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로 된 물동이가 세월을 말하듯 녹이 슬고 있다.김규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집에 물이 떨어지면 아침이건, 밤 9시를 넘긴 캄캄한 시각이건 먹는 물이나 허드렛물, 쇠죽 쑬 구정물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수고를 해야 했다. 우리 집처럼 우물이 없는 집은 겨울과 장마철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광주에서 상수원인 동복수원지가 말라가서 격일제 급수를 한다고 야단일 때는 최상류였던 우리 마을 냇가도 마르는 일이 잦았다. 물 부족은 참으로 삶을 팍팍하게 한다. 눈이 많이 왔던 70년대까지 시골마을 고샅길엔 저벅저벅 눈이 녹았다가 얼음으로 변하여 녹고 얼기를 반복한다. 이때도 마을 공동 샘으로 물을 길어와야 한다.
아버지 위엄이 대단했던 시절, 남자들은 물 긷는 일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던 집안도 있었다. 똥장군이나 오줌장군 져 나르는 게 체통이었다면 믿는 사람 있을까? 남자와 여성의 일이 명확히 구분되어야 체신이 서니 뭣 달린 놈들이 정지를 들락거리면 지청구를 듣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