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와 하늘의 커뮤니티 공간, '천단'

양(陽), 원(圓), 청(靑)의 조화로 우주와 소통

등록 2005.01.05 02:39수정 2005.01.0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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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 중국은 황제를 천자(天子)로 칭하였으며 천자는 천명(天命)을 받아 왕위에 오른다고 여겼다. 그래서 황제만이 그 하늘에 제사를 지낼 권한이 있었으니 명, 청대의 천자가 천(天)과 대화를 나누며 천(天)에 오곡풍양(五穀豊穰)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곳이 바로 천단(天壇)이다.

자금성과 같은 시기(1420년)에 건축되기 시작했으며 그 규모는 고궁의 4배에 달한다. 명 영락제에 세워져 청의 건륭제(1752년)에 개축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데 총체적인 설계나 치밀하게 계산된 의식의 조형들이 300여년을 흐르면서도 변함없이 통일성과 완성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봉건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공통된 세계관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겠다.

a 9로 이루어진 원구단의 전경

9로 이루어진 원구단의 전경 ⓒ 김대오


280ha에 달하는 천단의 건축 배치는 "回"자형으로 “하나의 중심축, 세 개의 단벽, 다섯 개의 건축군, 일곱 개의 산봉우리(가산-假山), 아홉 개의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철저하게 양(陽)의 숫자인 홀수로만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양의 대표 수(數)이면서 황제를 상징하는 ‘9’(황제를 나타내는 용과 그 모양이 닮기도 하였다)가 건축물 곳곳에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는 것과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天高地低)”는 원리에 따라 북쪽은 하늘에 해당되어 둥글고 높으며 남쪽은 땅에 해당되어 네모나고 낮게 설계되어 있으며 의식이 거행되던 모든 건축물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둥글게 설계되어 있다.

천단은 6416m의 외단과 3292m의 내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의식이 거행되는 건축물은 해가 뜨는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제천의식을 할 때 황제는 정문인 서문으로 들어와 남천문을 통해 내단에 입장했다고 한다.

‘9’를 쌓아 만든 제단, 원구단

남천문에 들어서면 원구단(圓丘壇)이 둥글게 3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나의 중심축의 남쪽 끝에 해당되는 원구단은 원시제천의식을 계승하여 천자와 천이 아무런 장애 없이 노천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벽도, 기둥도, 지붕도 없다.


단순해 보이는 3단의 대리석 건축물인 원구단이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상징적인 함의가 담겨 있다. 우선 3층으로 나눠진 3단을 오르는데 매 층의 계단은 아홉 개로 되어 있으며 원구단 가운데 황제가 축문을 읽던 천심석(天心石)이 있는데 그것을 중심으로 감싸고 있는 대리석이 9개, 다시 그 외곽을 감싸고 있는 돌은 18개, 그 다음은 27개, 제일 외곽의 돌은 81개로 철저하게 양과 황제의 수인 '9'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a 원심석을 중심으로 9개씩 늘어나는 대리석 조각을 확인할 수 있다.

원심석을 중심으로 9개씩 늘어나는 대리석 조각을 확인할 수 있다. ⓒ 김대오

또 천심석은 자오선상에 위치하여 일종의 공명효과가 일어나도록 설계되었는데 축문을 읽는 황제의 마이크역할을 하면서 또 황제의 기원이 하늘과 신하, 백성들에게도 울려 퍼진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니 그 치밀한 건축설계와 그것이 갖는 상징적 메타포는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전에 보통 9일 동안 높이 솟은 망등(望燈)을 내걸고 향나무와 측백나무로 송아지를 구워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악을 몰아내며 신의 강림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공명의 동그라미, 황궁우

황궁우(皇穹宇)는 제반 제천의식을 준비하고 하늘에 바람과 구름 해와 달 등 자연신의 위패와 역대 황제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a 공명효과를 통해 소리가 돌아오는 회음벽

공명효과를 통해 소리가 돌아오는 회음벽 ⓒ 김대오

특이한 것은 둥근 벽 가운데 공간을 두어 소리가 그 벽을 타고 다시 되돌아오게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회음벽(回音壁)’이라고 불리는 이 벽은 황제의 기원이 만백성을 휘돌아 하늘에 전달되도록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또 제문을 읽었다는 삼음석(三音石)도 첫 번째 석단에서 박수를 한번 치면 한번, 두 번째 석단에서 두 번, 세 번째 석단에서 박수를 치면 세 번의 소리가 울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둥글고 아담하면서도 대우주와 교감할 수 있도록 공명효과를 과학적으로 설계해낸 당시의 기술이 놀랍기만 하다.

드넓게 펼쳐진 녹림과 고목의 세계

황궁우를 나와 기년전(祈年殿)으로 향하는 길에 구룡백(九龍柏)이 있다. 한 그루의 측백나무인데 그 뒤틀림이 마치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불린 이름이다. 이뿐만 아니라 천단공원의 대부분은 드넓게 펼쳐진 녹림의 세계인데, 500년을 넘는 고목들이 즐비해 있다.

