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들의 ‘무릉도원’ 공동체

[이철영의 전라도 기행 38] 전남 무안군 ‘월선리 예술인마을’

등록 2005.01.14 13:17수정 2005.01.1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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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광요 내부에 전시된 김문호 촌장의 작품 ⓒ 오창석

전남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에 예술인촌이 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먼저 담벼락에 붉게 씌어진 ‘반공 방첩’이 눈에 띄었다. 우리의 고향인 농촌은 그 시기 ‘반공’이라는 정치적 사기와 ‘새마을 운동’이라는 경제적 마술의 굴레 속에서 멍들어 왔다.

담벼락에 남아있는 ‘반공 방첩’은 과거에 붙잡혀 정체된 오늘의 농촌을 표상하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공산당의 전용 색이기도 하지만, 벽사의 전통적 의미를 담고자 했을 팥죽색 글씨는 예술인들의 마을이기 때문에 보존가치도 따져봄 직한 것일까. 먹물 먹은 예술인들이 양반님네처럼 폼 잡고 살고 있겠거니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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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이 없는 작가와 동호인들을 위해 김문호 선생이 직접 지은 공방 ‘승광요’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차를 마시고 있다.모자를 쓴이가 김문호 촌장 ⓒ 오창석

‘승광요’라는 이름의 공방에 들어가니 반겨주는 주인은 없고 객들이 대신해서 손님을 맞아 주었다. 그 곳 사람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짜디짠 차’가 나왔다. 조금 진하게 우려낸 듯했다. 의자에 걸터앉은 내 발치에 똥개 한 마리가 분식집 순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꼬락서니로 보아 그리 잘 먹인 개는 아닌데 사람이 들거나 나가거나 관심이 없었다. 사람에게 밥을 얻어 먹기는 하나, 요 녀석은 인간성과 다름없는 견성(犬性)을 보장받아 건방지게도 인간과의 긴장감이나 위계 대신 ‘평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촌장을 맡고 있는 도예가 김문호 선생이 동네사람들과 함께 돌아 왔다. 알고 보니 그가 세우기는 했으나 주객이 따로 없는 도예 공동체의 공방이었다. 건방진 개도 공동체의 일원일 뿐이었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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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양공육 씨의 얼굴을 주제로 한 작품 연작 ⓒ 오창석

15년 전, 긴 머리카락에 산발한 김문호 선생이 나타났을 때 마을 사람들은 “뜬금없이 웬 미친놈이 왔다”고 수군거렸다고 했다. 전국을 떠돌다 집값이 싸서 이 동네에 발을 들여 놓기는 했으나 오랜 세월의 짙은 때가 묻은 동네에 솥 걸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마을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온다고 하자 그는 군청 앞에서 동네사람들과 함께 삭발을 하고 나가 싸웠고 그러저런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겨우 동네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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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훈장의 월선서당 ⓒ 오창석

그러나 그가 ‘복사꽃 피는 마을’을 꿈꾸며 마을 곳곳에 복숭아나무를 심자 동네 사람들은 두 말 없이 잘라 버렸다. 농약에 두들겨 맞은 해충들이 복숭아를 먹고 원기를 회복하는 줄은 모르고 속없이 무슨 나무를 심느냐는 이유였다.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을 상징하는 회나무를 심자, 그늘이 져서 농사 망친다며 베어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밥으로 살지 무릉도원의 복숭아 먹고는 살 수 없다는 논리 앞에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공동체의 밥을 함께 걱정하고 그들을 받들며 살아 온 긴 세월 앞에, 지금 월선리 사람들은 마을의 대소사를 같이 하는 식구로 예술인들을 받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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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세운 앙증맞은 이정표. ⓒ 오창석

동네 앞 큰 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마을의 중심 쯤, 시누대밭 앞에 ‘승광요, 서당, 윤도예방, 복사꽃 피인 집’이라고 쓰인 귀여운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 얼굴 모양으로 창을 낸 흙집인 윤도예방을 지나 고향집 돌담을 덮은 담쟁이가 있고 ‘월선서당’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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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선서당 뒤편의 '침풍루' ⓒ 오창석

서당을 지키는 개 이름은 말 그대로 ‘당구(堂狗)’이며 서당 개 생활 삼년이 넘어 예의범절을 아는 것처럼 손님이 나타나도 짖지 않고 점잖기 그지없다. 서당 뒤편에는 ‘침풍루(枕風樓)’라는 편액이 걸린 작은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훈장님이 아무리 정자라 해도 동네사람들은 원두막이라고 한단다.

" 편지를 ‘복사꽃 핀 동네’로 주고받도록 새로 이름을 짓고 주소를 만들 겁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서로 더 주지 못해서 안달이요. 바삐 살다 보면 놓치는 것이 너무 많죠. 무릉도원을 만드는 것이 우리들의 꿈이요”라고 하는 김문호 촌장의 호언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곳에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은 김대호씨는 글 쓰는 것이 주업인데 “노는 게 재밌어서 통 글을 못 써요. 저녁이면 동네 사람들하고 모여서 고스톱치고 돼지 잡아 묵고, 소도 잡아 묵어요. 가보고 싶은 동네를 만드는 것이 꿈인데요, 예쁜 마을을 만들고 그런 마을들이 모여서 살만한 농촌을 만들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죠. 이곳에 뼈를 묻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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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위해 손수 마을 정자를 짓고 있는 박인수 훈장. ⓒ 오창석

억압과 차별이 없고 가난이 사라진 곳을 현세의 무릉도원이라 할 것인데, 바삐 살지 않으며 시간을 온전한 제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 많은 그들의 실험은 현재까지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마을에서 길러낸 무공해 농작물은 논밭에서 나오기가 바쁘게 팔려나가고, 마을 뒤편의 노천극장에서는 주말마다 콘서트가 열린다. 여름, 겨울방학이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예술학교도 열린다. 조그만 마을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사람들을 위해 손수 정자를 짓고 있는 박인수 훈장님(58세)을 만났다.
“내 행색이 꽁지머리에 작업복이요, 지붕 위라 잘 가시라고 인사도 못허요. 조심해 가고 또 놀러 오씨요 잉~.”
정겨운 목소리에, 밝아 오는 날 초가지붕을 올려야 하는 그의 손놀림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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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윤숙정씨의 공방이자 살림집 측면. 사람 얼굴모양으로 해놓았다. ⓒ 오창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oil'사보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oil'사보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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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기행 연재했던지가 10년이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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