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해미읍성 올해부터 옛모습 찾기에 들어가

민속가옥, 해자, 역사관 등 2010년까지 122억원들여 복원

등록 2005.01.10 21:38수정 2005.01.1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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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서산시청 자료사진)
해미읍성 (서산시청 자료사진)
서산 해미읍성(사적116호)이 올해부터 옛 모습 찾기에 들어간다.

서산시는 지난해 말 문화재청으로부터 해미읍성에 대한 현상변경 허가를 받음에 따라 그간 읍성내 발굴조사 실적을 토대로 복원작업에 들어가 2010년까지 모두 122억원을 투입해 복원 신축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복원 신축되는 건축물과 구조물은 내포지역민가양식을 본뜬 민속가옥 3채(각각116입방미터)와 옥사(56입방미터), 역사관(1100입방미터), 성 둘레에 구축돼 있던 탱자나무 해자(673미터), 원형광장(376입방미터), 보행로 467미터와 경관조명등 600여개, 보행등 240여 개이다.

해미읍성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석성 중 가장 보존이 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조선조 세종 때 새로운 축성 양식에 따라 신축이 추진되고 문종 때 둘레가 3325척(1척 30.303센티미터), 높이12척에 4개의 문과 3626척의 해자가 파여지고, 적대18개가 계획되었으나 이 중 2개가 완성되었고 이후 성종22년에 둘레 6630척, 높이 13척, 치성과 옹성, 여섯 개의 우물을 팠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읍성에는 1414년(태종14년) 덕산에 있던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이설돼 와 1651년(효종2년)청주로 다시 옮겨갈 때까지 충청지역의 군사요충지였다. 해미 병마절도사 영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하급 장교시절이던 1579년 훈련원 봉사로 잠시 근무한 적이 있고 조선조 말인 1866년 병인박해 때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천주교 신자 1000여명이 순교한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읍성 내에는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할 때 철사줄 등을 묶어 교수형을 시킨 회화나무가 남아있고 그 나무에는 지금도 그 당시의 철사 줄이 남아있다. 이 읍성에는 동헌과 아사, 작청 등의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동헌과 2002년 복원한 객사 등 4채의 건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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