고목에 붙어 있는 표찰을 보면 그 나무의 수명을 가늠할 수 있는데 붉은색으로 A로 시작되는 표찰은 500년 이상이고 녹색으로 B로 시작되는 표찰은 300년 이상의 고목들이다. 녹림은 천하 만물의 풍요와 번식을 상징하며 측백나무는 제단을 더욱 깨끗하게 하고 사악함을 물리치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중앙은 신만이, 황제도 왼쪽으로!

천단의 두 중심축을 이루는 원구와 기년전을 가로 지르고 있는 것이 바로 흰 대리석으로 된 360여m의 단폐교(丹陛橋)다. 4m높이의 단을 쌓아 올린 이 통로에는 3개의 길이 있는데 중앙의 길은 신도(神道)여서 신의 기운만이 지나다닐 수 있었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던 황제도 좌측 길을 걸어 하늘을 알현하러 갔다고 하니 의식성의 정성과 철저함을 다시 한 번 느껴지게 한다.

a 가운데 길은 신의 기운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고 황제도 왼쪽으로 걸었다는 단폐교의 모습이다.

가운데 길은 신의 기운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고 황제도 왼쪽으로 걸었다는 단폐교의 모습이다. ⓒ 김대오

기년전을 향해 갈수록 단이 조금씩 높아지는 것은 인간의 세계를 떠나 하늘에 가까워짐을 상징하며 360m는 1년 365일을 의미한다. 악대의 반주에 따라 나아감과 멈춤을 반복하며 기년전에 도착하게 된다. 단폐교의 중간쯤 왼쪽 아래 부분에 큰 코끼리상이 있는데 코끼리(象)의 발음이 길상하다(祥)는 의미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중국의 상징 건축물 기년전

단폐교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3층으로 된 푸른색 기와로 우산처럼 생긴 멋들어진 건축이 나오는데 바로 기년전이다. 최초의 건축 당시 이름은 대향전(大享殿)이었으며 기와의 색깔도 맨 위층만이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색 기와였으며 중간은 대지를 상징하는 황색, 맨 아래는 자연의 만물을 상징하는 녹색이었다고 한다. 건륭제(1752년) 때 재건되면서 기년전으로 개명,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a 푸른 기와를 입은 우산모양의 멋들어진 기년전의 전경이다.

푸른 기와를 입은 우산모양의 멋들어진 기년전의 전경이다. ⓒ 김대오

기년전은 역시 천자가 하늘에 1년 한 해의 풍년과 태평안민을 기원하는 곳답게 엄격한 조형의 규칙이 적용되고 있다.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기년전 안은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가장 안쪽의 4개의 기둥은 용주(龍柱)라고 불리는데 사계절을, 중간 12개의 주홍기둥은 12달을, 바깥쪽의 12기둥은 하루 12시간(時辰, 자시에서 해시까지)을, 이 둘을 합한 24개는 24절기를 상징한다. 그리고 기년전 꼭대기에 있는 둥근 하나의 꼭지는 번개신으로 천하통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a 신 앞에 무릎을 꿇는 황제를 위해 극도로 엄격한 조형기술이 사용되고 있는 기년전의 내부 모습이다.

신 앞에 무릎을 꿇는 황제를 위해 극도로 엄격한 조형기술이 사용되고 있는 기년전의 내부 모습이다. ⓒ 김대오

하늘이 만물을 관장한다고 믿던 봉건사회에서 황제의 기원이 하늘에 전달되느냐 여부는 그야말로 국운이 걸린 일이었을 것이며 건축의 조형도 그야말로 제천의 정성이 최대한 발현되도록 설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하늘에 삼궤구고(三跪九叩, 세 번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하는 절을 세 번 반복하는 예)를 올려 천하의 태평과 풍년을 빌었던 것이다. 기년전의 양 옆에는 역대 제천의식의 역사를 담은 서배전(西配殿)과 제천의식 때 사용되었던 악기들이 진열된 동배전(西配殿)이 있다.

지금도 천단은 소망을 날리는 곳

베이징올림픽 개최의 기원이 담긴 홍보물의 처음과 끝 모습이 기년전에 담기고 또 작년에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의 염원이 담긴 올림픽휘장 공개제막식이 이곳 기년전에서 열리는 것을 보면 천단은 오늘날에도 중국인의 소망을 기원하는 곳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기년전에서 천단공원 동문으로 빠져 나오는 장랑(長廊)에는 중국의 전통악기인 얼후(二胡)반주에 맞춰 노래를 하는 사람, 제기 차기를 하는 사람, 마작과 포커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도 높게 연을 날리며 파란 하늘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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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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