억이다. 우리 사회의 큰 쟁점으로 떠오른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작업 환경과 착취 구조는 60, 70년대 노동자들의 처절한 현실을 반추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외국으로 떠나야 했던 수출 노동자들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이주노동자로 등장하는 블랑카는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개그의 소재로 활용한다. 한국 사회의 술자리 문화, 결혼 문화, 직장 문화, 그 안에서 섞이지 못하고 맴도는 블랑카의 일상과 그의 불만 섞인 어조의 대사들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그 대사들의 행간에 암약하고 있는 부조리한 사회 현실들이 웃는 이들의 마음을 한편으로 서늘하게 만들면서 블랑카의 개그는 풍자적인 사회 고발로 거듭난다.

문화 상대성의 차이를 십분 감안하더라도, 블랑카가 말하는 한국 사회는 모순 덩어리이다. 블랑카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사업장에서 겪는 일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재미있는 것은 드러냄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가공할 폭력성과 부조리함이 시시각각 노출된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표면적으로는 웃고 있지만, 이러한 현실을 별 고민없이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공장 사장님들의 연대 문제제기로 인해 방송 3주째부터는 현실 고발보다는 문화 충돌의 이야기로 상당 부분 옮겨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랑카의 개그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먹먹하게 한다. 그의 이야기가 아직까지 쓰라림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세 캐릭터들은 지금의 한국 사회 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 서 있다. 가부장적 사회를 '느끼함'으로 맞받아치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향수'를 무기 삼아 권위를 조롱하며 이주노동자의 어눌한 말투로 은근슬쩍 모순된 한국 사회를 풍자한다.

그들의 외모와 몸짓, 그리고 대사들에 손뼉을 치고 좋아하는 동안 그 화학적 반응의 저변에는 캐릭터들에 내재되어 있는 은밀하고도 의미심장한 코드들이 시시각각 작용 중이다. 이 모든 것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고, 바로 이것이 그들의 개그와 웃음에 중독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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