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꼭 전국대회 나가자!"

은평구 여성축구단의 새해 첫 연습

등록 2005.01.05 00:10수정 2005.01.05 12:4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은평! 은평! 파이팅!!”


지난 4일 아침, 한겨울의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운동장 한가운데 은평 여성축구단 선수들이 모여 어깨를 걸고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며칠째 기승을 부리는 동장군도 날려버릴 기세입니다.

함성 소리와 함께 은평 여성축구단은 을유년 새해 첫 출발을 힘차게 내디뎠습니다.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선수들 저마다 한마디씩 덕담을 했습니다.

“올해는 우리 부상 입지 말고 건강하게 운동하자.”
“기필코 전국대회에 나가자.”
“나라 경제도 잘 되면 좋겠어.”

겨울 방학을 맞이해서 각자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도 한마디씩 했습니다.

“새해에는 공부도 열심히 운동도 열심히 하자.”
“나는 용돈 올려달라고 할 거야.”
“난 전교 회장에 도전할 거야.”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아이들은 뭐니뭐니 해도 여성축구단의 열성팬이요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여름방학 때 함께 시합을 하던 아이들이 그새 부쩍 자라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방학하기를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연습은 더욱 활기를 띠었습니다. 평소 14~15명이 연습을 하는데, 드리블이나 패스, 슛팅 등의 기초 훈련은 별 무리가 없지만 두 팀으로 나눠서 하는 연습 게임은 수가 너무 적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포지션별로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연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따금 다른 구청 팀과 친선경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방학 맞은 학생들이 연습 게임을 함께 하면 이런 문제가 단숨에 해결됩니다. 게다가 축구를 시작한 지 3~4년 된 엄마들보다 아이들은 훨씬 오랜 경력을 갖고 있는지라 공을 다루는 솜씨가 좋습니다. 잘 하는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다 보면 힘에 부치기는 하지만 힘든 만큼 실력도 쑥쑥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운동을 좋아하는 집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아이들도 엄마처럼 운동을 좋아하고 잘합니다. 운동하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아이들도 더불어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3살과 6살 된 찬우랑 지우도 어서 자라 엄마와 함께 축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뒤 전국적인 축구 붐을 타고 각 시군구청에는 ‘여성축구교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 은평구에도 그때 여성축구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남자들이 하기에도 격렬한 운동이라 여자들이, 그것도 나이 먹은 주부들이 하기에는 힘들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아기자기하게 공을 차면서도 얼마든지 패스의 정교함, 드리블의 박진감, 슛의 짜릿함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여성축구단이 만들어질 때부터 공을 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정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해 봄, 구청에 문의를 하고 회원으로 등록을 했습니다.

“나, 축구하고 싶어. 당신이 아이들 봐줄 수 있지?”
“애들이야 봐줄 수 있지만 몸이 좀더 회복되면 시작하지.”

둘째 낳은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터라 남편은 나의 몸 걱정부터 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루면 영영 축구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걱정하는 남편의 말을 물리쳤습니다.

아이 둘 낳고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시작한 운동, 축구. 축구는 내게 오랜만에 자유와 짜릿함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공을 차는 동안에는 온전히 나에게 몰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고, 굴러오는 공을 뒤로 빠뜨리거나 미끄러져 넘어지기 일쑤였지만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습니다.

그렇게 축구를 시작한 지 어느덧 9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달에 여성축구단은 시쳇말로 부모 없는 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구청에서 예산이 넉넉지 못하다며 잠정적으로 1월 한달간 코치 인건비 지원을 중단한 것입니다.

작년 8월에 열렸던 '회장기배 여성축구대회'에서 창단 이래 처음으로 4강에 들어 전국대회 출전권을 따내고도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는 그다지 서운하지 않았는데, 코치의 지도 없이 한달간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안타깝습니다.

주장 언니의 새해 덕담대로 올해는 우리 나라 경제가 확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구청 살림도 넉넉해지고 코치 없이 운동하는 날도 없겠지요.

아울러 새해에는 집집마다 살림살이가 나아져 엄마들이 운동이든 뭐든 취미 생활을 하면서 살 수 있으면 합니다. 엄마의 건강이 가족 행복의 원천이요, 행복한 가정은 튼튼한 나라 건설의 디딤돌이니까요.

관련
기사
- 아내는 축구선수, 포지션은 오른쪽 날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