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밥 만들어 보셨나요?

등록 2005.01.06 11:34수정 2005.01.0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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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연휴 이틀을 그냥 보냈습니다. '여행을 갈까? 친정에 갈까?' 생각은 많았지만 결국은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해맞이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한 것이 전부입니다.


새해에는 건강을 위해 식단에 신경을 써보기로 결심을 한 터라 이틀 동안 집 안의 요리책을 모조리 뒤적이며 이것저것 살펴보았습니다. 복잡한 요리는 못하겠고 일품요리는 왠지 정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어제 일입니다. 우리 동네에는 매주 '화요장터'가 섭니다. 공산품은 마트에 가서 사게 되지만 채소는 화요일을 기다려 사게 됩니다. 할머니들이 이 추위에 앉아 손수 까서 파는 마늘이며 깨끗이 다듬은 냉이 등 눈길을 끄는 품목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지요.

저녁을 먹고 화요장터를 갔습니다. 날씨가 어찌나 추운지 괜히 나왔다고 후회를 하면서도 이왕 나왔으니 들러보려고 잰걸음으로 갔습니다. 이미 어두워진 데다가 추워서 장터는 파장 분위기였습니다.

내놓았던 시금치는 얼까봐 들여놓았다며 아주머니가 무얼 살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냥 구경하러 나왔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해서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제주햇감자가 맛있게 보여 한 바구니에 3천원을 주고 샀습니다.

빨리 돌아가야지 생각하며 나오는 길인데 제 눈길을 확 이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작고 예쁜 콩나물 시루였습니다. 시루에 담아 파는 콩나물은 처음 보는 것이라 사고 싶어졌습니다.


"얼마예요?"
"2천원입니다."

'싸기도 하네' 생각하며 얼른 달라고 했더니, 글쎄 시루를 엎어서 콩나물만 주는 겁니다. 제 생각이 빗나간 거지요.


시루 때문에 콩나물을 사려고 한 제가 얼마나 모자라게 생각되던지 오면서도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찌되었건 덕분에 검은콩으로 키운 콩나물을 먹게 되었답니다.

언 몸을 녹이기가 무섭게 콩나물을 씻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에 콩나물국을 끓여볼까 하고요. 그런데 비닐 봉투에 담겨진 것만 사 먹던 제게는 콩나물에 붙어 있는 까만 콩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는 일이 여간 손이 가는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겨우 3분의 1을 다듬어 씻었습니다.

슬며시 짜증이 납니다. '안 되겠다' 나머지는 냉장고의 야채박스에 엎어놓으면 며칠 간다고 했으니 오늘은 이만큼만 다듬어야지 하며 정리를 했습니다. 다듬어 놓은 콩나물이 어찌나 예쁜지 노란 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건강검진을 신청해 놓아서 아침을 굶고 오라는 말이 이제야 생각이 납니다. 할 수 없이 점심 때 별식으로 콩나물밥을 하려고 했습니다.

건강검진이 끝나고 11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서둘러 아침 겸 점심을 하려고 미리 씻어놓은 잡곡 섞은 쌀과 콩나물을 꺼냈습니다.

a 다듬기 전의 콩나물

다듬기 전의 콩나물 ⓒ 허선행

a 다듬은 후의 콩나물

다듬은 후의 콩나물 ⓒ 허선행

콩나물밥을 할 때는 물의 양을 조금 덜 해야지 안 그러면 밥이 질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아주 신경을 써가며 물을 붓고 밥이 될 때만 기다렸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뱃속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밥 뜸 들이는 냄새도 좋고 양념장도 맛있게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 먹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일이 생기고야 말았습니다. 물을 적게 부어서 그런지 밥이 생쌀을 면한 정도입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물을 더 넣어야 할 것 같아 조금 더 넣고 보니 더 넣어야 될 것 같아 또 더 넣었습니다. 뜸을 들이며 과연 이 밥이 잘 될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배고픔도 사라지고 오직 밥걱정뿐입니다.

열두 시가 넘어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이상한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하느라고 애를 썼는데 "왜, 그냥 밥을 하지 콩나물밥을 했냐?"며 찌개만 먹고 있는 남편의 야속한 말뿐입니다.

맛있게 먹으려 한 음식을 버릴 수도 없고 저는 그냥 조금 먹었습니다. '밥솥 가득 있는 저 밥은 어떻게 처치해야 하나?' '차라리 저 밥으로 콩나물죽을 쑤어 볼까?' 이 궁리 저 궁리를 해 봅니다.

처음 해 본 콩나물밥이 제겐 좋은 경험이 되었답니다. 요리책도 다시 뒤적여 보고 인터넷으로 다시 검색을 해 봅니다. '콩나물밥' 하는 방법이며 양념장 만드는 법은 다 맞는데 물 조절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건강에 도움이 되라고 쌀에 잡곡을 섞어 문제가 더 되지 않았을까? 남은 콩나물도 있으니 다시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혼자서 할 게 아니라 친구들을 불러모으려 합니다. 밥이 잘못 되었다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남편 흉도 보아가며 맛있는 콩나물밥을 먹을 기대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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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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